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99)
안동 볼거리 -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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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안동하면 볼거리로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을 꼽으며, 먹거리로는 '안동찜닭'을 첫째로 떠올립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먹거리로는 '안동찜닭' 만 먹어 봤기에 논할 수 있지만(사실 정말 먹고 싶은 것은 '안동마늘통닭'임), 볼거리로는 개인적으로 '병산서원'을 꼽고 싶습니다.

 병산서원은 안동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다. 1572년(선조5)에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과거에 운송수단이라고는 소나 인력으로 할 수 밖에 없었을 터인데, 어찌 옮겼을까요?

 풍산현에서 왜 병산으로 옮긴 이유는, 풍악서당 주위에 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면서 점차 조용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상실되면서, 조용한 병산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하회마을과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나, 병산서원 가는 길은 비포장포로 입니다. 다만 병산서원 앞쪽의 낙동강 백사장에는 레프팅 시설과 사륜오토바이 놀이장이 있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의 아내는 병산서원에 홀딱 반했습니다. 번잡한 하회마을과 달리 조용하며, 비포장도로를 지난 후 눈 앞에 펼쳐진 의외의 호젓함과 낙동강 건너 편의 병산서원을 마주한 병산자락의 기세에  압도당한 것인지 모르지만, 확실히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Picture from 병산서원

 병산서원에는 백일홍나무(배롱나무)가 유명합니다. 안동뿐만 아니라, 선비고을 영주에도 배롱이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자주 들리는 밀양 표충사에도 배롱나무가 법당을 지키고 있습니다.

Picture from 병산서원


배롱나무를 인위적으로 심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껍질이 아주 얇아 마치 없는 것 같습니다. 속이 다 비치는 것 같습니다. 옛 선비들은 이 나무의 모습처럼 살 것을 다짐했습니다. 속이 다 들여다보이니 겉과 속이 다를 수 없습니다. 속으로 딴 마음 품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삿된 생각도 하지 않고 투명하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제자가 공자에게 [시경]에 흐르는 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공자는 ‘사무사(思無邪)’, 즉 ‘어떤 사악한 생각도 안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배롱나무는 바로 공자의 이 선비 정신을 보여줍니다.



Lagerstroemia indica | crape myrtle
분류 현화식물문 > 쌍떡잎식물강 > 도금양목 > 부처꽃과
다른 이름 : 원숭이미끄럼나무, 간즈름나무, 자미화, 목백일홍, 백일홍나무

관련글 보기  
 안동 먹거리 - 찜닭
 부석사 무량수전
 길을 찾다 in 소수서원
 밀양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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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짝 늦은 창녕 화왕산 등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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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7일에는 경남에서 초보 등산코스로 좋은 화왕산에 다녀왔습니다.

가을 정취를 만끽하려는 등산객이 많았습니다. 특이하게도 어린 아이들도 부모님 손을 잡고 같이 하기도 하더군요.

저를 닮아서 걷기를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서 화왕산 등산코스 중에서 가장 쉬우며 단코스를 택했습니다.

화왕산 등산코스
화왕산 등산코스
위 사진에 나온 일반적인 코스를 약간 변형해서 파란색으로 표시된 길을 따라 갔습니다.
중간 중간에 아들 녀석의 짜증과 힘겨워 하는 모습을 달래면서 말입니다. 지도 출처 보기
좀 힘들긴 하지만, 제대로 땀 흘리며 등산을 즐길려면 반대편 창녕여중에서 환장고개로 오르는 코스를 추천합니다(창녕여중 - 도성암 - 환장고개 - 화왕산정상). 
 
왜 환장고개를 지칭한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짐작컨데 평평하거나 완만한 등산길을 가다가 난데 없이 치켜든 경사 각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등산 초입부터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 엄마가 설득과 회유를 하고 있는 중
 
 
화왕산 억새군락지에 도착했어도 여전히 짜증 섞힌 아들 모습
 
화왕산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이유는 바로 이 억새일 겁니다. 56,000여평의 넓은 정상에서 대단위로 억새가 울창한 모습을 감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요.
 
참고로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한 화왕산이 또 다른 맛이라고 한답니다.
화왕산 정상에서 드디어 웃음 보이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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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 씻겨진,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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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션에서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일행은 울산 정자해변을 찾아갔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 보다 바다 파도를 즐기고 있는 두 녀석!
지난 통영 달아공원에서 같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이후로 마치 친오누이 같아 보입니다.

거제 몽돌해수욕장처럼 이곳도 모래가 아니라 조약돌이 깔려 있습니다.
모래해수욕장 나름의 맛도 있겠지만, 놀고 난 후 신발이며 옷에 묻은 모래를 제거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이곳 정자해변의 뒤끝은 참으로 깔끔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울산 장생포에 있는 고래박물관 입니다.

항상 가지는 생각이지만 '돌고래'는 언제보아도 귀여운 이미지 입니다.

야외광장에 덩그러니 놓여진 배 한 척이 있습니다. 배에 오르기 전에는 내부를 왔다 갔다 할 수있겠구나 했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갑판 위만 공개되었습니다. 단순하게 장식용 전시물 역할만 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3월에 다녀온 진해해양공원의 전투함이 생각이 나더군요. 얼마나 좋았던지 마치 "캡틴이 된듯한..." 상상을 일으켰기 때문 입니다.

이곳 고래박물관의 백미는 '고래수족관'관람 입니다. 수족관에는 터널이 있어, 터널 속에서 보면 머리 위로 유영하는 고래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고래박물관을 제대로 이해할려면, 장생포에 대한 지식과 애환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장생포의 번창과 몰락은 고래잡이(포경)과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래잡이 전성기였던 1970년대의 장생포는 포경선 20여척에 1만여명이 상주했을 만큼 큰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에서 상업적 포경행위를 금지하면서 장생포의 쇠락이 급격하게 진행 되었습니다. 장생포가 얼마나 고래와 밀접한 관계였는지는 포경이 금지된 25여년이 지난 지금도 장생포 앞에는 즐비한 고래고기 전문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위 두 사진의 출처 보기

전시실에서 촬영한 사진속 술잔에는 지난 날의 고단함과 추억이 담겨져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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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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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주여행의 숙박지는 마우나오션리조트 내의 마우나콘도 입니다.
경주 동대산 해발 500m에 위치한 골프텔 개념의 리조트 입니다.

경주 양동마을이 포항과 인접해 있는 반면 마우나오션리조트는 울산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어둠이 내려 앉은 초저녁에 산기슭을 올라갈 때, 이 어둠 속에 과연 어떤 광경으로 우리를 반길까 하는 설레임이 일어났습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처럼, 도착하자마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염려는 오히려 운치 있는 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숙소 도착 후,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숙소 이동을 한 번 더 해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빌라형이 아닌 단독형 콘도였기에 들떤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없이 마음 편히 마치 개인별장에 온 기분을 내며 숙소 이곳 저곳을 살폈습니다.
부엌과 거실의 경계를 높낮이의 차이로 구분한 구조가 색달라 보입니다.

침대방1칸과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침대방내에서는 별도의 화장실이 있습니다.
창문밖으로 골프장 그린필드와 멀리 동해바다가 보이는 조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온돌방에서 왁자지껄 놀고 있을 때 우리들은 준비해 간 삼겹살을 먹었습니다.

역시 구이용 고기로는 삼겹살을 따라 갈 고기가 없나봅니다. 삼겹살 맛의 비법은 12미리에 있나 봅니다.

요즘 배추값 몹지 않게 상추, 깻잎, 고추의 가격도 높습니다. 고가의 신선야채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은, 삼겹살 구이점을 하시는 장모님으로부터 삼겹살을 거의 공짜에 가깝게 확보했기 때문입니다.(어서 빨리 장모님 모시고 한번 와야겠습니다.)


창밖으로는 소리 없이 비가 내리고,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피어나는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관련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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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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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여름 휴가 이후 다시 찾은 경주 입니다. 올해 여름 휴가 코스도 경주로 계획했습니다만, 휴가 기간이 맞지 않아 다음 기회로 미뤘는데, 결국 이제서야 다시 찾았습니다.

사실 이번 여행은 급조된 터이라, 구경거리에 대한 사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여행 첫 코스 '양동마을'에 대한 정보도 태부족 했습니다. 경주 양동마을이니 당연히 경주IC에서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경주 최북단에 위치하여 오히려 포항과 더 가까운 곳에 위치했습니다. 단지 우리 일행이 경주 양동마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는 정도였으니 말 입니다.

양동마을 초입에 있는 양동초등학교 앞에 자동차를 주차한 후 전방의 풍경을 잠시 관망했습니다. 언덕배기에 눌러 앉은 고래등 같은 한옥과 몇채의 초가지붕만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그리고 시멘트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먼지로 인해 아늑한 분위기를 예상했던 것에 찬물을 붓는 듯 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면 뭔가 달라도 다르겠지!
이벤트성 구경거리만 준비해서 관광객을 모우는  대한민국 지자체 선정 문화유산이 아니니 실망은 아직 일러! 라며 마음속 인내심을 일으키며 천천히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전통떡 만들기 행사를 하였습니다. 건장한 일부 관광객이 떡메를 내려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양동마을 박제된 민속마을이 아니였습니다. 실제로 전통가옥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경운기, 트랙터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삶과 전통이 동시 호흡하는 곳 입니다.  박제된 여느 민속촌의 모습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맛이 숨어있는 곳 입니다.

저의 기억 맨 밑바닥의 것들을 끍어 모아보니, 흙담과 초가지붕의 모습이 여간 정겨운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겨운 모습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원인이 아닐거라는 생각에 그 정확한 해답을 찾아 움직였습니다.
고개를 넘어서는 순간 그 원인 찾았습니다.
고개를 넘기전에는 다소 시시한 느낌이랄까.....별거 아니네라는 생각 이었습니다.
고개를 넘어서도 500여년전의 가옥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양동마을 초입에 제 눈에 들어온 모습들은 전체 중 극히 일부분이었습니다.
전체를 관망하지 못한 채 섣부른 실망을 한 것 입니다.

답사에 앞서 양동마을의 전체 구성을 알고 있었다면,
이런 새로운 묘미를 즐길 수 있었을까 하는 역설적인 생각도 듭니다. 


경주 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 전망

위 사진은 경주 양동마을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것 인데,  홈페이지 사진은 2개의 파일로 이뤘습니다. 항공사진으로도 전체 마을을 담아내기에는 1개 파일로는 부족했나 봅니다.

위 사진의 촬영시기는 늦가을 혹은 초겨울 인 듯 합니다. 수풀의 무성함을 피해 촬영해야만 가옥 한 채 한 채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풀이 무성한 시기에 양동마을을 찾았다면 숨겨져 있는 가옥들을 담아내기 힘들었을 것 입니다.

시야 확보의 위치가 마을 초입라면,
시야 확보의 시간이 수풀이 우거진 시기라면 마을의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2가지의 조건을 만족했기 때문에 양동마을에 대한 첫 느낌이 실망일 수 밖에 없었던 것 입니다.

가옥들이 놓여진 자리는 말 그대로 자연 속에 놓여졌다고 밖에 표현할 길 없습니다.
자연을 헤치고 들어 선 것이 아니라 '자연에 사뿐히 놓여졌기에 함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가옥 하나 모나 곳이 없이 자연과 하나였습니다.

500여년전의 생활 모습을 온전히 간직한 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자연을 담아내고 자연이 인간을 품는 곳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엇박자의 한옥 지붕 선들이 결코 어색하지 않은 모습 입니다. 

경주 안강들판

양동마을 고개에서 바라본 안강들판(일명 : 양동들판)

옛날 양반들이 소작농의 일하는 모습을 내려다 봄직 했을 전망 좋은 자리 입니다.


양동마을 무첨당

양동마을 무첨당(보물411호)

양동마을의 향단, 관가정, 서백당과 같은 여러 대표적인 가옥들 중에서 무척 마음에 드는 가옥입니다. 바로  '무첨당'[각주:1]입니다. 향단 [각주:2] 처럼 여러채로 구성된 가옥같이 화려한 맛은 없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강한 남성미가 풍기는 가옥 입니다.

양동마을 향단

양동마을 향단(보물412호)




양동마을 관광코스

1. 하촌코스 : 양동마을 입구에서 시작하는 조선시대의 문화기행으로 손색없다.
안락정→이향정→강학당→심수정(20분 소요) 

2. 물봉골코스 : 양동마을의 규모를 한눈에 즐기고 마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드는 코스
무첨당→대성헌→물봉고개→물봉동산→영귀정→설천정사(1시간 소요) 

3. 수졸당코스 : 그림 같은 모습의 가옥들이 주는 옛것의 멋스러움
경산서당→육위정→내곡동산→수졸당→양졸정(30분 소요) 

4. 내곡코스 :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된 독특한 가옥구조를 볼 수 있는 코스
근암고택→상춘헌→사호당→서백당→낙선당→창은정사→내곡정(1시간 소요) 

5. 두곡코스 : 두곡 이조언 공과 그 후손들의 숨결이 서린 코스
두곡고택→영당→동호정(30분 소요) 

6. 향단코스 : 조선조 청백리들의 기상이 서린 향단코스
정충비각→향단→관가정→수운정(1시간 소요)
  1.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인 이번(李蕃)공이 살던 집으로, 물봉골 남향받이 언덕에 자리한 여강 이씨들의 대종가를 구성하고 있는 안채, 별당채, 사당채 중에서 별당건물이 무첨당이다. [본문으로]
  2.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화려한 지붕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건물로 회재(晦齎) 이언적(李彦迪) 선생이 1543년경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성종임금이 그의 모친의 병환을 돌 볼수 있도록 배려해서 지어 준 집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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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염원보다 앞서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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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주 일요일 정도 일 것 입니다.
추석 명절  스트레스로 약간 지쳐하는 아내와 함께 인근에 있는 산에 등산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등산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서 장시간이 소요되는 산은 애시당초부터 부담스러워 한답니다.  최근에 다녀온 산 중에서 그나마 산 축에 속할 만한 산을 꼽으라면 약 3~4년 전에 다녀온 마산 무학산 정도이니 등산에 대한 저의 거북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숨을 헐떡거리며 힘들게 내려와야만 하는 봉우리를 굳이 왜 올라가야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의지 박약을 그 이유로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산행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산행하자는 의견도 제가 먼저 했으니 말입니다. 가슴 속에 뭔가 꽉 막힌 것을 뚫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습니다. 녹음에 지친 마음과 눈을 새척하면서 걸으며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걸었습니다. 약간 경사 진 곳을 오를 때는 자연히 대화도 중단된 채 등산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등산에 집중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이 시간! 누군가는 원하는 것을 손에 움껴쥐기 위해 간절히 염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미 그것을 가져버렸는데, 이걸 모르고 두 손 맞잡고 마음 속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가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

이미 결정이 난 것도 모른 채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한들, 뭐가 바뀔까....
무모한 간절함은 집착이요, 정신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간절함이 집착인지 아니면.....가능성 높은 시도인지를 어떻게 하면 분간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마음 속에서 되뇌이다 보니, 벌써 김해 천문대에 도착을 했습니다.
정상에서 시가지 아래로 시야를 돌리는 순간, 떠오르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전체! 전체!'

사진출처

비탈진 등산로를 오르면서 품었던 의문에 대한 대답은
상황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합리적인 자세와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등산을 통해서 제가 찾은 해답은 간단하며 누구나 알고 있는 그것 이었습니다.
성공학 서적을 보면 '간절하게 간절하게 염원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맞는 말 입니다. 꿈에 대한 간절함이 깊으면 길을수록,  이뤄질 확률은 높아진다고 성공한 대부분의 증언합니다. 
하지만 간절함은 반드시 현실에 뿌리를 둬야만 합니다. 뿌리가 현실에 근거하지 못한 간절함은 공중에 떠 있는 구름과 다름이 없습니다.

등산을 통해서 얻은 해답과 독서를 통해서 찾은 해답에는 마음 속 울림의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등산을 통해서 얻은 해답은 마치 오랜 수행을 그친 스님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적인 깨달음을 통한 득도의 경지와 같습니다. 이런 해답은 체화된 것이기에 평생을 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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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만에 부산 남포동에서 술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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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부부 계 모임을 부산 남포동에서 했습니다.
우선 연극 1편을 보기로 했는데, 승용차를 가지고 간 바램에 약 십여분 늦게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김해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교통체증!
시간은 없고 차는 막히고, 주차할 곳은 한정되었기에 조마조마 했습니다.

좀 늦었지만 공연장에 입장하니 이미 연극은 시작하고 있더군요.

염쟁이 유씨염쟁이 유씨

포스트에는 작년 날짜가 나오는데, 아마 반응이 좋아 계속 연장공연하는 모양입니다. 위 포스트에 나온 연극배우는 절대로 '유해진'씨가 아닙니다. 많이 닮긴 했는데.......
1인극이었는데, 저와 아내는 얼들결에 보조 출연까지 하는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부산 남포동부산 남포동 거리에서

부산 최대의 번화가 답게 많은 차와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예전 보다는 많이 쇄락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심지어는 건물 1층,2층은 성업중이였지만, 나머지 상층들은 '임대'라는 큰 글자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더군요.
약 90분간의 연극을 관람 후, 3 쌍은 술 한잔 하기 전에 요기할 요량으로 40년 전통의 우동집으로 유명한 종각집에 가서 우동을 먹었습니다. 먹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대단한 사람들이야. 색다른 맛이 없는데도 40년간 장사할 수 있다니...' 입니다. 어쩌면 모든 음식점이 '맛'으로만 승부를 가릴 수 없는 듯 합니다. 

종각집남포동 40년 전통의 가락국수 종각집



부산 원조 한양족발부산 원조 한양족발

부산 원조 한양족발 가계 모습은 미처 사진을 남기지 못해서 이곳에서 복사했습니다.
많은 손님으로 북새통이었습니다. 밑반찬이 아주 간소했습니다. 족발 배달전문점에서 나오는 다양한 스기다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형편없습니다. 대단한 베짱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족발을 입안에 넣으보니,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저는 오향장육과 같이 이것 저것 집어 넣어 맛이 풍부한 것보다는 본(本) 재료의 맛을 온전히 간직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 입니다.

두둑한 배를 가라 앉힐 겸해서 용두산 공원에서 잠깐 바닷 바람을 접한 후 우리들은 하우스 맥주 전문점(녹채원 브로이)에 들어갔습니다. 하우스 맥주 뿐만 아니라, 라이브 음악을 즐기기 위해 찾아간 곳 입니다. 맥주 맛은 괜찮았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라이브 음악은 꽝! 이었습니다.
무대 자체도 구석 테이블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으면, 노래 소리도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녹채원 브로이녹채원브로이



잡친 기분을 추스리고 우리들은 자갈치 바닷가로 가서 바다 특유의 냄새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소주집에 들어셨습니다. 순간 당황!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메워진 주점! 우리들 나이를 실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 테이블을 제외한 나머지 테이블에서 강한 젊음의 기운이 넘쳐 흘렀습니다.

가끔은 젊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억지로 찾아 다녀볼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2010/9/28 UPDATED


어~....아직 '인도로 가는 길'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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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돈! 그러나 황소 걸음처럼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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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꾸만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지난 잃어버린 4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책임감,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선이 남들보다 몇 십미터 뒤에 놓여져 있다는 절박감 때문 입니다.

'십년 법수(法修)는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라는 좌우명처럼 항상 긴 안목으로 삶을 바라볼려 했습니다. 그러나 좌우명은 먼 곳의 이상이였을 뿐, 현실은 이와 달리 눈 앞의 이익을 쫓아 다녀 결국에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된 듯 합니다. 

사진 출처 : 선한사마리아인 네이버카페   원문보기

하자만 아직 '청춘'이란 큰 재산이 있으니, 황소의 걸음 같이 느리지만 쉼없이 가고자 합니다.

30대 청년과 70대 백만장자 할아버지이 나눈 이야기입니다.
30대 청년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라 말했습니다.

그러자 백만장자 할아버지가
"그럼 내가 가진 재산을 다 줄테니, 젊은이의 시간 20년을 내게 줄텐가?"
라고 물음을 던졌습니다.

왜 백만장자는 자신의 재산과 20년의 시간을 맞바꾸자는 제안을 하게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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