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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얼씨구 좋구나

조조 무덤 발견

삼국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조조

조조

유비 만큼 좋은 평을 받지 못했던 조조.

권모술수에 능한 악인에서 시대를 앞선 연 영웅이라는 재평가의 움직임 속에서 조조에 대한 연구결과가 다양한게 나오고 있습니다.


마침 중국에서 조조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조조의 무덤 [편집]

문물국이 허난성 안양 현 안펑 향 시가오쉐촌에 있는 동한시대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조조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중국 학계의 따르

면 무덤의 크기는 지하 15m에 위치한 이 무덤은 갑자(甲字)형태의 구조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진 내부 묘도(墓道)를 따라 내려가면 앞뒤에 규모가 큰 쌍실(雙室)과 4개의 측실(側室)을 갖추고 있었으며 길이 39.5m, 넓이 9.8m에 전체 면적이 740㎡로, 그 규모는 비교적 작았다고 한다. 그동안 수차례 도굴됐음에도 이 무덤에서는 금을 비롯한 각종 보석 200여 점이 출토됐으며 조조가 사용하던 창과 조조가 사용하던 돌베개등의 명문(銘文)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한 남성과 여성 2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는데 이 남성의 유골은 사망 당시 60세 전후였던 것으로 감정됐다. 이는 조조가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유골이 조조의 것으로 보고있다.[3]

위키피디아에서 조조를 검색하였는데, 
오늘 날자 2009-12-27로 주석이 하나 등재 되었습니다. 
조조무덤 발견에 관한 새로운 내용입니다. 
그러고 보니 포탈 인기검색 순위에 올랐는데, 그러자 마자 바로 위키피디아에 해당 내용이 바로 반영된 샘입니다.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위키피디아의 위력이 여실없이 전해 집니다.



중국 위(魏)ㆍ촉(蜀ㆍ오(吳) 세 나라가 쟁패를 벌이던 삼국시대 조조(曹操)의 무덤이 허난(河南)성에서 발굴됐다.

허난성 문물국이 허난성 안양(安陽)현 안펑(安豊)향 시가오쉐(西高穴)촌에 있는 동한(東漢)시대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위나라 무왕 조조의 고릉(高陵)을 확인했다고 인민일보 등 중국언론들이 27일 일제히 보도했다.

특히 '위 무왕이 사용하던 창'이라는 명문이 발견
위 무왕이 사용하던 창

위 무왕이 사용하던 창

돼 허난성 문물국과 중국 고고학계가 이를 근거로 조조의 고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함께 금, 은을 비롯한 각종 보석 200여점이 함께 출토됐다. 또 무덤속에서 남성 1명과 여성 2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는데 이 남성의 유골은 사망 당시 60세 전후였던 것으로 감정됐다. 이는 조조가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문헌상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중국 학계는 이 유골을 조조의 것으로 보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명문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출토 유물이 조조의 기호와 일치하고 무덤 규모는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라는 조조의 유언과 일치한다"며 "의심할 바 없는 조조의 고릉으로 삼국시대 연구에 일대 전기가 마련됐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원후 155년~220년을 살다간 조조는 후한시대(25년~220년) 천하통일을 놓고 촉의 유비, 오의 손권 등과 자웅을 겨뤘던 인물로 사후에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위나라를 건립하면서 무왕으로 추존됐다. 조조는 죽기전에 자기의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72개의 가짜무덤을 만들라는 유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져 그 동안 그의 진짜 무덤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지하 15m에 위치한 이번 무덤은 갑자(甲子)형태의 구조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진 내부 무덤길을 따라 내려가면 앞뒤에 쌍실(雙室)과 4개의 측실(側室)을 갖추고 있으며 길이 39.5m, 폭 9.8m로 왕의 무덤으로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이다.

출처 :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0912/h20091227212411225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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