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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얼씨구 좋구나

2003년과 2009년 봉하마을 모습

봉하마을090926       노짱이 남긴 흔적을 따라서
참으로 간다 간다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토요일에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2003년 봉하마을
햇수로는 거의 6년 만인가 봅니다. 2002년 12월 19일 노짱님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다음 해 2003년 아들이 3월에 태어 났습니다.
그 해 늦 봄이었을 겁니다. 우리 가족은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생가는 실제로 집주인(노무현 대통령과 아무 관계 없는 人)이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대통령 생가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할 텐데 유지보존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만 관광객 출입이 자유로웠고 몇가지 기념품을 집주인이 마루 내 놓고 판매하였습니다. 관광객이라고는 손으로 수를 헤아릴 정도 였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을 다시 되새겨 본다면,  집 뒤켠에 닭이 자유로이 돌아 다니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현직 대통령의 생가라고 하기에는 허술하였기에 안쓰러웠습니다.
2003년 봉하마을에는 그 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역대 대통령과는 다를 것이다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습니다.

중간세월
대통령 재임시절 동안 그 분을 따르던 추종자들은 적지 않이 실망을 했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상(像)과 다소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분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노짱이라는재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했습니다.

2009년 봉하마을
대통령직 퇴임 후, 그 분이 보여준 소탈함에 서서히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퇴임 후 기존 전직 대통령이 보여왔던 모습과는 달라서 노짱에 대한 열풍이 일시적 현상일 거다라는 생각, 그리고 현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실망스런 마음이 이전된 것일 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거를 전후로 해서 알게된 여러 사실들과, 노짱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면서 빨리 닫아버렸던 마음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도에는 국민들은 섣부른 파격을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찍 실망하게 된 것 입니다. 이제와서 알게된 것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처해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우회도로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의지 였습니다. 그러하기에 2009년에 다시 찾아본 봉하마을에 인내와 끈기, 기다림으로 가득찬 국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생가 뒤 사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뒤 사저

노무현 생가

노무현 생가를 누비는 방문객들

노무현 생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런 후회와 놓아서는 안될 믿음을 가지고 사저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권여사님을 뵙고 위해 봉하마을에 온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이 분의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봉사한 적 있기에 반가웠습니다.
옛 지인의 방문이 외롭고 의지할 곳 없으실 권여사님에게 작은 희망을 될 것이기에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김정길 전 국회의원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지금은 초라하다...영원히 초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봉하마을 방문에 같이 동참한 어느 한분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와 묘소를 보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무 초라하다". 맞습니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묘소를 조성했기에 초라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게요!


 그러나 아직은 초라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초라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묘소에서 참배를 마치고 봉화산 정토원에 가서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님 영정에 절을 했습니다. 마침토원 공양간에서 무료 점심을 제공해 준 터라 식사를 마치고 언덕에서 봉하마을을 조망했습니다.
옆에 있던 아들 놈이 외쳤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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