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중에서 박찬호선수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살짝 올린 적있다. 몇 주전부터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박찬호선수가 등장하면서 나는 그의 진면목을 다시 발견하고자 노력했었다.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나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박찬호 개인적인 자질도 물론 부족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지만 당시 나의 결론은 이랬다.
"미국의 시스템이 박찬호를 키웠다"
임선동, 조성민과 같이 당대에 기대주로 손 뽑혔던 박찬호
셋 중에서 남은 건은 박찬호 뿐이였다.
한국 프로야구리그에서 출발한 임선동은 어디로 갔나?
일본 프로야구리그에서 출발한 조성민은 무슨 짓거리를 하나?
당시 3명중에서 제일 약한 선수가 박찬호라고 한국에서 평가받던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오늘날의 찬호 박으로 상품성을 키워준 것은 바로 미국 이다라고 생각했었다.
요즈음 이런 생각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이러한 변화의 결정적 이유는 첫째, 1박2일에서 그가 보여준 사람과 호흡하며 지낼 수 있는 친화력이 박찬호는 강하다는 것이다. TV에서 보여진 그의 표정의 밝음은 가식으로 위장된 것이 아니다. 깊은 맛이 난다. 그는 옆에 있는 사람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둘째, 이틀전에 발견한 사실이다. 2004년 경에 박찬호 선수의 홈피에 아래와 같은 시구 있었다고 한다. 묵직하고 비장한 각오를 이 시로서 대신 표현한 것이다. 그는 지금의 고통이 주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만일
만일 내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내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내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내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로 만든다 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 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너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서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루디야드 키플링
그렇다!
박찬호선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박찬호, 그 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찬호 선수!
이제는 쉬어도 됩니다.
지금 이 순간 그라운드를 떠난다 해도 부끄러울 것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그라운드에 있고자 한다면
승패와 상관이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찬호 선수!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어제(12일) 밤까지도 고민했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36.필라델피아)는 13일 기자회견에서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좀처럼 "국가대표로 나서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한참 뜸을 들인 뒤에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더 이상 국가대표로 뛰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 박찬호는 "정말 많이 고민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여러분에게 조언을 구한 끝에 결국 WBC에 나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박찬호의 마음은 이미 WBC가 열리는 일본, 더 나아가 4강전이 열리는 다저스타디움으로 향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박찬호는 "신체검사를 한 뒤 루벤 아마로 주니어 필라델피아 단장과 면담을 했다. WBC에 대해 물으니 "가던 안 가던 우리는 너를 지원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구단의 허락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다. 또한 박찬호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는 대답이었다.
박찬호의 2009시즌 1차 목표는 선발 진입. 아마로 단장은 "내가 선발로 뛰길 원하냐"는 질문에 "선발이나 불펜 모두 기대하고 있다. 단 선발로 뛰기 위해선 팀 내 젊은 투수들과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스프링캠프의 부재(WBC 참가)는 경쟁에는 도움이 안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답했다. WBC 참가는 박찬호의 선발 경쟁에 악재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호는 WBC 참가에 대한 의지가 사그러들지 않았다고 했다. 전격적으로 입단 기자회견이 취소된 뒤 "WBC에 나가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현실의 벽은 박찬호의 발목을 잡았다. 박찬호는 "현실적으로 WBC서도 잘하고 시즌도 잘 치르는 것은 욕심이란 걸 알게 됐다.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국가대표로 초대 받으면 너무 좋고 들뜨곤 했다. 미국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한국 선수와 만남이 너무도 즐거웠다. 이번엔 좀 다른 감정을 가졌다. 상황이 안 좋을 땐 절제가 필요한데 나한테도 절제가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감독님께도 팬들에게도 너무 죄송스럽지만 출전을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