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호에 우편물을 싣는 장면과 미국 우정박물관에 전시된 타이타닉호 우편영웅 스콧 우디의 초상화와 유품.
1912년 4월15일 북대서양 바다에 침몰해 1513명의 사망자를 낸 타이타닉호. 얼마전 그 타이타닉의 마지막 생존자 밀비나 딘이 97세의 나이로 숨졌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딘 할머니는 사고 당시 생후 두 달밖에 안 된 아기여서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지만 706명의 생존자 가운데 최후의 증인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 생존자마저 저세상으로 떠나면서 인류 최대의 해양 재난은 역사에 묻힌다.
타이타닉의 비극은 영화 <타이타닉>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주연 배우 리어나도 디 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릿이 선상에서 양팔을 벌려 사랑을 약속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의 기억에 타이타닉의 상징처럼 뚜렷이 남아 있다.
영화가 아니어도 타이타닉은 무수한 화제를 안고 있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진 초호화 선박이라는 점, 신(神)도 침몰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해 불침함(不沈艦)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나 첫 항해에서 빙산에 부딪쳐 맥없이 가라앉았다는 점,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미국과 프랑스의 합동조사대가 침몰 71년만에 수심 4000 부근의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타이타닉호의 위치를 찾아냈다는 점, 몇차례 의회 청문회에도 불구하고 풀지못한 수수께끼가 널려 있다는 점 등 흥미를 끄는 요인이 많다.
그런데 정말 감동적인 영웅 이야기는 세상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타이타닉호에 실린 편지 꾸러미를 목숨 걸고 지키려 한 우편 영웅에 관한 이야기다.
타이타닉호의 정식 명칭은 R.M.S Titanic이다. 여기서 RMS는 영국 우편 당국인 ‘로열 메일의 배’란 뜻을 담고 있다. 타이타닉호가 여객선이지만 로열 메일과 계약을 맺고 해외로 가는 편지도 실어날랐던 것이다.
미국 뉴욕을 향해 가던 타이타닉호에는 등기우편물 200개를 포함해 3364개의 우편행낭이 적재됐다. 이 우편행낭의 처리를 위해 미국 우편원 3명, 영국 우편원 2명이 탑승했다. 모두 우편원 생활 15년 이상 된 베테랑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배가 항해하는 동안 행낭 안에 들어 있는 편지를 행선지별로 분류해 소인을 찍는 일이다. 배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즉시 배송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운명의 그날은 미국 우편원 오스카 스콧 우디의 44번째 생일이었다. 5명의 우편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해피 버스데이’를 부르며 축하파티를 하고 있던 중 배가 빙산에 부딪치면서 심하게 흔들렸다. 사고가 났음을 직감한 이들은 곧장 우편행낭을 쌓아둔 방으로 내달렸다. 그곳에서 등기우편물 행낭을 꺼내 갑판 위로 옮기기 시작했다. 물이 발목 위로 점점 차올라 위험이 고조됐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객의 우편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인 선원 앨버트 타이싱어는 당시 순간을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그들에게 빨리 작업장을 떠나라고 소리쳤다. 조금만 지나면 물이 들이쳐 탈출구를 막거나 배가 폭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를 흔들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나는 더이상 그들을 보지 못했다.”
이들의 영웅 스토리를 전시해 놓고 있는 미 국립우편박물관에는 사고 1주일 뒤 발간된 신문기사도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상황이 점점 위급해지자 그들(우편원)은 선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중요한 우편물을 갑판 위로 옮기게 해달라고. 그러고는 마지막까지 일을 계속했다. 그들은 모두 숨졌다.”
생일이 사망일이 된 우디의 시신에서 우편물의 행선지를 표시해 주는 전표가 발견됐다. 현장에서 목숨을 바쳤음을 보여주는 유품이다. 이들이 목숨 바쳐 지키려 한 우편물 780만통도 바다 손님이 됐다. 일부 우편행낭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조난자들을 물 위에 떠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고 당시 미국 우정청장이던 프랭크 히치코크는 “이들이 보여준 용기는 우정청 전체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배가 출발한 곳에 명판을 세워 이들의 정신을 기렸다.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는 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라는 모토를 세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집배원들로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이야기인 것 같다.
이종탁<출판국 기획위원> jtlee@kyunghyang.com
자료 출처 : 주간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