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되 영리하며 현실적인 사나이 김구라
“신해철과 유시민은 감탄할 만한 구라”
21일 방영된 <명랑 히어로>(문화방송)에서 김구라(38·본명 김현동)는 자신의 팬클럽이 일간지에 낸 촛불집회 지지광고를 보여주며 “내 얼굴 그려진 티셔츠를 팬클럽 회원들에게 장사하려고 했던”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팬들에게 돈 만원에 팔려고 1천장을 만들었지만 300장도 안 팔렸다는. 장삿속을 숨기지 않는 스타와 콧방귀도 안 뀌는 팬의 만남. ‘김구라 월드’는 팬들의 사랑과 스타의 감동이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꽃동산이 아니다. “뭐야, 이건!” 내뱉는 불경함과 “그냥 한 거야.” 던지는 뻔뻔함으로 가득한 정글이다. 그런데 이 험한 세계를 수많은 사람이 기웃거린다. 김구라를 향해 양상국처럼 ‘사랑해요’를 날릴 사람은 없지만 어느새 다들 김구라처럼 시니컬하게 팔짱을 낀 자세로 낄낄 웃으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장맛비가 잠깐 갠 오후 일산에서 김구라를 만났다. 티브이에서 바스트 숏으로 주로 잡히는 얼굴의 살들이 억울할 성싶게 훤칠하고 균형 잡힌 체격을 지닌 남자가 걸어왔다.
‘라디오 스타’가 김구라의 스타일로 대중의 호응을 끌어냈다면 <명랑 히어로>는 김구라가 가진 스타일과 내용의 장점을 최대로 끌어낸 프로그램 같다.
예전부터 이런 프로가 하고 싶었다. <초저녁쇼> 같은 라디오에서는 시사평론가를 초대해 시사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곤 했지만 예능과 시사를 본격적으로 결합한 프로그램은 처음이니까. 또 시사적 이슈를 콩트화한 게 아니라 직접적인 토크로 하니까 인터넷 방송(딴지일보 <시사대담>)이나 케이블에서 쌓아온 것(MBN <언중유골>)들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내가 했던 비유들은 옛날에 민주당의 유종필 대변인이 자주 했던 재밌고 신랄했던 비유들에 비하면 축에도 끼지 못하는데 아무래도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안 나온 거니까 주목받는 것 같다.
현실성과 솔직함이 도 넘지 않을까 걱정
사회 비판도 하지만 ‘아이가 착한 것보다 공부 잘했으면 더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등, 어떻게 보면 속물적일 정도로 현실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속물 코드라는 말도 뜨고, 일종의 전략인가?
이게 될 거다 싶은 전략이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고생을 하지도 않았겠지. 예전부터 성격 자체가 현실적이었는데 그게 지금 시대와 맞아떨어진 거다. 이제 시청자들이 다 알고 ‘타짜’도 많은데 눈속임이나 포장을 하기가 힘들지 않나. 그런데 요즘 좀 걱정되는 건 나도 사람이다 보니까 주변에서 부추기면 현실성이나 솔직함도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리는 게 아닐까, 물론 내 딴에는 굉장히 정도를 지키는 건데 남들이 보면 한참을 나가 있는 거지.(웃음) 막 나가지는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솔직함과 노골성 또는 대담함 사이의 줄타기를 하는 건데, 스스로 균형은 어떻게 잡나?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의 이성적 판단이다. 인터넷 방송을 할 때는 그 환경이 원하는 의도적인 거칢이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생겨먹기를 다른 사람에 비해 거친 면도 있지만 나이가 마흔이고 가정도 꾸린 사람이라는 복합적 상황에서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명랑 히어로>에서 학생들의 성교육 이야기 할 때 분위기가 다운됐다고 생각해서 좀 오버를 했다. 중·고딩 임신 문제가 심각하니까 나는 동현이가 좀 커서 정관수술 한다고 하면 찬성하겠다 그러니까, 녹음테이프 교체할 때 피디부터 다들 ‘형, 뭐 그런 이야기까지 해?’ 그러는 거다. 그럴 때는 아, 사람들이 내가 남보다 좀더 나가길 원하지만 그보다 더 나가면 불편해하는구나 알게 되는 거고, 어쨌든 그래도 지금까지는 프로그램 전체적으로 잘 맞춰 가고 있다고 본다.
옛날 연예인 공격으로 수모 아닌 수모도
공중파 방송을 시작하면서 최근까지 인터넷 방송 시절의 연예인 공격에 대한 구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방송 중에 공개사과한 적도 있고, 이제는 짐을 좀 덜었나?
처음보다야 떨쳤지만 항상 부담이 된다. 보통 사람이 그렇게 상처 받는 말을 잊는다는 건 힘들지 않나. 이효리씨처럼 흔쾌히 괜찮아요, 털어준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찾아가 뵈었는데 아직도 안 풀고 있는 분들도 있고, 또 그분들한테 나름 수모 아닌 수모를 당한 적도 있고, 어쨌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스트레스가 된다. 내가 하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집사람이 언젠가 ‘당신이 옛날에 한 게 있는데 그 정도 스트레스는 받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말했는데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몸으로 말하면 평생 가져가야 할 지병이고 내 일부라고 생각한다. 내가 태생적으로 유재석이나 강호동 같은 초메이저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또 편치는 않지만 메이저와 나를 구별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다.
방송할 때 늘 ‘먹고살자고 하는 거’라는 입장이나 뉘앙스를 자주 드러내는데, 그래서 많은 프로그램을 쉬지 않고 하는 건가?
사실 내 성격은 비관적이다. 난 그걸 현실적이라고 하고. 강연 다닐 때 자주 말머리로 썼던 게 프랑스 배우 이브 몽탕이 한 이야기였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실력을 인정받았던 사람인데 자신은 칠십, 팔십 먹어서도 활동하는 게 항상 불안했다고 한다. 그 말이 와닿았던 게 누구나 불안한 상황 아닌가. 게다가 나는 닥쳐올 일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이고, 10년을 경제적으로 사실상 쉰데다 가장이다 보니 일을 할 수 있을 때 많이 하자는 생각이 있다. 생활 지론이 어차피 죽으면 쉬기 때문에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많을 때 일하자는 거다. 그래서 전에는 때로 나와 맞지 않아도 인지도나 돈 때문에 했는데, 이제는 나한테 맞고 해볼 만한 프로를 좀 골라서 할 정도는 된다.
10년 동안 돈을 벌지 못했다면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안 했나?
처음 개그맨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랑 좀 안 맞는 것 같아서 안 그래도 다른 일을 해보려고 했다. 스물일곱에 무리를 해서 가게도 차려보고, 결혼하고는 친구랑 이벤트 회사도 차리고. 그런데 다 실패했다. 나는 그저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하는 일을 누군가는 그것 하나에 매달려서 성공하려고 애를 쓰는데 성공할 리가 없는 거다. 그걸 깨달을 참에 주병진 선배의 제안으로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내 인생의 분수령이었던 셈이다. 적성에 맞고 하다 보면 밥벌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다음에는 방송 말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물론 그때도 힘들었다. 한달에 백만원도 못 가져갈 때가 허다했으니, 그래 봤자 아이엠에프 때 취직할 곳도 달리 없고, 그냥 가자고 달려온 게 여기까지 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 나의 목표는 ‘합리적 구라'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김구라, 실제로 까칠할까? 한 시간 남짓한 대화 결과를 보고하자면 그는 방송에서처럼 까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송과 180도 다르게 상냥하지도 않다. 수위 조절은 있지만 솔직함과 단도직입적이라는 ‘김구라 월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사회생활을 오래 한 샐러리맨 같은 능숙한 매너가 있다. 답변은 재빠르고 시간 낭비가 없다. 방송에서의 그 뻔뻔하면서도 물고 늘어지는 성격과 방송 밖의 빠른 머리회전을 보면서 신문사 정치부 기자 했으면 특종 여럿 했겠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학창 시절 오락부장 출신 개그맨들과 달리 반장 출신이다. 왜 개그맨이 됐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디제이를 하고 싶었는데 성시완씨 같은 콘테스트 1기 출신 디제이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연예인 출신이었다. 다방 디제이 세대는 또 아니었고. 그래서 디제이를 하려면 연예인이 돼야 하고 그중에 그래도 개그맨 쪽이 제일 가까웠으니까 들어오게 된 거다. 고등학교 때는 별로 안 친했지만 그래도 대화 코드가 맞았던 염경환에게 같이 시험 보자고 준비해서 93년 에스비에스 공채로 합격했다. 그러니까 지상렬한테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으로 연락이 왔는데, 그 친구는 학창 시절부터 연예인이 목표였으니까 팁을 좀 달라고 해서 같이 대본도 쓰고, 그 친구는 96년에 들어왔다.
오해나 선입견에 상처는 ‘전혀 안 받아’
시작은 먼저 했지만 주목은 늦게 시작한 지상렬이나 염경환이 먼저 받았을 때 괴롭지 않았나?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참 힘들었다. 또 결혼했는데 자리 못 잡아서 생활고에 시달리는데다, 아버지는 편찮으시지, 나는 2~3년 헛수고했고, 참 안 풀리던 시기였는데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마음을 잡았다.
최근 들어서야 결국 잘 왔다는 생각이 들겠다.
운도 좋았다. 이혁재보고 사람들이 옛날 같으면 저 얼굴로 언감생심 어떻게 엠시를 꿈꿨겠나, 자리잡은 게 미스터리다, 농담처럼 말했는데 내가 그렇다. 가만 앉아서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인터넷에서 무차별적으로 방송을 했던 내가 그때 공격했던 사람들과 같이 방송도 하고 그러는 게 지금까지 신기하게 느껴진다.
센 발언을 주로 하다 보니 직접 하는 것 이상으로 오해받거나 선입견도 있는데 본인은 상처 안 받나?
전혀. 내가 방송에서 하는 행태에 웃음이 깔려 있기는 하지만, 공격적이고, 인상도 그렇고, 말투도 그런데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것도 당연하다. 나랑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내가 살갑지 않고 일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불편해한다. 그게 나인데 어떡하겠나. 어쩔 수 없는 거다. 난 특히나 그동안 해놓은 게 있는데 어쩌겠나.(웃음)
개그맨이나 방송인으로 자신의 무기는 뭐라고 생각하나?
내 인생의 목표가 합리적인 사람이 되자인데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합리적이려고 해서가 아닐까. 지금 내가 하는 건 개그가 아니라 버라이어티쇼에서 나를 보여주는 건데, 물론 표현은 비합리적이고 극단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 바닥에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닌가 싶다. 방송 외적인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마찬가지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말이 안 통하는 거다. 난 이렇고, 넌 이래, 그럼 같이 이렇게 해보자가 돼야 하는데 자기 이야기만 계속 반복하는 사람은 질색이다.
자신을 볼 때나 주변을 볼 때나 냉정한 면이 있는 것 같다.
90년대 박수홍이나 서경석 같은 개그맨이 각광받다가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주목을 받지만 또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다. 나도 지금은 잘 벌고 있지만 인생을 통계적으로 봤을 때 언젠간 또 위기가 올 거고, 그런 생각을 늘 한다. 그래서 친구들한테 안부 전화 오면, 요새는 너무 바쁠 땐 바쁘다고 하지만 대체로는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거지, 그냥 있어, 이렇게 말한다.
자기 이야기만 반복하는 사람 질색
자신이 보는 자신의 색깔은 무엇인가?
얼마 전에 홍록기씨가 <진실과 구라>에 나왔다. 그 친구가 개그맨 동기라서 비교적 어릴 때부터 봐왔는데 최진실씨가 홍록기에게 김구라는 어렸을 때 어땠냐고 물어보니까, 쟤는 그때부터 뭔가 세상에 불만이 있는 듯한 얼굴로 늘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다녔다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내가 예전부터 살아온 방식이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구나, 싶었다. 그래서 시사적인 이슈나 다양하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걸 주는 게 앞으로 가지고 싶은 색깔이다.
김구라도 감탄하는 ‘구라’가 있나?
말을 웃기게 하는 사람보다는 논리가 있으면서 막힘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자극을 받는다. 신해철 선배나 유시민씨가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출처 :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