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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빅퀘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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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듯 어렵게 읽은 '김대식의 빅퀘스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을려고 안간 힘을 다 했지만, 잡생각만 나게 했던 책. 


김대식의 빅퀘스천김대식의 빅퀘스천


어쩌면 나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을려고 했는지 모른다.

저자 김대식은 이 분야에 대해서는 뛰어난 안목을 지닌 사람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롭다고.'라는 문구에서 한참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명쾌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나는 복사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복사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짧은 문장 속에서 미래의 모습을 얼핏 내다볼 수 있었다. 


이 책 '김대식의 빅퀘스천'은 인간탐구서 혹은 철학서인 것 같다. 

마치 인간은 누구인가, 

생각이라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와 같이 소화해내기 난해한 질문을 던져 놓고 과학과 철학 지식을 줄줄 풀어 놓는다.

그러니 텍스트를 이해는 커녕 쫒아 읽어내기 힘든 상태였다.


시간이 흘러흘러 나의 지식과 사고가 높아지더라도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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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1 - 붓다의 치명적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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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치명적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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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처럼 읽혀지는 보기드문 불교서적


대개 우리는 불교는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불교 교리의 자체 특성도 그러하지만, 이를 알려주는 책 혹은 강좌의 딱딱함도 이런 인식에 한 몫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 '붓다의 치명적 농담'이라는 책은 딱딱한 불교공부(금강경)를 물 흐르듯 풀어가기에 흥미진지하게 읽어냈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붓다의 치명적 농담


'책은 도끼다'에서 '붓다의 치명적인 농담'이라는 책을 소개하여 단숨에 읽어 버렸다. 

불교는 이거다라고 압축해서 알려주는 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P212부분). 

이 책은 박웅현스타일로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재독 삼사독 하면 할수록 또 다른 깊은 깨달음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 주요 발췌문 ]

P24.

저는 불교의 이치를 다루되, 그것도 아주 낮게’, 어디까지나 일상의 구체적 경험을 토대로 설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너무 수준높은 논의에, 옛 한문의 거친 어법을 견디느라 고생이 많았을 대중들에게 작은 위로와 이해의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강의를 시작합니다.

 

P162.

세계에 개입하는 자아의 활동을 줄여야

나는 그동안 모든 것을 내 식으로 판단해왔다.  그 바탕에는 나의 존재를 보존 확장시키려는 무의식적 동기가 깊이 작용한 듯하다.  이제부터 나도 모르게 벤 나의 편견과 습관, 관심과 이해관계 등의 개입을 반성하고, 사태를 공적 지평에서, 전체의 관점에서 읽는 훈련을 해나가야겠다.” 이런 작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붓다의 제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명합니다.  세계에 개입하는 자아의 활동을 제어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바깥의 영향력을 줄이고, 내적 자유의 폭을 확대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전통적으로 팔정도로 알려져 있고, 또는 이를 계정혜의 삼학으로 정돈하기도 합니다.

 

P163

아비달마의 오래된 지혜

아비달마는 나의 것, 나에게 속한 것이라는 소유의 환상부터 깨기 시작합니다.~~~

닭이나 소는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국가를 지배하는 군주가 있다고 해서, 우주를 지배하는 특정한 인격이 꼭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소유는 세계 자체가 가진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밀어붙인 강제입니다.  이 강제로 하여 본래 평화롭던 세계의 평화와 질서가 위협받고 깨어졌습니다.  이 오래된 습성을 고쳐야만 본래의 고요. 즉 열반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문장들은 전부 다 소유의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술부는 주부를 수식하거나 한정하는 것으로 모두 소유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비달마는 로 시작되는 문장과 어법들을 오류투성이의 작문으로 단정하고, 그것들을 를 뺀, 순수 객관적 서술로 바꾸어나갑니다.  이 전략은 나의 개입이나 오염이 배제된, 순수 객관적 사태를, 즉 다르마dharma(諸法)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우리는 가령, “나는 오늘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를 떠나 보냈다는 문장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아비달마는 이것을 매우 부정확하고, 들뜬 문장이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고쳐줍니다.

 

1)      물체가 있다.

2)      사랑한다는 감정과 슬프고 아쉬운 감정이 있다.

3)      눈물을 흘리는 한 물체가 다른 손 흔드는 물체를 지각한다.

4)      떠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충동이 있다.

5)      이 사건을 의식하는 과정이 있다.


P168

세상의 점착으로부터, 아니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깨어나 해탈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 저기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하시는 분이 있군요. 그렇지만 그저 고개만 끄덕여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이 다르고, 지식과 지혜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불교는 그래서 체화되지 않은, 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지식을 '알음알이'라 하여 불충분하고 불완전하게 여깁니다. 이런 '마른 지혜 건乾慧'는 자칫 수행자의 자만을 부풀리게 하는 심각한 해독을 끼칠 수도 있으니, 깊이 유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P181

메난드로스 왕의 질문, 기원전 2세기 합리적 사고를 향한 불교의 설득

불교의 '지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격과 자아를, 오온의 객관法으로 해체하는 작업에서 시작합니다!.


P212

잠깐 정리하고 넘어 갈까요.

1)      불교의 첫걸음은 우리가 아는 사물의 세계가 주관적 욕망과 환상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부터 입니다. 주관적 욕망에 물든 환상의 세계를 상이라고 합니다.  그 칙칙한 점착을 벗어난 객관의 세계를 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상의 세계에 집단적 무의식적으로 최면되어 있어서 객관적 법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잘 자각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어렵습니다

2)      불교의 지혜智慧, 혹은 반야般若는 이 두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뜻 합니다.  그 통찰력이 고통과 갈등의 이편 - 此岸세상을 벗어나게 하고, 우리를 저편 - 피안彼岸의 행복과 평화로 인도해 줍니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세계의 실상 實相에 대한 이해를 더 깊고 철저히 해나가야 합니다.

3)      오온五蘊은 바로 그 객관적 세계의 구소요소諸法 입니다.  오온을 통해 자아이름에 물든 주관적 환상의 세계는 폭로되고, 모든 문장과 어법은 를 제거한 형태로, 남의 일처럼 순수 객관적 요소로 분석되던 것을 기억하실 것 입니다.  무아無我, 나를 떠남으로써, 나는 비로소 해방됩니다.  그러고 나서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연기법과 화엄의 세계, 즉 사물과 각 요소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緣起, 그리하여 총체적으로 하나인 세계華嚴의 장엄한 모습입니다.

 

P254

술병에 반이나 남은 술

가령 술병에 술이 반밖에 안 남았다술병에 술이 반이나 남았다는 서로 다른 진술입니까.  같은 진술입니까. 아비달마라면, 여기서 밖에이나따위의 강조구는 분명 주관적 개입이라고 생각할 것 입니다.  그에 비해 술병에 술이 반이 남아 있다는 진술은 객관적 법이라고 생각할 것 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수 등이 주도한 대승의 중관中觀술이 있다라는 진술 자체가 이미, 술에 대한 발성자의 관심을 포함하고 있고, 그 사태를 향한 모종의 태도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일깨우려 합니다.  관심이 없었다면 술이라는 대상은 지각되지 않았을 것이고, 더구나 거기 얼마쯤 담겨 있는지가 눈에 들어오지는 더더구나 않았을 것이며, 당연히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배를 정말로 끊은 사람은 스스로 나는 담배를 끊었다고 자랑하고 다니지 않는 법입니다.

불교가 말하는 유무 有無, 이른바 객관적 사태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이렇게 자아의 관심에 의해 의미화된 것으로서의 존재와 관련된 말임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다시 말하면, 불교가 유무 有無를 말할 때, 그것은 법이 아니라 상에 관련된 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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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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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읽고 싶은 책 중의 하나 '책은 도끼다'!!!!

읽는 내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만든 책이다.


그렇다 독자로서 박웅현, 그가 평소 읽었던 책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박웅현은 다독(多讀)보다는 정정독 (精精讀)하는 스타일의 소유자다.

다독이 옳은지 정독이 옳은지를 구분하는 것은 각자 판단의 몫이지만, 나는 정독이 바람직한 독서법이라 생각한다. 한번의 읽음으로 글쓴이의 목적을 알아챌 수 없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암튼 저자 박웅현의 이해력이 놀라웠다.

나라면 수십번을 읽어도 텍스트 이면에 감춰진 의미를 캐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책의 좋은 문장이라든지 핵심내용을 노트에 별도로 기록하거나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지만, 부작용이 있어 그만뒀다. 전체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고 재독 삼독할려치면 기존에 메모했거나 밑줄친 부분이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삭뚝 잘라버리는 부작용 때문이였다.


인간 박웅현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정정독의 참 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온 몸이 촉수인 사람이 되고자한 박웅현의 목표를 그대로 닮고 싶어진다. 이 부분이 이 책의 첫번째 방점이다.

또 다른 책의 입구를 소개해 준 책이라는 부분에 이 책의 두번째 방점을 찍는다.

여기에 글을 적으시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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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생각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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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재였던 저자 '후쿠하라 마사히로'가 INSEAD(유럽 경영 대학원)에 유학하면서 동양(특히 일본과 한국)의 교육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이곳 INSEAD에 유학 온 학생들은 사고할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은 단순 주입암기식 학습법에 익숙했던 동양학생들과는 심한 격차를 보인다. 


과연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일까....방법을 읽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을 펴 낸 것이다[각주:1].


저자 후쿠하라 마사히로  |  역자 김정환  |  엔트리  |  2014.03.10


암기하다 보면 이해가 될 수 있다

중학생을 아들로 둔 대한민국의 아빠로서 나 역시 과거 '후쿠하라 마사히로'처럼 무작정 외우는 학습법을 아들에게 강요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수업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아들(암기하기 싫어하는) 나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암기하다 보면 이해가 될 수 있다"라고!!!!!!

정작 조언이라고 던진 이 말이 맞는지 틀린지 모른체 '그냥 해 봐!'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암기하다 보면~~~"된다는 말 속에는 '노력하다 보면 이해된다'라는 속깊은 뜻이 있었다고 자위할 뿐이였다.



암튼 저자는 몇가지의 물음(생각거리)을 독자에게 던진다.

물음을 던진 후 그 풀이과정을 서서히 알려준다. 물음에 대한 찬반 이론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답이다'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어찌보면 '옳다라고 할 만한 답'이 존재할 수 없는 물음이였는지 모른다.

다만 저자는 '열린 답'을 독자 스스로 찾아갈 것을 권한다. 

'열린 답'이란 각자의 사고, 학습과 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그런 답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답'이 되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답'될 수 없는 것이다.


논리력과 포용력 = 제3의 관점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열린 답'을 찾아내는 굳건한 논리력!

' 다른 답'을 제시하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포용력!

을 바탕으로 하여 '제3의 관점을 발견하고 이노베이션을 일으키기를 바라는 강한 바람'이라는 것이다.



* 이 책 덕분에 따분한 존재들이였던 철학자 혹은 경제학자 등등이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계기가 되었다.

데카르트, 존 스튜어트 밀, 마르크스, 애덤 스미스, 소크라테스, 하이데그.......


*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 근래에 이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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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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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지인에게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난 작가랑은 결혼하지 않을거야.......

작가라는 직업은 보기에는 서정적이고 뭔가가 있어 보일 것 같지만,

어떻게 해서 작가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작가는 슬픔이 많은 사람일거야......"라고.


로또번호가 1등당첨번호랑 ±1씩 틀려 꽝이 된 느낌

작가 장석주의 책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를 통해 글쓰는 작가에 대한 내가 했던 그 말이.....

마치 내가 산 로또번호가 1등당첨번호랑 ±1씩 틀려 꽝이 된 느낌이라 아쉽다.

작가는 슬픔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작가라는 직업이 고통스럽다.

글쓰기는 스타일다글쓰기는 스타일다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는 작가라는 직업을 '문장 노동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 만큼 작가라는 직업이 만만치 않음 강하게 알려준다.

그 예로서 유명한 작가의 말을 통해 전해 주고 있다.


왜 만만치 않은 작가가 되어 굳이 글쓰기를 할려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나는 정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내가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는 일을 이어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위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책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대표 작가의 소개와 그들의 문체를 소개하면서 대표작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내가 알지 못한 부분이 많았기에 실제로 이 작품을 읽고 보고 싶은 것이다. 특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러하다.


책 읽는 내가 점점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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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라면 적어도 이래야 한다 - 돼지가 있는 교실


 -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 -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 오리지널스(origi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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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년 후 당신의 자녀가 만날 직업


 - 부담없이 읽는 '싱글맘 부동산 경매로 홀로서기'








[ 주요 발췌문 ]

P212. '노인과 바다'가 표현하는 주제는 명확하다.

바로 패배 속의 승리이다. 무려 84일 동안이나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지만 노인은 그 샐패에 꺾이지 않고 그 실패들을 딛고 일어선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진 않았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 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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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면 적어도 이래야 한다 - 돼지가 있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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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의 마지막 학예회를 다녀온 후로 교사 역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아들의 담임 선생님은 작년에도 졸업생을 보냈으며, 당시 거의 일주일동안 마음을 추스리지 못했다며 이별의 아픔을 전했다. 올해도 졸업생을 보내야하니 6학년 담임하기 싫다는 속마음을 내보였다.


그리고 아들의 졸업식에 가서도 담임 선생님의 제자에 대한 애틋한 심정과 마음이 밥벌이를 위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직업교사(?)와는 확연히 구별됨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눈 역시 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들(선생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이별의 시간은 의외로 담백했다.

긴 말이 오가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닦을 수 있는 눈물만이 아쉬움을 말해 주었지만, 그들에게서 슬픔을 자제하는 모습은 역력했다.


'교사라면 적어도 이래야 한다'


감히 장담컨대 아들은 초등6학년 담임선생님을 평생 잊지 못할 거 것이다.

선생님과의 잊혀지지 않는 수 많은 추억을 함께 한 초등 6학년 한해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들의 추억이야기를 남기는 것은 오히려 이들의 돈독함을 의심하는 모양새라는 생각이 들기에 달리 적지는 않는다.

'교사라면 적어도 이래야 한다'는 것을 아들의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곱씹어 보게 되었다.


암튼 2월의 행사를 통해서 '교사'의 자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때마침 아들 책 '돼지가 있는 교실'(돼지 이름 P짱)에 나온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더 교사의 자질과 철학이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는지를 알게 되었다(이런 추억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학습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각주:1]).

돼지가 있는 교실

쿠로다 야스후미 지음 / 김경인 옮김



'돼지가 있는 교실'은 일본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실화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갓 부임한 선생님(쿠로다)이 3년동안 학생들과 '돼지(P짱)'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줄 곧 2가지 의문을 풀고자 노력했다.

첫째, 왜 하필이면 '돼지'였냐는 것이다.

둘째, 3년동안 잘 키운 돼지를 왜 식육고기처리 했냐는 것이다.

위 2가지 의문에 대한 내용을 책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의문인 왜 '돼지'를 키웠냐는 부분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동물키우기 하면 애완동물 정도 키우는 것이 쉽고 친숙하지만, 

'돼지'를 키우자고 제안한 선생님의 여러 의도 중에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학생들에게'생명과 죽음'에 대한 친숙하게 느끼게 하고자 함이다. 단순히 만물의 창조주가 셋팅해 둔 생(生)의 마무리로서의 죽음뿐만 아니라 뜻하지 않는 이별, 자연스러운 이별(학창시절 절친이였으나 각자 제 갈길을 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도 넑은 의미에서 (관계의)죽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도에서 보면 애완동물은 많은 학습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된다. 왜냐하면 애완동물(반려동물)은 대부분 한번 같이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동거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소를 키우기에는 상당히 거북스럽다. 힘에 부다낀다. 염소 정도면 몰라도......

그나마 소에 비해 왜소(?)한 돼지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왜 돼지를 식육처리했냐는 부분이다.

위 문단에서 밝혔듯이 선생님은 아이들이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랬다.

돼지가 늙어 제 목숨다여 죽었다면 아이들에게 학습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가장 효과 좋은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해서 돼지의 죽음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인데, 선생님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후배들에게 돼지를 맡기자는 결정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독단적으로 식육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의 반말이 심했을 거라고 나는 상상했지만 이들은 담담하게 선생님의 결정에 동의했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이렇게 쉽게 동의했는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암튼 순도(純度)100%는 아닐지라도 아이들이 선택한 돼지의 죽음이기에 학습효과는 있다고 본다. 돼지는 죽임을 당하여 단순히 사라진게 아니다. 매장하였거나 화장하였다면 2차 교훈이 없지만 식육처리를 거쳐 아이들의 음식이 되어 '음식  =  생명'이라는 가르침을 줬기 때문이다.


위 2가지가 상당히 억지스럽다.

혹시 이 책을 또 읽게 된다면 억지스러운 해석이 좀 더 매끈해지거나 전면을 뒤엎는 또 다른 해석이 나오겠지....



[ 주요 발췌문 ]

P148. 그렇다면 굳이 잡아먹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결론에 이르고 말지만,

그렇게 되면 음식과 생명이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현상을 재조명할 수 없게 된다.


P151.  오히려 P짱을 먹음으로써 음식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먹음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우리 인간이 이어가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P173. 그리고 의견은 아이들이 말했다고 자주적이고 교사가 말했다고 관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 의견이 모두에게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P178. 그래도 학부모님들의 시선은 따뜻했다.

"쿠로다 선생님, 저희 아이를 잘 부탁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아이들이 매일 등에 지고 오는 가방 속에 가득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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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에서 나온 실제 확인내용임=======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 커서도 다른 아이들과는 뭔가 다르겠죠?라는 '교육효과'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교육효과'는 전무하다고 해도 좋은 정도로 없다. 3년간보다 그 이후의 8년이란 시간이 훨씬 더 깊고 감정의 변화도 많은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P짱이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엄청난 사건일리는 없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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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 -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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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장석주 저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는 수 많은 작가와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지는 이 좋은 기분을 정말 간만에 느껴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라!  책!  책!" 외친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어느 책의 제목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그 책의 제목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이다.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책 읽지 않는 나에게 시원한 Uppercut을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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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7 - 15년 후 당신의 자녀가 만날 직업


2013/04/14 - 손자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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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2 - 박경철 '자기혁명' 중 '암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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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4 - 영원한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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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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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랬던 대학 1학년 시절, 친구들과의 어느 술자리에서 상당히 대찬(?) 여자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


"육체적 고통이 정신적 고통보다 약하다고 하는데.

그런 말 하는 새끼!

내한테 딱 걸리면 육체적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겠어!"

처음에는 딴지를 걸려고 했지만, 이 말을 되새김 해보니 마땅히 반박할 만한 말꼬리를 찾을 수 없었다.


흔히들 육체는 정신보다 수준이 낮은 것으로 매도해 버린다.

그런데 말이다......

게거품 물 정도로 육체적 고통을 당한다면 그로인해 정신이 돌아버릴 수 있다.

즉 육체가 정신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신력(인내력, 집중력 ,등)이 바탕이 될 때 일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힘(예를들면 괴력....차력사를 상상해 보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는 정신이 육체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이 둘은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인데,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해야만 상호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느냐 부분이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가했을 때 정신이 돌아버리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정신력이 강화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영화 '히말라야'를 보고난 후 이런 궁금증은 증폭되었고, 또 다른 궁금증의 가지가 돋아났다.

무택은 어떤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재현을 구할려고 했는지?

엄홍길은 왜 무택의 시신을 찾기위해 사지 히말라야에 갔는지?

일반인들은 감히 이런 선택을 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 '히말라야' 스틸컷1영화 '히말라야' 스틸컷1


영화 '히말라야' 스틸컷2영화 '히말라야' 스틸컷2


영화 '히말라야' 스틸컷3영화 '히말라야' 스틸컷3


영화에서 엄홍길의 인터뷰 명대사가 가슴을 울리면서 또 다른 생각하나 일어났다.

해발 7천미터 8천미터 올라가면 철학적인 생각이 떠오를거 같죠?


그런데 안 그래요. 오로지 제 자신이 보입니다.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고 극한 상황을 만났을 때 저의 본연의 모습이 나옵니다.


비로소 본인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는 거죠...


어쩌면 지금 많은 사람들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모른 채 계속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의 본연의 모습~~"에서 본연의 모습이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진짜의 자신의 모습"의 모습이 어떤 것일까?


혹시.......

죽을지 모르는 위험속에서 어떻게 살아날까...하는 모습이 본연의 모습일까.....

다시 말해서 위 엄홍길의 대사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모습이 "그냥 살려고 발버둥칠 뿐!"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엄홍길은 무택의 행동((영화 스틸컷3(해당 이미지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음)처럼 무택은 후배 재현이를 구출하다가 설맹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됨))을 통해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반성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하나.....

내가 무택이였다면.....죽음의 위험속에서 후배 재현을 구출할려고 했을까.....

후배 재현을 생각하면 구출 시도를 해야 옳지만......

나의 가족을 생각하면 구출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양가감정속에서 과연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히말라야!'

이래 저래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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