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99)
반값 할인 사이트 정리 - 티켓몬스터, 할인의 추억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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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값으로 물건 값이나 서비스료 지불한다면, 바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보를 찾다보면, 정상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합니다.
'반값 쿠폰' 내지 '반값 할인'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소셜커머스'라는 신개념을 사업화하는 전략입니다.
소비자는 저렴한 금액으로 가치를 누리고,
공급업자는 입소문을 통한 광고효과를 올리고,
서비스 업자는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3자 모두 '윈-윈-윈'될 수 있는 개념 입니다.

새로운 파이를 발굴한 안목이 대단합니다. 최초에 누가 어떤 업체가 이런 신사업을 구상했는지는 모르지만 거간(居間)의 역할 중 장점을 잘 활용한 사업 아이템입니다.


암튼 소비자의 입장에서 반값 할인 업체 리스트를 정리 했습니다.

반값 할인 업체 리스트


상기 사이트를 대충 둘러 본 결과, 디자인 보다는 내용과 지방 거주자로서 좀더 애착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할인의 추억'과 '티켓몬스터' 입니다.

'할인의 추억'의 경우, 아마도 사업 시작 자체를 '대구'를 중심으로 진행했는 모양입니다. 솔직히 서울이나 수도 인근을 제외하면 소비자가 혜택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실정이니, 지방업체에 더 호감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일 겁니다.
할인의 추억

할인의 추억에서 진행 대구 반값 할인 행사


현지 사업 확장으로 서울 지역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울산과 부산에도 서비스 지역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는 '티켓몬스터' 입니다. 이 곳 역시 지방 거주자(현재로는 부산)에 대한 갈망을 어느 정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소셜쇼핑 업체가 우후죽순 처럼 난립하는 가운데(검색 엔진을 통해 접속한 일부 반값 할인 사이트는 운영 중단 된 경우도 있음) 어쩔 수 없이 먹튀 사이트가 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따라서 수 많은 할인 업체 가운데 신뢰할 수 있는 업체를 찾아 이용하는게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 입니다. 이런 점에서 해외 투자까지 얻어낸 '티켓몬스터'가 단연 돋보입니다.

티켓몬스터

티켓몬스터에서 진행한 부산 반값 할인 행사


반값 할인 업체 트위터 주소




많은 반값 할인 사이트를 일일이 뒤지는 수고를 들어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사업 영역의 한계가 없는 듯 합니다.

반값 할인 정보 정리 사이트
가장 알찬 내용과 신뢰를 주는 곳은 '다원데이' 입니다. 불만Z제로 코너와 쿠폰직거래 코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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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 잠 재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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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춘기 시절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춘기를 훌쩍 넘은 나이에도 질풍노도를 앓고 있다면 어떨까요?
다이나믹한 걸까요, 아니면 아직 철이 없다는 걸까요?

철도 없으며 유약한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항상 하는(如如) 마음'을 갖기 위해,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해, 조용한 산사를 찾았습니다.

이름하여 '여여정사' 입니다.

근육질을 사나운 존재가 저에게 단단히 벌할 모양새 입니다.

부처님의 모습이 밝지 않은 것은, 제 마음이 그러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지친 마음을 달래려다 가슴속에서 쏟아질려는 뭔가를 애써 누르며....







습한 곳에서도, 평평하지 않은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면 살아가는 강한 생명의 존재처럼.....
저 역시 성난 파도를 잠재워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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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열반 후 다녀온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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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족과 함께하는 외출이외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홀로 서울 출장 중인 근래에도 숙소와 회사근무지 외에는 달리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미처 봄 옷을 가져오지 못해서 부득불 아울렛에 가서 옷 몇 가지 산 것을 제외하고는 쉬는 날이나 밤에는 숙소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삼각산 길상사삼각산 길상사

그러나 지난 일요일에는 혼자서 큰 발걸음을 했습니다. 며칠 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께서 회주로 계셨던 길상사에 다녀왔습니다.

일요일에만 즐길 수 있는 달콤한 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평소처럼 일어나서, 샤워한 후 지하철을 이용해서 한성대입구까지 갔습니다.

마침 길상사가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어 올라 탔습니다. 길상사 초입에는 어리 어리한 부를 자랑하는 대궐같은 집들이 즐비 했습니다. 무소유 vs 극한소유의 각이 공존하는 장소였습니다. 셔틀버스를 탄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길상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가 쓰여진 걸개그림이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 입적 직후라서 그런지 길상사 전반을 휘둘러싼 분위기는 '침묵'이었습니다.
곳곳에 묵언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였습니다.

지금 이 시점 길상사가 원하는 것은, 아니 입적하신 법정스님께서 사부대중에게 던진  말씀이 바로
나 자신에게 귀기울여라 인가 봅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것 입니다.
스님의 입적에 슬프하지 마라. 대신 자신의 깊은 소리에 귀 기울여라 인 것 입니다.

절 안은 생각보다 혼잡하지 않았습니다. 분향객들로 많이 붐빌 줄 알았는데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좋았습니다. 먼저 분향실에 들러 삼배를 마치고 길상사 이곳 저곳을 둘러 봤습니다.

길상사의 유래!!
익히 많이 알고 있는 것 처럼 '길상사'는 어느 보살님께서 땅을 보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길상사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원래는 고급요정 '대원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곳입니다.
'대원각'은 삼청각과 청운각과 함께 세 손가락에 꼽히는 고급요정 이었습니다. 당시 막강 실세를 행사하는 거물급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고 합니다.

이런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 길상화)보살이 법정스님께 시주했다는 것 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느 사찰과는 다른 건축물이 보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길상사 극락전 입니다.
확실히 일반 사찰과는 다른 특이한 건축양식인데, 이는 대원각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2년전에 다녀온 어느 사찰도 양식이 좀 특이했는데 말입니다.

극락전극락전


땅을 기부한 사람은 누구?
일본 유학파이자 문학여성이었던 그녀가 왜 기생의 길로....
그렇다면, 어마한 땅값을 자랑하는 이 땅을 보시한 사람은 어떤 분일까요?
김영한은 기생이였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유학한 그녀가 기생의 길로 들어 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영한의 일본 유학에 도움을 준 해관 신윤국(조선어학회 회원)라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유학 중이던 김영한이 스승 신윤국이 일제에 의해 함흥에 투옥되었다눈 사실을 알고 귀국하게 되었으나 스승의 면회가 되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김영한젊은 시절 김영한



법조계 유력인사를 알게 되면 스승과의 면회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당시에 거물급을 만날 수 있는 직업.....바로 기생의 길에 접어 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러브스토리....

청산학원 3학년 시절의 백석청산학원 3학년 시절의 백석

결국 스승을 만나지 못한 김영한은 시인 백석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이해가 힘든 동거까지 했다고 합니다. 

시인 백석의 집안에서 보면 아들이 기생과 교제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일인 것 입니다. 백석 부모는 이에 아들을 강제로 결혼을 올리게 했으나, 백석은 다시 김영한의 품으로 오게 됩니다.

이 즈음에 백석은 김영한에게 만주로 도피하자고 했으나, 김영한은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앞 날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백석은 홀로 만주로 떠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들의 마지막 이별이었습니다.


백석문학상의 백석 그 분!
한국 전쟁 발발 후 백석은 북한에서 교수로, 김영한은 서울 성북동에서 '대원각'을 운영하면서 많은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시가 천억 원이 넘는 재산을 선뜻 보시한 김영한 보살에게 어느 기자가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에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길상화 공덕비길상화 공덕비

이 둘의 사랑이 얼마나 애뜻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돈 보다는 못한 것은 확실한가 봅니다.
혹시 길상사에 들리실 계획 있으신 분은 이런 내용을 알고 가시면 보고 느끼고 하는 감정이 더 깊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길상사를 통해서 법정 스님보다는 길상화 보살에 대해 많이 생각 해 보았습니다.

김영한 & 백석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planetlover/130073934229

백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관련글 보기  

2012/05/09 - 1박2일 전남 여행 - 첫째날3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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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새해 첫 날 내가 찾아간 곳 -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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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사에서 해맞이를 하고 찾아간 곳은 표충사 입니다. 
매년 한 번 정도는 꼭 찾아가는 사찰 중 하나 입니다.
얼마나 좋아 했으면, 2009년 마지막 날에 인근 펜션에서 자고 새해 새벽 예불을 드리는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예약이 되지 않아서 포기해 버린 곳 입니다.

대한민국 강산이 그렇듯이 이곳 표충사도 계절마다 즐길 수 있는 색채감이 아주 좋습니다.
푸르름이 있는 풍경은 색감이 전해 주는 다름의 맛이 있고, 푸르름이 물러간 풍경에도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표충사 인근 도로변에는 '재약산 미나리'와 '대추'를 판매하는 상점이 많습니다.
영남 인근서는 청도 '한재 미나리'가 유명한데, '재악산 미나리'도 알아주는 브랜드라고 합니다.

생각 외로 한산한 모습 입니다. 그래도 어린 학생에서부터 노인에 이러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새해 인사를 위해 표충사에 들렸습니다.
앞에 보이는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으로 추정되는 '표충사 삼층석탑'입니다. 


삼층석탑에 하얀 토끼 한 마리가 미둥도 없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명 '토끼 보살'이라고 합니다. '토끼 보살'은 이미 매스컴을 탄 유명한 존재 입니다.
스님이 법당에서 예불을 할 때면 법당에 들어가 같이 예불을 모신다고 합니다.


아들도 이런 토끼가 신가한 것인지, 아니면 토끼라는 동물 자체가 신기한 것인지....
연신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법당 옆 자리에 있는 감나무 한 그루에는 아직도 빨간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연초 추위를 생각하면 자연산 '아이스 홍시'일 겁니다. '천연 아이스 홍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땡감에 연화제로 처리하여 홍시를 만든 후 냉동고에 살짝 얼린 홍시가 '아이스 홍시' 인데,
표충사 천연 아이스 홍시는 감나무에 매달린 채로 홍시가 되어 겨울 바람에 얼었으니, 이는 바로 인간의 힘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진정한 '천연 아이스 홍시' 입니다. 어떤 맛일까요?

가족들과 동선(動線)을 달리하며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형제의 모습도 여행의 의미를 더 해 줍니다.

이렇게 한 해의 시작을 조용히 시작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파괴한 일정이었습니다.
보고나서 먹자(See and then Eat) 입니다. 수인사 떡국 한 그릇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후 2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허기로 배가 땡겨왔습니다.

일행이 정한 먹거리는 바로 '아구찜'입니다. 아구찜하면 마산 아구찜이 많이 알려졌는데, 마산과는 정반대 방향인 부산 기장군 일광에 위치한 '전산가든'의 아구찜도 맛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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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통영 '해저터널'을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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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해저터널', 그냥 보면 재미 없어   알고 봐야 지대로 맛을 느껴... 

'경남 통영 유람기1' 이후로 아직까지 '경남 통영 유람기2' 이야기를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람기2에 앞서 통영 '해저터널'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세부적으로 집어 보고자 합니다.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


1927년 일제에 의해 착공돼 5년만에 건설된 동양 최초의 바다 밑 도로 입니다. 우선 터널 입구 벽면에 4개의 한자로 된 현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용문달양’(龍門達陽)입니다. 

용궁의 문으로 들어가면 빛고을 산양(山陽)에 이른다’는 뜻으로 시공 당시 통영군수였던
일본인 '야마구치 아키라'의 글씨 입니다.

오른쪽 지도를 보면 해저터널을 지나면 통영군 '산양읍'으로 들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판 글씨의 내용을 음미한다면...'해저터널'이 '용궁'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신비롭고 환상적일까요...? 

하지만 용궁처럼 화려한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칙칙하고 어두컴컴 합니다.

'용궁의 문'이 아니라 '용의 목 안'으로 바꿔 음미한 후 터널로 들어서면, 마치 용의 목 안으로 들어서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터널 천정을 올려다 보면  ㄷ자형 기둥이 목뼈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 입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건너편으로 나가게 되면 햇빛이 빛나는 모습을 본다면 '용문달양'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왜 해저터널을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일본은 순수한 마음으로 당시 기술로는 힘든 해저터널 공사를 감행했을까요?
일본의 해저터널 공사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풍수지리학과 역사 이야기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해저터널 공사가 이뤄진 이 곳은 '판데목'이라 불려지는 곳 입니다. 이 목은 풍수학적으로 통영의 목구멍에 해당되는 곳 입니다. 목구멍이 막히면 생명이 다하게 되는데, 목구멍을 연결하는 방법은 작은 배가 지나게 한다든지, 육지로 연결시키든지, 다리를 놓아 왕래가 될 수 있게 하는 방법등이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간척을 해서 육지로 연결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엄청난 공사이기에 주로 다리를 놓아 목구멍이 막히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김삼주씨라는 분은 사재를 털어 다리를 놓았다고 하니, 통영사람들에게 '판데목'의 중요성을 애둘러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인은 해저터널으로 목구멍이 막히지 않게 할려는 의도였을까요?  

위의 안내판은 해저터널 입구 왼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글의 내용은, 마치 일본이 착한 마음으로 튼튼한 통로(목구멍이 막힐 염려 없는)를 만들어 준 것처럼 오해하게끔 합니다.
난독증 있는 저로서는 읽고 또 읽어 보아도 오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분명히 위의 설명은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곳 '판데목'은 일본군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게 패배하여 목숨을 잃은 역사적인 곳 입니다.
'판데목'에서 '판데'라는 의미는 '일본군이 제 목숨을 판 곳'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해저터널'을 일명 '판데굴'이라고도 합니다.

일제강령기 때 '야마구치 아키라'와 같은 일본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한국인들이 다리를 놓아 일본군 시체의 위를 걷고 있다고 불쾌하게 생각했을 것 입니다. 그렇다고 다리를 없애면 어떻게 될까요? 통영사람들은 풍수학상으로 '판데목'을 아주 중요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다리을 쉽게 없애지는 못할 것 입니다.

이에 차라리 일본군 시체 밑으로 한국인들이 다니게 끔 해야겠다는 의도로 '해저터널'이 만들게 된 것 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해저터널 안을 걸으면 시각적 실망감을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여행장소의 역사적 배경, 유래등을 알고 간다면 여행의 참맛을 누릴 수 있었겠다는 후회가 됩니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여행이라면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요.
여행의 준비단계에서 팬션이나 먹거리 준비에만 관심을 가지는 아빠가 되지 말아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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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무료 숙박권 1장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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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무료 숙박권 이벤트     많이들 참여해 주세요.

지난 여름 휴가 때, 옥션 숙박에서 숙소 예약한 후 가족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왔습니다.
마침 옥션 숙박에서 이벤트 중이었는데 무료 숙박권 1장을 당첨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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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무료 숙박권 이미지는 요기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무료 숙박권 당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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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아이파크 콘도 정보보기 http://www.i-parkcondo.co.kr


참고로, 아래의 사진을 보시면 설악 아이파크 콘도의 보수공사가 계획되어 있는 모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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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지고 있는 콘도 숙박권을 드립니다.
당첨자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정기준
* 본 블로그에 댓글을 최소 1번 이상 남겨주신 분(이번 포스트 댓글은 제외)
* 설악 아이파크 콘도에 여행을 다녀 오신 후 여행 후기를 남겨 주실 분
* 여행을 가야 하는 사연을 남겨 주신 분

마감기한
* 11월 29일 오후 7시까지

발표일자
* 11월 30일 오후 8시

배송일자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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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유람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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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휴가 여행 후 간만에 가지는 가족나들이 코스로 통영에 다녀 왔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통영을 택한 게 아니라, 아는 지인의 회사 보유 팬션 예약이 통영 밖에 되지 않아 그리된 것 입니다. 해서 통영이라는 지역에 대한 여행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떠났습니다.
동행한 지인 가족과 같이 오붓하고 조용히 쉬다 오자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여행지, 통영에 대한 촌평은 기대 대비 대만족이었습니다.

통영시내 자체가 관광코스 입니다. 통영 시내 외곽이 뿐만 아니라 시내 한 가운데 여러 둘러볼 수 있는 기념 공간이 많았기 때문 입니다.

우선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곳은 남망산 조각공원 입니다. 
그러나 이 곳의 압권'조각' 전시물이 아니라 바로 통영 앞바다 입니다. 

남망산 조각공원조각공원에서 내려다 본 통영 앞바다

부산에 살아 본 사람으로 부산 앞 바다와 비교해 볼때, 통영 앞 바다가 못할 게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산 앞 바다는 고층빌딩 때문에 사람냄새가 별로 인 반면에 이곳 통영은 억세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과 아련한 지난 시절의 장면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청마문학관 입니다.
'청마'가 누구일까요...
지난 1942년 만선일보에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기획연재에서 유치환이 일제를 옹호하는 친일 산문을 써 친일행적 논란이 일으킨 '유치환'선생입니다.

문학관 위쪽에는 생가가 있습니다. 시각적으로는 별로 볼게 없지만, 옛 사람의 향기를 맡기에는 좋았습니다. 특히 여러 문학가와 주고 받은 몇 통의 편지들이 눈길을 잡았습니다.


세번째로 들린 곳은 바로 동피랑 마을 입니다. 알고보니 동피랑 마을은 몽마르뜨와 같은 분위기라고 한다네요. 동피랑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듣는이로 하여금 친숙함을 불러오게 합니다.
이곳은 비탈진 곳에 허물어져 가는 주택단지 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유명하게 된 것은, 골목골목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워졌기 때문 입니다. 부수고 새로 짓는 삽질형 개발논리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간단한 아이디어 접목 하나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곳 입니다. 
다만 집들이 워낙에 촘촘하게 들어앉아 있고 도로가 좁다보니 관광객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주민에게 소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말이 나오지 않도록 입단속을 해야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런 곳에 어떻게 살아....", "정말 낡아 빠졌다."등의 헛소리가 무심결에 나올 수 있으니 말 입니다. 이런 말들이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01

요즘 통영에도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좋은 풍경을 손쉽게?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 동피랑 마을 꼭대기에서 충분히 통영 앞 바다와 시내의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만일 한려해상수도의 멋진 경치를 편하게 감상할 분은 '케이블카'가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다음 코스로 찾아 간 곳은 바로 충렬사 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 입니다. 네비게이션이 위치를 잘못 안내해 준 덕분에 웃지 못할 상황도 잠깐 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유물 전시관을 먼저 보았는데, 정말 초라했습니다. 안내판을 보지 못했다면 화장실인 줄 알았습니다. 오래 전에 만들었는지 건물디자인이 역사명승지에 옆에 있는 화장실과 흡사했습니다.
그러나 실망을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사당쪽을 다가 갈 수록 오랜 역사의 향기가 전해 졌습니다. 그리고 아름더리 은행나무의 노랑잎이 늦가을 햇살을 받아서 선명한 느낌을 전해 주었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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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의 마지막 코스는 해저터널 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 진 것이라 합니다. 당시의 토목기술이 발달되지 않은 점을 생각해 볼 때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의외로 단순한 방법으로 접근했더군요. 바로 바닷물을 막아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통영 '해저터널'의 색다른 점은 바로 생활 속에 묻어 존재한다는 것 입니다. 일반적인 관광지는 현지인의 발걸음보다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많은 곳 입니다. '해저터널'은 바로 바다 건너 저편 마을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지름길 역할을 하는 하나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교복차림의 학생들, 운동복차림의 아주머니들을 쉽게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관광객들은 허전한 맛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어린이들은 상상을 못하더군요.
01


이때 양 출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보면서 설명해 주면 쉽게 이해를 하였습니다.

해저터널해저터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




통영 여행이 주는 또 다른 묘미는 '일본풍'을 조금 느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아래 사진은 해저터널 출발 포인트 앞에 있는 어느 주택 입니다. 대충 보아도 우리나라의 가옥구조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일본식으로 지은 주택 입니다.

해저터널 일본식 주택해저터널 입구에서 찾은 일본풍 주택



중앙젤 !
'디젤'이 아니라 '듸젤' 입니다. 마치 70~80년대 사용했던 표기법 입니다.
바로 통영에서는 느낄 수 있는 맛은 과거 기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청마문학관 주차장에서 찾은 '중앙듸젤'간판



이렇게 첫 째날 코스를 마치고 숙소로 예약해 놓은 팬션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다른 손님들은 없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팬션위치는 통영과 거제도 다리가 있는 곳으로 건너편 거제도의 야경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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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션 여행의 백미는 데크에서 구워 먹는 바베큐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여행에 준비한 고기는 목살과 삼겹살이었습니다. 장모님께서 하시는 고기집 '불타는 껍데기'에서님들에게 제공하는 고기 그대로를 가져왔습니다.
팬션 여주인이 바베큐를 맛있게 굽는 방법을 설명하시면서
"정말 좋은 고기를 가지고 오셨네요. 이렇게 두꺼워야 맛있게 구워 집니다"라며 시범으로 구워 주셨습니다.  고기 살점 하나를 입안에 넣으니 육즙이 입안에 가득 펴지면서 부드럽고 맛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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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과 2009년 봉하마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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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090926       노짱이 남긴 흔적을 따라서
참으로 간다 간다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토요일에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2003년 봉하마을
햇수로는 거의 6년 만인가 봅니다. 2002년 12월 19일 노짱님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다음 해 2003년 아들이 3월에 태어 났습니다.
그 해 늦 봄이었을 겁니다. 우리 가족은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생가는 실제로 집주인(노무현 대통령과 아무 관계 없는 人)이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대통령 생가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할 텐데 유지보존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만 관광객 출입이 자유로웠고 몇가지 기념품을 집주인이 마루 내 놓고 판매하였습니다. 관광객이라고는 손으로 수를 헤아릴 정도 였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을 다시 되새겨 본다면,  집 뒤켠에 닭이 자유로이 돌아 다니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현직 대통령의 생가라고 하기에는 허술하였기에 안쓰러웠습니다.
2003년 봉하마을에는 그 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역대 대통령과는 다를 것이다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습니다.

중간세월
대통령 재임시절 동안 그 분을 따르던 추종자들은 적지 않이 실망을 했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상(像)과 다소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분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노짱이라는재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했습니다.

2009년 봉하마을
대통령직 퇴임 후, 그 분이 보여준 소탈함에 서서히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퇴임 후 기존 전직 대통령이 보여왔던 모습과는 달라서 노짱에 대한 열풍이 일시적 현상일 거다라는 생각, 그리고 현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실망스런 마음이 이전된 것일 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거를 전후로 해서 알게된 여러 사실들과, 노짱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면서 빨리 닫아버렸던 마음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도에는 국민들은 섣부른 파격을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찍 실망하게 된 것 입니다. 이제와서 알게된 것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처해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우회도로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의지 였습니다. 그러하기에 2009년에 다시 찾아본 봉하마을에 인내와 끈기, 기다림으로 가득찬 국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생가 뒤 사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뒤 사저

노무현 생가

노무현 생가를 누비는 방문객들

노무현 생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런 후회와 놓아서는 안될 믿음을 가지고 사저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권여사님을 뵙고 위해 봉하마을에 온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이 분의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봉사한 적 있기에 반가웠습니다.
옛 지인의 방문이 외롭고 의지할 곳 없으실 권여사님에게 작은 희망을 될 것이기에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김정길 전 국회의원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지금은 초라하다...영원히 초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봉하마을 방문에 같이 동참한 어느 한분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와 묘소를 보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무 초라하다". 맞습니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묘소를 조성했기에 초라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게요!


 그러나 아직은 초라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초라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묘소에서 참배를 마치고 봉화산 정토원에 가서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님 영정에 절을 했습니다. 마침토원 공양간에서 무료 점심을 제공해 준 터라 식사를 마치고 언덕에서 봉하마을을 조망했습니다.
옆에 있던 아들 놈이 외쳤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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