노무현 (25)
대통령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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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 메디치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 메디치


얼마 남지 않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일이....


해마다 이 즈음이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누구에게 빚진 것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런 류의 사람이긴하나 아픔과 그리움의 간절함은 내색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얕은 것 같다.


가끔 그리워질 때면 유튜브에 올려진 동영상을 보거나, 이렇게 이 분을 소재로 한 책을 읽는 정도이다.


김대중 &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씨가 낸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통해

1. 전직 두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이 분들의 국민과 국가에 대한 진정성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2. 현직 대통령과의 수준차가 너무 심하다는 걸 느꼈다.

3. 이들이 지금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계셨다면 얼마나 황홀한 세상일까 상상해 봤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살기좋은 나라가 되었겠지.......





주요 발췌문

P60.

메모는 메모지에만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이지원이라는 청와대 내부 전산망 안에 실마리 파일이라는 기능을 만들어 놓고 글쓰기거리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했다.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시간날 때마다 이곳에 들어와 조금씩 살을 붙여 나갔다. 

오바마는 진보시대의 진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오바마의 개혁이 주춤거리거나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략) 개혁이 흔들리는 사례와 개개의 원인, 근본적인 원인 등에 관한 자료를 모아봅시다.”

서거 이틀 전에 사람 사는 세상사이트 자료 찾기 게시판에 남긴 메모 글이다.

 

[나의 생각....]

자살할 사람이 과연 이런 글을 게시판에 올려 놨을까 ?

진실은 둘 중 하나일거다.

1. 게시판의 글이 노 대통령이 올린 글이 아니다.

2. 노 대통령의 사인(死 因)이 자살이 아니다.

둘 중 하나는 거짓일 것만 같다.

 

 


P62.

적자생존이란 말이 있다.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P130.

가장 좋지 않은 마무리는 질질 끄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설가 안정효는 『글쓰기 만보』에서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장황한 종결은 낭비다. 그것은 꽃상여와 비슷하다. 살아서는 뼈 빠지게 가난하여 누더기만 걸치고 옹색하게 살았던 사람이 죽은 다음 만장을 휘날리며 꽃상여를 타고 가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P155.

일본에 대해서 한마디 꼭 충고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들은 흔히 지각없는 국민이 하더라도, 흔히 인기에 급급한 한두 사람의 정치인이 하더라도 적어도 국가적 지도자의 수준에서는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국민이, 우리 정부가 절제할 수 있게 일본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이상의 말씀은 더 드리지 않겠습니다.”

2004년 삼일절 기념식 연설문 중


[나의 생각....]

이 연설문은 상대편(일본 지도자)에게 외통수를 날리는 명문이다.




 

 

P160.

짧은 말은 긴 말보다 결코 쉽지 않다. 짧은 말 속에 모든 것을 얘기해야 하고, 또한 핵심을 찔러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명문장가 이덕무 선생은 이를 이렇게 얘기했다. “간략하되 뼈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상세하되 살찌지 않아야 한다.”(한정주.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포럼) 에이브러햄 링컨의 캐티즈버그 연설은 단 266개 단어였다. 이 자리에 함께 했던 당대 최고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Edward Everett은 두 시간 가까운 연설을 했다. 그야말로 연설하고 있네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결국 아무도 에버렛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아는 얘기 중에,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 원고를 보내 후 반응이 궁금해서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

이에 대해 출판사에서 답을 보내왔다.

“!”

그 결과로 『레미제라블』이 탄생했다.

 


 

나는 학부 강의에서는 마지막 5분 동안에 그날 강의의 요지를 적게 합니다.

그것이 시와 관련이 없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하자면 시적인 틀에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영복 담론 P57

[나의 생각....]

이 책의 내용과 신영복의 담론에서 발췌한 부분 내용이 핵(核)은 '간결!!!!!!'이다.

간결은 전부를 이해하고 앎에서 생기는 것이다.





P184.

단순명쾌함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글이 명확하고 단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글을 쓰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진다.

둘째, 본질을 꿰뚫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메시지를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다.

셋째, 과욕은 금물이다. 집토끼도 잡고 산토끼도 잡으려 하면 복잡해진다. 복잡해지면 꼬이고 어려워진다.

넷째, 독자를 믿어야 한다. 믿지 못하면 구구절절해진다. 노파심은 노파심일 뿐이다.

 

 


 

P203.

대통령 스피치라이터의 조건은 무엇일까? 거두절미하고 얘기하면,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략~ 스피치라이터야말로 영혼이 있어선 안 된다. 대신, 연설하는 사람에 빠져 살아야 한다. 그 사람에게 빙의되어야 한다. 그 사람의 아바타가 되어야 한다. 연설 현장에 가면 그 분은 어떤 생각, 무슨 말을 할까? 그것만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람의 논리 전개 방식과 고유의 표현 방식, 어투나 호흡, 즐겨 쓰는 용어와 농담까지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P232.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를 붙들고 오열하는 모습은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다. 비록 당국의 반대로 추도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어느 연설보다 위대한 웅변이었다. 함석헌 선생이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러한 눈물도 흘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타고난 품성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눈물은 악어의 눈물로 비쳐질 수 있다. 실제 그런 정치인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진짜를 보여줘야 한다. 가짜는 금새 들통 나게 돼 있다. 만들어낸 가짜는 반드시 실패한다.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오열하는 모습

 사진출처 : 경향신문

[나의 생각....]

위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음이 조금씩 느껴진다.

저 너머 김OO 당시 국회의장의 마음 역시 느껴진다.

그런데 두분의 온도차는........



 

P264.

남북정상회담에는 연설문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북행길 군사분계선 도로 변에 놓일 표지석 문구도 정해야 했다. 연설비서실에서 평화를 여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을 보고했다. 대통령은 이미 김대중 대통령이 열어 놓은 문을 내가 가는 것이니 평화를 다지는 길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P296.

1998 2 25일 취임식. 나는 아직도 이 대목을 기억한다.

 

올 한 해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늘어날 것 입니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 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취임사를 읽다가 말문이 막히며 울먹였다. 




P300.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는 중국 시진핑 국가부주석에게 보낸 편지였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2009 7 13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집을 떠나면서 침상에 걸터앉아 시진핑 부주석에게 보낸 편지에 金大中이라고 서명했다. 이 편지에서 김 대통령은 2개월 전 베이징 방문 때 보여준 중국의 환대에 감사하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협력을 당부했다.

 

 

 

P303.

왕관을 쓰려는 자, 글을 써라

김대중 대통령은 늘 강조했다.

지도자는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쉽고 간결하게 말하고 글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중략~

2000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20주년 연설도 이렇게 시작한다.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저미는 충장로 금남로

그리고 전라남도 도청에서 빛도 없이 스러져 간 수 많은 민주주의 영웅들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한없는 슬픔과 감동을 느끼며 새로운 각오를 합니다.”

김 대통령의 영웅론은 색다르다.

영웅이란 높은 데에 올라가 포즈를 취하고 국민이 원하는 바를 말하는 사람이다.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국민의 생각을 대신 말해주는 사람이 영웅이다.

그러니까 리더는 말하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P305.

민주주의는 말이고 글이다. 말과 글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합의를 이뤄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민주주의 시대 리더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리더는 자기 글을 자기가 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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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리더쉽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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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논객들이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아래의 사진에서 나온 것 처럼 내뱉는 말에서 그녀의 리더쉽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언어는 가슴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슴이 따뜻하지 못하고, 남 탓하는 자는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사진출처 : 인사이트




보너스

자료출처 :SLR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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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가면.....해운대 바닷가, 동백섬,누리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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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1월5일 인거 같다.

지난 정월 초하루에 난포리에서 맞이한 해돋이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또다른 발걸음을 했다.

바로 해운대 바닷가다.

애석하게도 이 날은 흐린 날씨로 해돋이를 하지 못했다.

다만 회색빛이 바닷가 전체를 감싸고 도는 데도 불구하고 우울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멍울같은 느낌.....

'발발하지 않으면 좋았겠지만, 

기왕 곪아버린 멍울이라면 터져버리는게 완치의 지름길이다' 

뭐 이런 느낌이었다.




이른 아침에 걷기 좋은 길 - 동백섬


동백섬 산책로동백섬 산책로

해돋이는 못 봤지만, 지금도 상큼함이 남아있는 듯한 동백섬 산책로

모두들 한 겨울외투를 두르고 있으나, 춥지 않고 그저 시원함이 느낄 정도로 상쾌했다.




노짱을 떠올리게 만드는 - 누리마루


이 곳에만 오면 노짱이 생각난다. 그의 재임시절 있었던 APEC정상회담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전시실 곳곳에서 그의 사진이 있어 더욱더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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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기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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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출근길에 접했습니다.

몇 개월전에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에서 비춰진 난중일기의 디테일한 기록정도를 접했기에 이 소식이 더욱 반가웠습니다.


금일 기준으로 등재 유산 수로 볼때 세계 5위, 아시아 1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기록에 대한 인식이 높음을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조상대대로 유지되어온 기록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가장 잘 실천하신 대통령은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었을 것 입니다. '업무관리시스템 e지원'을 통한 서류의 작성에서 보관 등 일련의 행위를 투명성을 담보하고자 했던 활동을 봐도 그러 합니다.


허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는.....


한국, 세계기록유산 등재 총 11건 亞 1위… 기록문화 강국 입증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18일 확정되면서 한국은 기록문화 강국의 위상을 다시 드높일 수 있게 됐다. 이로써 한국은 총 11건의 등재 유산을 보유하게 됐으며, 이는 아시아 1위, 세계 5위 기록이다.


1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전날 광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회의 결과, 전 세계적으로 54건이 신규 등재 권고를 받아 100개국이 총 299건의 세계기록유산을 갖게 된다. 한국은 독일(17건), 오스트리아(13건), 러시아(12건), 폴란드(12건)에 이어 멕시코와 함께 11건으로 공동 5위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9건, 일본은 3건을 보유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적 가치가 있는 기록유산을 적절한 기술을 통해 보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92년 도입됐다. 등재 심사과정에서는 유산의 진정성(정품 여부)과 독창성을 보며, 국제적 사건의 중요한 변화를 담은 시기나 장소, 인물을 담았는지를 고려한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쓴 ‘난중일기’(위 사진)의 경우 일제강점기에도 유실되지 않고 보존돼 국보 제76호로 지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이번에 함께 등재된 새마을운동기록물(아래 사진)의 경우 지난해 3월 문화재청의 등재 신청 이후 야당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작업의 하나”라면서 철회를 요구하는 등 논란을 빚기도 했으나 IAC가 인류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새마을운동은 최근 르완다 네팔 등에서 새마을사업을 실시하기로 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경향을 살펴보면 고문서뿐 아니라 근·현대사 기록물 등재가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도 문화재청은 강조했다.


이외에 국내에서는 다른 기록물에 대한 등재 움직임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위탁 보관 중인 유교 관련 목판 6만4000여장에 대해 9월 중 문화재청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들 목판은 300여개 문중에서 기탁한 것들로 15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제작된 문집과 전기, 역사서 등 720종에 이른다.


지난해 문화재청에 신청된 것 가운데 후순위로 밀려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관련 기록물, 1395년(태조4) 만들어진 석각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과 ‘조선의 금속활자’ 등도 잠정적 후보군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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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담배 피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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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떼고, 나이 불문하고  오늘 이 밤 맞담배 피고 싶은 영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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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 조관우가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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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끝난 TV  프로 '위대한 탄생'에서 누렸던 재미는 참가자의 가창실력뿐만 아니라, 국민 할매 김태원 멘토의 심사평 이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들려주는 긍정적 평가, 발전 가능성에 관한 한 마디 한 마디 심사평은 듣는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 이었습니다.

 입으로 내뱃는 말은, 화자의 삶에 대한 가치관과 깊이가 대부분 반영된 표현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나는 가수다'에 새롭게 등장한 가수 조관우의 대화내용을 듣자하니, '단순히 타고난 목소리로 영명하는 가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나가수)'를 통해 자신만의 팔세토 창법을 널리 알리며 재조명되고 있는 가수 조관우가 과거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 빈소에서 구슬피 울었던 사연이 알려졌다.

최근 한 인터넷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노무현과 조관우의 슬픈 통곡'이라는 글을 포스팅했다.

이 블로거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5월, 술을 마신 채 일산 시민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한밤에 장례식장을 찾는 조문객을 위해 조를 짜 교대로 자리를 지킨 것이었다.


이 블로거는 "한 사내가 쭈뼛쭈뼛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내게 와서 입고 있던 검은 양복 윗도리를 빌려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이유를 묻자 연예인 한분이 참례하고 싶은데 예를 갖추고싶다고 했다"며 "속뜻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고 술냄새까지 풍겼기에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다시 오시면 어떻겠냐'고 했다. 결국 망설이던 사내는 자리를 떴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잠시 후 장례식장 한켠에서 한 남자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블로거는 "방금 전 나에게 옷을 빌려달라던 사내가 남자를 달래고 있었다. 하도 울음이 구슬퍼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술에 취한 한 남자가 바닥에 엎드려 펑펑 울고 있었다"며 "가신 님을 위해서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다고 서럽게 울었다. 자신이 가지 재주라고는 노래하는 것밖에 없으니 님을 위해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 남자는 바로 가수 조관우였다"고 회상했다.

두달 후, 일산 미관광장에서는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타이틀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가 열렸고 조관우는 두달 전 약속을 지켜 무대에 올랐다. 당시 조관우는 '가신 님'을 기리며 정훈희의 곡을 리메이크한 '꽃밭에서'를 불렀다. 블로거는 조관우의 노래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말했다.

2년이 흘러 2주기 추모공연이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렸다. 이 블로거는 "추모 열기가 많이 가셨다. 처음 공연에 참가했던 많은 가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돈 한푼 생기지 않는 무료 공연, 공연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아마추어 공연에 선뜻 참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고 가수들을 이해했다.

그러나 "2년이 넘은 두번째 공연에서도 조관우는 조용히 무대에 서서 가슴을 후벼파는 한이 서린 목소리로 가신 님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블로거는 "나는 조관우라는 가수가 부디 이 살벌한 정글('나는 가수다')에서 끝까지 살아 남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설령 그가 살아 남지 못한다고 해도 그는 언제까지 내 마음 속의 가수다"며 "가수는 진심을 노래할 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고 조관우를 추켜세웠다.

[뉴스엔 김종효 기자]

김종효 기자 phenom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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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영이 바라 본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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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블로깅을 하면서 나름 배울 게 많다싶은 블로그를 발견하면,
그 블로그 포스트 전부를 섭렵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예를들자면 Inuit님, 도아님, 쉐아르님 등이 있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하여 프레인 여준영 대표의 글을 접하고, 가끔씩 그의 블로그에 들리곤 했습니다. 아직은 다 읽지 못한 상태인데,  뜻밖에도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올려 봅니다.

아래의 글을 읽을 수록, 노통은 참으로 멋진 대통령이었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리고  오연호씨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읽기를 권합니다.

내 낡은 서랍속의 노무현, Again 2002
2005년 7월 25일 여준영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두번 공부했다.

그의 지지도가 최악이던 2005년 봄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이미지를 회복 시키라" 는 미션을 받았다

청와대는
개혁 대통령, 능력있는 대통령, 국가 최고 경영자
비전과 리더십의 대통령, 투명성,도덕성,소신의 대통령
화합과 구원의 대통령, 일하는 대통령, 권위있는 대통령등
화려하고 폼나는 여러가지 아이덴티티를 죽 늘어놓더니
나머진 다 필요없고
그 중 하나만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가 내게 요구한, 그리고 대통령이 희망한 자신의 아이덴티티는
딱 하나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 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순진했다


두번째 공부는 이듬해 초
대통령 임기를 정확히 절반 남겨둔 시점에서
하반기 기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한
워크샵을 진행해달라는 청와대 요청을 받고 
다시 그를 공부했다.
그리고 북한산 자락 한 숙소에 청와대 비서관들을 다 모아놓고
내가 공부한 그에 대해 발표했다

 

내가 "공부"라고 표현한것은
정말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루, 한달, 일년을 어떻게 사는지  일정을 정밀하게 분석했고
그가 했던 말들을 다 주워 담아 읽고
그를 만났던 사람을 만나 그에 대해 물었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왜 그가 싫은지 들었다
물론 그 이전의 대통령들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인데 옆에서 보면 감상적인 대목이 있다
인간적인 면모가 뛰어난 사람이다
눈물 보인적이 여러번 있다. 최근에 무슨 유족을 만났을때도 눈물을 훔치더라
대중 정치인으로서는 이런 모습이 확실히 장점이고
선거때는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었는데 지금은 (청와대 안에 있다 보니) 그렇지 못하다.
(우리처럼) 직접 만나 본 사람들만 그의 그런 좋은 면을 알수 있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그와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날카로운 각을 세웠던 언론사의 청와대 출입기자가 내게 해준 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좋은 사람을 공격하지요 ?" 하고 묻자
기자는 사람좋은건 사람좋은거고. 라고 선을 그었다


그를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옆에서 본 사람은 다 그를 좋아한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중에 그를 옆에서 직접 본 사람은 별로 없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다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다 그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에 대해 공부할 수록
그런 내 생각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증언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DJ는 재임시 준비된 자료를 그대로 활용했다
특정 사안이 있으면 그 기간동안 어느 자리를 가도 똑같은 말을 그대로 한다
반면 VIP (노무현 대통령을 말한다) 는
취지는 비슷한데 표현방식이나 비유가 변화 무쌍하다
기조가 같더라도 표현이 다르면
계속 본사람들이야 취지를 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역시 그와 반대편 길을 걷던 언론사의 기자가 내게 해준 이야기다.


또 청와대 측근들은 이렇게 푸념했었다.

" 원외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후보일때는 기존의 뺀질 뺀질한 정치인보다 신선한 이미지 였으나
대통령이 된 후에는 대통령에 기대하는 이미지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뭐야 대통령 맞아?" 이런 반응이 국민 사이에 나올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이미지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왜 대통령이 그래야 하냐" 라고 되물었다
이미지를 관리한 다는 것 자체를 아주 싫어한다
그게 지나쳐서 메시지 관리도 잘 안된다"


컨설턴트 입장에서 "이미지 관리"자체를 거부하는 그는 좋은 고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지는 관리하는게 아니라는 걸 컨설턴트인 나는 또 잘 알고 있다. 그가 옳다


최근 그의 도덕성에 상채기를 냈다는
박연차 게이트
언론의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내 짧은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다
대게 뇌물 수수에 대해 수사과정을 보도할때 (아니 사실 수사 과정에 이번 처럼 호들갑 떨지는 않았었지만)
그 절반정도는 "댓가성" 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 하게 되어있었는데
이번 수사와 보도는 그렇지 않았었다.

친하게 지내는 판검사 형들을 만날때 마다
국민학생처럼 물어봤다

"형. 저는 도무지 이해가 잘 안가는데요
노무현씨하고 박연차씨는 친구잖아요
다른 관계가 아니라 그 둘 사이의 일이라면
증여세 포탈 정도 말고  또 무슨 죄가 있는거지요 ?
저도 판사하는 후배들, 교수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걔들은 돈이 없어요
그래서 그친구들 한테는 늘 제가 술사는데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나한테 뭐 해준거 없어요.
그거랑 많이 다른건가요 "


설사 내 질문이 나이브 하다 치더라도
어쨌든 그를
개발이란 이름하에 독재를 하고
사람을 총칼로 죽이고
수천억으로 치부하고 사치한 사람들과
비슷한 부류의 "전직"으로  분류해버리는 여론은
좀 속상했다.

 

몇달 전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웠었다
=최진실이 자살했대
+에이. 그런 거짓말 하는거 아니야. 나 좀 더 잘래
= TV켜봐.

오늘 아침에도 그런식으로 나를 깨웠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대

그런데 오늘은 거짓말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아니 결국 그렇게 갔구나 받아들인채 TV를 켰다

뉴스에선 상상할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들 했지만
4년 전 내가 공부했던 눈물많은 노무현은
그럴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선수같지만 아마추어였고 천재같지만 바보였고 강한척 했지만 약했고
무엇보다 정치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2005년 내가 청와대에서 발표한 프레젠테이션의 제목은
Again 2002 였다.
2002년 겨울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사랑하던 때였다.
그리고 그 첫장은
VIP 입장에서 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내가 대통령 입장이 되어보니 언론과 국민들에게 조금 "서운"하길래
그 내용을 그대로 적었었다.
오늘 서랍을 뒤져 보니
컨설팅을 하기 위해 빼곡히 채웠던 메모장의 맨 마지막엔
이런 메모가 있다.


"보통 대통령이 되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게 되기 때문에
야당시절과 생각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그 변화가 적었다.
별로 달라진 생각이 없었다
대통령 본인은 달라진게 없는데 국민의 기대가 달라진 것이다." 


그에게 변했다고 실망한  국민들.
사실 변한건  우리일지도 몰라.
자꾸 눈물이 흐른다.

 
@ 하늘에서 again2002 하실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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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과 2009년 봉하마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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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090926       노짱이 남긴 흔적을 따라서
참으로 간다 간다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토요일에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2003년 봉하마을
햇수로는 거의 6년 만인가 봅니다. 2002년 12월 19일 노짱님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다음 해 2003년 아들이 3월에 태어 났습니다.
그 해 늦 봄이었을 겁니다. 우리 가족은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생가는 실제로 집주인(노무현 대통령과 아무 관계 없는 人)이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대통령 생가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할 텐데 유지보존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만 관광객 출입이 자유로웠고 몇가지 기념품을 집주인이 마루 내 놓고 판매하였습니다. 관광객이라고는 손으로 수를 헤아릴 정도 였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을 다시 되새겨 본다면,  집 뒤켠에 닭이 자유로이 돌아 다니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현직 대통령의 생가라고 하기에는 허술하였기에 안쓰러웠습니다.
2003년 봉하마을에는 그 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역대 대통령과는 다를 것이다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습니다.

중간세월
대통령 재임시절 동안 그 분을 따르던 추종자들은 적지 않이 실망을 했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상(像)과 다소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분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노짱이라는재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했습니다.

2009년 봉하마을
대통령직 퇴임 후, 그 분이 보여준 소탈함에 서서히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퇴임 후 기존 전직 대통령이 보여왔던 모습과는 달라서 노짱에 대한 열풍이 일시적 현상일 거다라는 생각, 그리고 현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실망스런 마음이 이전된 것일 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거를 전후로 해서 알게된 여러 사실들과, 노짱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면서 빨리 닫아버렸던 마음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도에는 국민들은 섣부른 파격을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찍 실망하게 된 것 입니다. 이제와서 알게된 것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처해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우회도로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의지 였습니다. 그러하기에 2009년에 다시 찾아본 봉하마을에 인내와 끈기, 기다림으로 가득찬 국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생가 뒤 사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뒤 사저

노무현 생가

노무현 생가를 누비는 방문객들

노무현 생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런 후회와 놓아서는 안될 믿음을 가지고 사저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권여사님을 뵙고 위해 봉하마을에 온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이 분의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봉사한 적 있기에 반가웠습니다.
옛 지인의 방문이 외롭고 의지할 곳 없으실 권여사님에게 작은 희망을 될 것이기에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김정길 전 국회의원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지금은 초라하다...영원히 초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봉하마을 방문에 같이 동참한 어느 한분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와 묘소를 보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무 초라하다". 맞습니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묘소를 조성했기에 초라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게요!


 그러나 아직은 초라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초라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묘소에서 참배를 마치고 봉화산 정토원에 가서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님 영정에 절을 했습니다. 마침토원 공양간에서 무료 점심을 제공해 준 터라 식사를 마치고 언덕에서 봉하마을을 조망했습니다.
옆에 있던 아들 놈이 외쳤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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