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6)
생각하는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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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인문학 / 이지성 지음생각하는 인문학 / 이지성 지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흥분과 설레임을 잊을 수 없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필(Feel)이 와닿는 부분을 펼쳐 한자한자 읽어 내려갔다. 

아마도 그 첫부분은 '격물치지'에 대한 이야기였을 거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내용이 너무 좋았다.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완전한 앎에 이르다'는 의미인 '격물치지'!!!!

격물치지의 자세로 인문학을 배운다면 분명 나에게도 혜안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심으로 읽었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나의 뇌에서 파열음이 흘러 나왔다.

뭔지 모르겠지만....... 

책쓴이가 '끼워맞추기'를 하고 있다는 의문에서 비롯된 의문 음(音)이 자꾸 일어났다. 

읽을수록 그 음의 발생주기는 짧아졌다.


동서양의 천재 혹은 성공한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인문학'에 심취했었다면서 인문학을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에만 치중한 내용이였다.


설령 실제로 '동서양 천재들이 인문학을 배웠다'하더라도 그들의 천재성이 오로지 인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할만한 근거가 부족하고 억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패한 자들은 인문학을 제대로 접하지 않았기에 실패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저자의 논리도 영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천재성 내지 성공에 있어서 인문학적 지식은 충분조건도 필수조건도 아닌 것 같다.

인문학이 성공의 충분요건도 아니며 필수조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공은 여러 학문, 자질, 능력, 테크닉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 흐름에 부합할 때 준비된 자에게 다가오는 것이므로 딱 잘라서 인문학 때문에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만사 급변하는 요즘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급류에 떠내려가는(그저 떠밀려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지울 수 없다.

남들은 떠밀려 살아갈 때 나는 스피디한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으며 살아가고 싶다.

중심잡기에 가장 도움이 되는 학문이 인문학일거라는 생각에 근래 인문학관련(종교서적 포함) 서적을 읽고 있다. 중심잡기를 통해서 '참다운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인문학이 다시 집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망구 내 생각이자 추측이다. 어쩌면 저자의 주장이 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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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치명적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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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처럼 읽혀지는 보기드문 불교서적


대개 우리는 불교는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불교 교리의 자체 특성도 그러하지만, 이를 알려주는 책 혹은 강좌의 딱딱함도 이런 인식에 한 몫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 '붓다의 치명적 농담'이라는 책은 딱딱한 불교공부(금강경)를 물 흐르듯 풀어가기에 흥미진지하게 읽어냈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붓다의 치명적 농담


'책은 도끼다'에서 '붓다의 치명적인 농담'이라는 책을 소개하여 단숨에 읽어 버렸다. 

불교는 이거다라고 압축해서 알려주는 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P212부분). 

이 책은 박웅현스타일로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재독 삼사독 하면 할수록 또 다른 깊은 깨달음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 주요 발췌문 ]

P24.

저는 불교의 이치를 다루되, 그것도 아주 낮게’, 어디까지나 일상의 구체적 경험을 토대로 설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너무 수준높은 논의에, 옛 한문의 거친 어법을 견디느라 고생이 많았을 대중들에게 작은 위로와 이해의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강의를 시작합니다.

 

P162.

세계에 개입하는 자아의 활동을 줄여야

나는 그동안 모든 것을 내 식으로 판단해왔다.  그 바탕에는 나의 존재를 보존 확장시키려는 무의식적 동기가 깊이 작용한 듯하다.  이제부터 나도 모르게 벤 나의 편견과 습관, 관심과 이해관계 등의 개입을 반성하고, 사태를 공적 지평에서, 전체의 관점에서 읽는 훈련을 해나가야겠다.” 이런 작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붓다의 제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명합니다.  세계에 개입하는 자아의 활동을 제어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바깥의 영향력을 줄이고, 내적 자유의 폭을 확대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전통적으로 팔정도로 알려져 있고, 또는 이를 계정혜의 삼학으로 정돈하기도 합니다.

 

P163

아비달마의 오래된 지혜

아비달마는 나의 것, 나에게 속한 것이라는 소유의 환상부터 깨기 시작합니다.~~~

닭이나 소는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국가를 지배하는 군주가 있다고 해서, 우주를 지배하는 특정한 인격이 꼭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소유는 세계 자체가 가진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밀어붙인 강제입니다.  이 강제로 하여 본래 평화롭던 세계의 평화와 질서가 위협받고 깨어졌습니다.  이 오래된 습성을 고쳐야만 본래의 고요. 즉 열반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문장들은 전부 다 소유의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술부는 주부를 수식하거나 한정하는 것으로 모두 소유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비달마는 로 시작되는 문장과 어법들을 오류투성이의 작문으로 단정하고, 그것들을 를 뺀, 순수 객관적 서술로 바꾸어나갑니다.  이 전략은 나의 개입이나 오염이 배제된, 순수 객관적 사태를, 즉 다르마dharma(諸法)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우리는 가령, “나는 오늘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를 떠나 보냈다는 문장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아비달마는 이것을 매우 부정확하고, 들뜬 문장이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고쳐줍니다.

 

1)      물체가 있다.

2)      사랑한다는 감정과 슬프고 아쉬운 감정이 있다.

3)      눈물을 흘리는 한 물체가 다른 손 흔드는 물체를 지각한다.

4)      떠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충동이 있다.

5)      이 사건을 의식하는 과정이 있다.


P168

세상의 점착으로부터, 아니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깨어나 해탈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 저기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하시는 분이 있군요. 그렇지만 그저 고개만 끄덕여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이 다르고, 지식과 지혜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불교는 그래서 체화되지 않은, 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지식을 '알음알이'라 하여 불충분하고 불완전하게 여깁니다. 이런 '마른 지혜 건乾慧'는 자칫 수행자의 자만을 부풀리게 하는 심각한 해독을 끼칠 수도 있으니, 깊이 유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P181

메난드로스 왕의 질문, 기원전 2세기 합리적 사고를 향한 불교의 설득

불교의 '지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격과 자아를, 오온의 객관法으로 해체하는 작업에서 시작합니다!.


P212

잠깐 정리하고 넘어 갈까요.

1)      불교의 첫걸음은 우리가 아는 사물의 세계가 주관적 욕망과 환상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부터 입니다. 주관적 욕망에 물든 환상의 세계를 상이라고 합니다.  그 칙칙한 점착을 벗어난 객관의 세계를 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상의 세계에 집단적 무의식적으로 최면되어 있어서 객관적 법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잘 자각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어렵습니다

2)      불교의 지혜智慧, 혹은 반야般若는 이 두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뜻 합니다.  그 통찰력이 고통과 갈등의 이편 - 此岸세상을 벗어나게 하고, 우리를 저편 - 피안彼岸의 행복과 평화로 인도해 줍니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세계의 실상 實相에 대한 이해를 더 깊고 철저히 해나가야 합니다.

3)      오온五蘊은 바로 그 객관적 세계의 구소요소諸法 입니다.  오온을 통해 자아이름에 물든 주관적 환상의 세계는 폭로되고, 모든 문장과 어법은 를 제거한 형태로, 남의 일처럼 순수 객관적 요소로 분석되던 것을 기억하실 것 입니다.  무아無我, 나를 떠남으로써, 나는 비로소 해방됩니다.  그러고 나서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연기법과 화엄의 세계, 즉 사물과 각 요소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緣起, 그리하여 총체적으로 하나인 세계華嚴의 장엄한 모습입니다.

 

P254

술병에 반이나 남은 술

가령 술병에 술이 반밖에 안 남았다술병에 술이 반이나 남았다는 서로 다른 진술입니까.  같은 진술입니까. 아비달마라면, 여기서 밖에이나따위의 강조구는 분명 주관적 개입이라고 생각할 것 입니다.  그에 비해 술병에 술이 반이 남아 있다는 진술은 객관적 법이라고 생각할 것 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수 등이 주도한 대승의 중관中觀술이 있다라는 진술 자체가 이미, 술에 대한 발성자의 관심을 포함하고 있고, 그 사태를 향한 모종의 태도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일깨우려 합니다.  관심이 없었다면 술이라는 대상은 지각되지 않았을 것이고, 더구나 거기 얼마쯤 담겨 있는지가 눈에 들어오지는 더더구나 않았을 것이며, 당연히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배를 정말로 끊은 사람은 스스로 나는 담배를 끊었다고 자랑하고 다니지 않는 법입니다.

불교가 말하는 유무 有無, 이른바 객관적 사태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이렇게 자아의 관심에 의해 의미화된 것으로서의 존재와 관련된 말임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다시 말하면, 불교가 유무 有無를 말할 때, 그것은 법이 아니라 상에 관련된 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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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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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읽고 싶은 책 중의 하나 '책은 도끼다'!!!!

읽는 내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만든 책이다.


그렇다 독자로서 박웅현, 그가 평소 읽었던 책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박웅현은 다독(多讀)보다는 정정독 (精精讀)하는 스타일의 소유자다.

다독이 옳은지 정독이 옳은지를 구분하는 것은 각자 판단의 몫이지만, 나는 정독이 바람직한 독서법이라 생각한다. 한번의 읽음으로 글쓴이의 목적을 알아챌 수 없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암튼 저자 박웅현의 이해력이 놀라웠다.

나라면 수십번을 읽어도 텍스트 이면에 감춰진 의미를 캐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책의 좋은 문장이라든지 핵심내용을 노트에 별도로 기록하거나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지만, 부작용이 있어 그만뒀다. 전체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고 재독 삼독할려치면 기존에 메모했거나 밑줄친 부분이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삭뚝 잘라버리는 부작용 때문이였다.


인간 박웅현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정정독의 참 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온 몸이 촉수인 사람이 되고자한 박웅현의 목표를 그대로 닮고 싶어진다. 이 부분이 이 책의 첫번째 방점이다.

또 다른 책의 입구를 소개해 준 책이라는 부분에 이 책의 두번째 방점을 찍는다.

여기에 글을 적으시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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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없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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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싶었던 책, 여태까지 도서관에서 이 책처럼 대출하기 힘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갈 때마다 대출 중이였으니.....

이세돌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대결로 미래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던 지난 2주간의 시간이 겹치면서 이 책을 더 애타게 기다렸다.


'지금까지 없던 세상'

책 제목 자체만으로도 존재했던 것이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등장할 것 같은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오랜 역사동안 물질, 사상 등의 탄생과 소멸과정을 경험해 왔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탄생과 소멸의 반복에 내성이 생겼을 법한데.......

왜 이리 미래가 어둡고 두려워질까......

어떻게 어둠을 밝혀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굉장히 솔직한 것 같다. 우리가 안정된(경제적으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미래사회를 예상하며 우리가 준비해야 할 부분의 맥을 잡아줄려고 시도한다.


미래사회는 과거처럼 고용을 장담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해 고용 장담이 아니라 '미래사회=고용사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학교 교육은 고용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키우는데 촛점이 맞춰진 커리큘럼으로만 짜여져 있다. 저자는 이 점을 가장 큰 문제라고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미래사회는 고용사회가 아니라 '1인 1기업' 사회로 변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래사회에서 가장 유망한 직업으로서는 창작자, 최고경영자, 창업가를 꼽는다. 이를 위해 미래학교는 금융, 재무회계, 창업프로세스를 교육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학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위 사항을 꼽씹어 보면서 방향을 제시해야겠다.

어슬프게 도서감상을 마치면서 책의 일부분을 옮기면서 마무리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신기술이다.

신기술을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상상이 먼저 있었고 이 결과 신기술이 등장했다.

이 순서가 거꾸로 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다.


1965년 만화가 이정문 화백이 발표한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1965년 만화가 이정문 화백이 발표한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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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 -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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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장석주 저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는 수 많은 작가와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지는 이 좋은 기분을 정말 간만에 느껴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라!  책!  책!" 외친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어느 책의 제목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그 책의 제목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이다.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책 읽지 않는 나에게 시원한 Uppercut을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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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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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접한 작가 김훈의 책 '칼의 노래'를 읽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일대기는 초등학교시절부터 모두들 접해온 터라, 이순신에 대한 삶을 조명한다던지 하는 것을 애초에 감안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작가 김훈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생방송을 보는 듯한 착각......

작가 김훈이 묘사하고 있는 전장의 상황은 마치 그가 현재 바로 그 자리에 전장의 한 중앙에 서서 읽는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처럼 사실감이 돋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실감 있는 전달력으로 독자를 책의 내용에 몰입시킬까라는 놀라움으로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작가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어볼 계획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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