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터진 IMF충격으로 당시의 한국경제는 절망감에 사로 잡혔다.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IMF사태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유언비어???) "우째 이런 일이...."
졸지에 백수로 전락한 직장인들, 내일 모레면 졸업하게되는 대학4학년생들, 그들을 옆에서 지켜만 보아야 했던 우리네 가정부, 엄마, 아버지, 형제, 친구들...
졸백(졸지에 백수된 사람)들은 정리해고 위로금, 퇴직금으로 치킨배달점을 시작하기도 하고, 대학생들은 줄줄이 휴학계를 내고서는 취업에 유리한 학원으로 몰려 들기도 하고 돈 있는 부모를 둔 대학생들은 해외어학연수길로 올라갔다. 나도 당시의 대학생처럼 졸업시기를 유예하고 학원으로 몰려들은 무리들 중의 하나였다. 언제쯤 IMF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으로 컴컴한 방안으로 들어 와서 TV를 켰다.
그나마 TV를 통해서 들려오는 희망의 메세지들이 몇몇 있었다.
메이저리그 1급 투수로 위상을 다져가던 박찬호, 미국 LPGA 한국 골퍼로는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박세리, MBC TV에서 매주 한번 방영한 '변창립의 성공시대'
지금의 박찬호가 미들맨으로 허지부지한 성적으로 내고 있고, 박세리 역시 화려한 전성기에 비하면 그 빛을 잃어 버렸지만 그들이 당시 우리에게 던져준 힘을 생각한다면 고맙고 고마운 존재이다.
변창림의 성공시대는 고난과 역경을 올곧이 이겨낸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큐멘타리 식으로 진행되었다. 고 정주영회장, 조수미, 안철수씨 등의 프로그램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변창립아나운서의 나레이션과 간간히 나오는 재현드라마를 통해서 IMF의 암울한 터널속을 걸어가든 당시의 우리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잃지 말아라라는 절박한 메세지를 던져 지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유년기에서부터 좌절의 순간, 성공하는 순간을 보여 주면서 그들이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원칙을 시청자에게 제공하였다.
2008년 오늘의 경제위기는 1997년 보다 더욱더 충격적이다. 1997년은 단지 한국의 경제위기 였는데 오늘은 전 세계가 공황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백수로 전락된 사람 소식은 접하지 못했지만, 첫 직장을 구하지 못한 대학 졸업한 미취업자수가 내년에도 더욱더 증가한다니 이 시점에서 10년 전의 '변창립의 성공시대' 와 같은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은 어떨련지....
당시의 고난을 겪어 본 필자로서는, 단순히 연예스타들의 신변 이야기를 주고받는 프로그램보다는 더 값진 보양식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이 어둠의 터널 끝이 어디인지를 모르겠지만 언제
가는 햇살이 비추리라. 성공에 대한 가능성과 궁긍의 힘을 믿어 보자.
ps) 김영삼 대통령 후임으로 김대중씨가 취임했는데, 그가 취임 후 초기에 국민에게 보여준 메시지에서 나는 대한민국 IMF의 고통을 극복할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졌다.
[변창립의 성공시대에서 말하는 성공비결]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한 사람은 흔치 않다.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그들이 쏟은 노력과 열정은 흘려버리기 쉽다.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는 지금까지 70명의 성공한 사람을 다뤘고 매회마다 그 비결을 소개했다.이들의 비결에는 공통점이 있다.
△ 공짜는 없다
우연히 이뤄진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모형건축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기흥성씨는 수많은 밤샘작업 끝에 심장병을 얻었다기씨는 10년째 달아온 심장박동기를 `훈장'이라고 되뇌었다.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 안철수 대표는 1천만 달러를 포기했다.외국의 유명업체가 백신프로그램 V3 기술인수에 1천만 달러를 제의했지만 결국 우리나라 시장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서 거절했다.선택의 상황에서 돈과 명예는 빼놓는다는 게 안씨의 지론이다.이명현 전교육부장관은 여자를 사귀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44세가 되어서야 결혼을 하는 고집을 부렸다.초등학교만 졸업한 학력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교수,교육부장관에 이른 이전장관의 삶의 철학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 미쳐야 한다
동시통역사 최정화씨는 프랑스 파리 통역대학원 시절 꿈도 한·불·영 3개국 언어로 꾸었다고 한다.최씨는 통역대학원에서 동양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실력 1백%에 4백%를 더 준비한다는 신념으로 노력했다.중앙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박사는 수술시 왼손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후배들에게 왼손식사를 강요하고 밤마다 방석 꿰매는 연습을 시킨다.수술 현장에서 실수를 하면 가해지는 폭력과 욕설,상식을 넘어서는 송박사의 행동에는 1백% 완벽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
△ 남보다 한 발 빨라야 한다
여자 경찰서장인 김강자 서장 앞에는 최초라는 말이 따라다닌다.김서장은 최초의 여성경감,최초의 여자형사기동대 창설,교총순찰대 등 여경의 업무영역을 개척해냈다는 평가를 들었다.6개 국어를 구사하는 IOC 김운용 위원은 국제화시대에 외국어가 무기라는 생각에 학창시절부터 영어와 스페인어,불어를 공부했다.
△ 너무 늦은 시작은 없다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애니메이터 신능균씨가 “2류 애니메이터는 되기 싫다”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나이는 35세.결국 미국 에미상을 4회나 수상하는 성공을 일궈냈다.코리아나 유상옥 사장은 55세의 나이로 창업을 결심하고 동사무소에서 서류 떼는 일부터 새로 배웠다.
△ 낙천적이다
울산 모래벌판 사진 한 장을 들고 4천5백만 달러의 차관을 얻어내 조선소를 만든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얘기는 업계에서는 신화로 통한다.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공무원 시절 보고서를 13번이나 퇴짜를 맞으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문공부 차관에서 퇴임하는 날 학원 수강신청을 한 낙천적 사고방식이 비영화인 출신으로 해외영화제의 심사위원장까지 위촉된 비결이다.
자료출처: 석세스피아
[ 변창립의 성공시대 ] 방송 내용 리스트 보기
189회 (마지막회) ( 프로골퍼 박세리 ) 2001-11-04 188회 ( 노르웨이 라면왕 이철호 ) 187회 ( 홀트아동복지재단 말리 홀트 ) 186회 ( 국립암센터병원장 이진수 ) 185회 ( 국수왕 떡박사 송학식품 성호정 사장 ) 184회 ( 패션 사진작가 조세현 ) 183회 ( 노력의 천재 소설가 이외수 ) 182회 (희망의 자장면 하림각 대표 남상해) 181회 ( 정상의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 ) 180회 ( (주)유니코서치 사장 헤드헌터 유순신 ) 179회 ( 재일동포 1호 변호사 김경득 ) 178회 ( 일본의 김치 대모 강은순 ) 177회 ( 대전시향 상임지휘자 함신익 ) 176회 ( 한국 문단의 거인 소설가 황석영 ) 175회 ( 행복한 리더 정립전자 이주영 원장 ) 174회 ( 만화가 고우영 ) 173회 ( 예술 향한 곧은 열정 이강숙 총장 ) 172회 ( 일있는곳에 길이있다 신무림제지 사장이원수) 171회 ( CF 감독 윤석태 ) 170회 ( 서울역 거지에서 상원의원까지, 워싱턴주 신호범 의원 ) 169회 ( 스포츠의학의 권위자 하권익 ) 168회 ( 여성 한의학 박사 1호 강명자 ) 167회 ( 씨알 함석헌 ) 166회 ( 보험업계의 신화 동양생명 상무 김영주 ) 165회 ( 아흔한 살 어린이 동화작가 윤석중 ) 164회 ( 불꽃의 승부사 프로농구 감독 김태환 ) 163회 (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 162회 ( 씨앗은 주권이다 농부바이오 회장 고희선 ) 161회 ( 교양 만화의 선구자 교수 만화가 이원복 ) 160회 ( 또 하나의 여행 스튜어디스 이택금 ) 159회 ( 사환에서 교수까지- 한국의 빌 게이츠 박대연 ) 158회 ( 생명을 지킨다 시민운동가 송보경 ) 157회 ( 보는 소리를 만든다! 음향효과 제작자 김벌래 ) 156회 ( 한국 전기 면도기의 자존심 조아스전자 대표 오태준 ) 155회 ( 정보통신 벤처여걸 삼경정보통신 대표 김혜정 ) 154회 ( 명창 조소녀의 두 가지 성공 비결 ) 153회 ( 한과도 벤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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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한 날씨에.. 피곤과..식사후 몰려오는 잠을..엎치락 뒷치락 혼자서 이겨내려 하고 있을때
"수학 선생님..누가 찾아오셨는데..."
상담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잠이 달아났다..
"예?..누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 한분이 교무실로 들어오신다.
한 손에는 쥬스선물셋트를 들고서..
"아이고..선생님... 저..은채(가명) 엄마 입니다.."
"아...예.."
은채.. 올 8월 초에 입학한 여학생..
한 며칠 열심히 하더니..
어느 순간 친구와 어울려 학원에 드문드문오는 아이
전화를 하면... "내일 갈께요.." 또..전화를 하면..
이제는..아예 받지도 않던 아이..
우연히..며칠전 학원 입구에서 봤었다..
"은채 너..자꾸 이렇게 학원에 안나오면..아예..학원에 못오게 짜른다!!"
엄포를 놓았었다..
"어휴..선생님..얼굴보기 민망합니더...(의자에 앉으시며) 제가..딸만 셋 데리고 이리..혼자 열심히 사는데... 고놈이..이렇게 속을 썩힙니다...큰딸은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 임용친다고 하고..학교에서도 거의 올 A받는데..밑에 쌍둥이 중에 4분 늦게 태어난 요 막내 은채가..이리 속을 썩힙니다..."
"아...예(솔직히..난..말 할 틈도 없었다..어머니의 하소연에..귀기울여 들이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첨에 학교가기 힘들다 했을때...
그래도..학교는 다녀야된다고 했심더... 지가..가방끈이 짧아서..
지도... 검정고시로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했다 아입니꺼... 그래서..지는 압니다..
배움이 얼마나 중한지를...뭐..높은 사람 되라고 학교 댕기라는게 아니고..뭘 해먹고 살든... 밖에서 사람 노릇하려면..기본은 배워야하고.. 못배운 한 을 제가 알기때문에..학교그만두는거..억수로 말렸습니다... 하지만..이러다..은채 죽이겠다 싶어서...자퇴시키고..제가... 몇날 며칠을 울었는지 모릅니더...휴...그리고..마지막으로 남은 한 길이..검정고시라서..
지도..하겠다 하고...해서..입학시켰드만...저리..방황을 합니다..
선생님..지는 꼭..은채를 졸업시킬껍니다...
딸 셋있는거... 저거가 한다하면... 가르칠수 있는데 까지는 제가 가르쳐 볼라하거든예...
아직..젊고 하니..뭘 해서는.. 자식 뒷바라지 못하겠습니꺼.......
은채가..저러니..지도 미치겠습니다..
그래도 자식이니...선생님 그러니..제발 학원에서는 짜르지 말아주십시오..여기서 나가면..은채..이제..갈 곳도 없습니더...
제가. 12월부터는 꼭.학원에 가라고 하겠습니다.당분간만 좀 봐 주이소...."
(아마..내가..은채더러..학원에 이렇게 안나오면 짜르겠다 엄포놓은걸 은채로 부터 듣고..어머니가..이리 걱정되어 달려오신듯했다..)
"어머니..걱정마세요... 학원에서 나가라고 등 떠밀지는 않습니다..너무 안나오고..공부안하니.. 겁주려..가끔 그런말을 하는데... 어머니께서 마음이 많이 쓰이셨나보네요..
너무..상심마세요..은채가 저리 방황하고 해도..어머니 마음 알고나면..누구보다 열심히 할것이고..나중에... 언니들 보다..더 멋진 모습으로 자랄지도 모르죠...걱정마시고... 2차 진도 나갈때는 꼭 보내주세요.."
기사 내용을 보고 정말 난처하더라. 다른 나라 정부 관계자가 우리나라 대통령을 칭찬해 주는 것이 한편 고맙기도 하지만, 과연 현 부시 정부 정부가 누가 누가 경제식견이 좋다 나쁘다 평가할 만한 상황인가 말이다. 현 부시 정부는 자기 나라 금융시장을 패닉상태로 진입하도록 방치한 장본인이 아닌가?
일백번 양보해서, 설령 진심 가득한 그들의 선의 평가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을 허술하게 경영한 건설사에 쏟아 붓는 행태하며, 금융권에 국가가 지불보증까지 하는 초유의 정책을 펼치는 2mb의 경제지휘 스타일을 보고도 이런 평가를 내릴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도 부시 정부가 2mb에게 후덕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2mb가 부서 운전수 역할을 잘한 덕분이고 또한 부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2mb가 국민들로부터 비난받는 동병상련의 측은함 때문이리라.
시각장애인 최초 사시 2차 합격한 최영씨 인내로 만든 5전6기 드라마 "이젠 밖에서 걷는 연습해야죠"
시험 준비하느라 바깥 보행연습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제 걸음마 떼는 연습부터 해야겠어요."
21일 발표된 50회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명단에 시각장애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최영(27)씨. 하루 12시간 이상 컴퓨터 음성파일로 법서를 들으며 공부에 매진한 끝에 '심안(心眼)의 기적'을 일궈낸 그는 법무부의 합격 통지를 받은 뒤 그 간의 역경을 털어버리듯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었다.
최씨가 애초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 출신으로 2남 중 장남인 최씨는 고교 시절까지도 시력이 좋지는 않았지만 안경을 끼고 생활에 지장을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시련이 찾아온 것은 고교 3학년 때. 시력이 갑자기 나빠져 안과를 찾은 그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잠시 깊은 실의에 빠졌던 그는 그러나 한 차례 실패한 끝에 2000년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고교 때부터 법조인을 꿈꿨던 그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그러나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2005년부터는 사실상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법서를 읽는 것은 물론 혼자 힘으로는 집 밖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였어요."
법조인의 꿈을 접으려던 무렵, 좌우 10도 밖에 안 되는 최씨의 좁은 시야에 한 줄기 빛이 비치었다. 한 복지재단에서 그를 돕겠다고 나선 것. 시험에 필요한 교재를 음성 변환이 가능한 텍스트 파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음성 교재를 듣는 방식으로는 공부시간이 남들보다 서너 배는 더 걸렸다. 이런 최씨에게 도움을 준 것은 친구들이었다. 2004년 법대에 입학한 시각장애인 친구는 음성 파일을 들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소개해 줬고, 또 다른 친구는 외출과 식사 시간에 항상 최씨를 도와줬다.
그 역시 난데없이 닥친 불운에 맞서 스스로 길을 열었다. 후천적 시력 상실 탓에 점자를 모르는 그에게 점자시험지만으로 응시가 가능한 사법시험 방식은 또 다른 벽이었다. 그는 2006년 1월 법무부에 후천적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험방식을 사법시험에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법무부는 그 해 바로 시각장애인들이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장착한 컴퓨터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이 때부터 최씨는 시험 공부에만 전력 투구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밤 12시 잠들기 전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는 항상 음성 파일을 들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그는 2007년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최씨는 변호사가 되어 시각장애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사회적 노력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길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듯했다. "잘 모르겠어요. 한국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지. 미국에는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많다고 하던데…."
한편 법무부가 발표한 2차 시험합격자는 모두 1,005명으로, 여성이 384명(38.2%)을 차지해 사법시험 사상 가장 많은 여성 합격자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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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8/10/22 02:48:42
변명할려고 노력하지 말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보다 더 혹독한 조건에서도 승리를 거둔자들은 무수하다.
아래의 항목들은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들이다(출처 미상). 각 항목에 대해서 실패한 놈들을 대표하여 대응해 보았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후반부 항목으로 넘어갈 수록 나의 대응하는 글이 짧아지고 있다.
실제로 대응글을 적어면서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 지저분한 이유를 끌어와서 핑계를 늘어놓는다. - 10개 항목들이 개별적인 요소가 아니라 서로간에 긴밀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 - 따라서 한 가지 항목만이라도 철두철미하게 실천한다면 나머지 9개 항목은 자연히 발생되는 힘이 된다. - 결국 성공한 사람들은 10개의 항목요소를 가지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항목에라도 집중한 결과이다.
1. 꿈을 가지고 있다
성공하는 남자는 어렸을때 가졌던 꿈을 늘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동심'의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일이 잘될 때나 못될 때나 그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지방에서 유아교육관련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 있는데, 이 사람의 꿈은 고향인 그곳에 문화시설을 많이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꾸준한 노력 탓에 그 지역은 점차 교육을 중심으로 한 문화타운이 되었답니다.
우리도 항상을 꿈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단지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그래서 항상 작심삼일의 연속으로 빠진다. 솔직히 자신들의 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도 못할 정도로 꿈을 꿈이라고 꿈만 꾸고 있다.
2. 얼굴에 자신감이 넘친다
성공하는 남자는 늘 자신감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화를 내지도 않고 어떤 상황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사소한 일에 곧장 고함을 지르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서 큰 소리로 핀잔을 듣는 사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 두번 성공할 때에는 우리들의 얼굴에도 자신감이 있었지. 하지만 조직과 사회가 원하는 수준은 나의 성공체험보다 훨씬 높은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감이 서서히 흐려졌다. 이후 당연히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나고 쉽게 화를 내고 자신감이라는 단어가 점점더 산 너머 어디엔가에 존재하는 것이 되고 말았지.
3.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갖고 있다
성공하는 남자는 가끔 어리광부리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지어 주위 사람들을 사로잡아 버리곤 합니다. 무서움을 모르는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 천진한 눈동자를 가진 남자를 주목해보세요. 그 사람이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 엿보여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근심걱정거리와 모든 일에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에게 순수한 어린아이 표정을 짓는다면 완죤히 미친 사람 취급받지. 개념없는 놈 소리 제법 듣게 되지. 일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경제적 우위에 있는 사람이 어린애 같은 표정을 한다면 멋진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4. 가정을 소중히 여긴다
성공하는 사람일수록 성실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나 가족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들떠있어 신뢰하기 힘듭니다.
한때 가정을 잊어버린 채 일만 했었지. 결국 돌아온 것은 멀어져 버린 가족들과 더 이상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고 조직과 사회 분위기...
5. 사전에 미리 준비한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 사전에 미리 준비하는 계획성을 가져야 합니다. 식당이라면 미리 가서 식사를 해보고, 그고스이 소믈리에나 지배인에게 '언제쯤 다시 올 것이니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남겨두는 철두철미함도 필요합니다. 그 정도 준비했다면 그 날의 미팅이 성공적이라는 건 안 봐도 알 수 있겠죠?
사전에 준비할 만한 시간이 없네. 정보가 부족 했네.
6. 돈을 어디다 써야할지 잘 판단한다
단순히 과시하기 위해 돈을 쓰지 않습니다. 돈의 용도를 확실하게 구분해 쓰는 사람과 자신에 대해서는 투자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성공의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과시할 돈이 없다. 근데 허구한 날 술 마신다. 가끔씩은 노래방에 가기도 한다. 피씨방에도 간다. 하루에 담배도 꾸준히 태운다. 또 판돈이 제법되는 포커게임도 한다.
7.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한두번 실패를 통해 자신의 단점을 알게되면 이것을 극복해 더욱 강한 사람으로 변신합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에 이른 사람들에게서는 반드시 '헝그리 정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고, 지금부터라고 결정했다면 조금도 미루지 않고 그 자리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빈둥놀다가 본격적으로 최선을 다할려고 하면 벌써 게임 끝이었다. 하지만 게임이 끝나건이 아니라 1라운드가 끝난 것도 모르고 살아간다.
8. 남자를 반하게 만든다
성공하는 남자들 중에는 같은 남자들이 반할 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사람을 위해서라면 몸을 불사를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희생까지도 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사람이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며, 그 상처를 쓰다듬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친구와 직장 부하들은 가끔은 우리에게 반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멋지게 계산했기 때문이다.
9. 거짓말 하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을 때나 말할 수 없을 때에는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말을 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하죠.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거짓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10. 아랫 사람에게도 배운다
능력 있는 상사라면 부하직원들의 잠재 능력을 이끌어내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하에
게서도 배우겠다는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실제로 이런 남자가 최후에 사람을 손에 넣고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1. '거짓 확인서'를 발행해 준 시골 이장과 통장이 공공의 적이라고 했다. 2. 비경농자들(불법 수령자)이 왜 큰 금액도 아닌 쌀 직불금을 불법으로 수령하는 이유를 인간의 탐욕이라고 했다.
솔직히 위와 같은 취지의 포스트를 어제 적으면서 아래와 같은 물음을 지울 수 없었다. 1.'이장과 통장'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확인서를 발행한 이유가 숨겨져 있을거야? 2. 비경농자(직불금 불법 수령자)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쌀 직불금이라는 작은 돈이 아니라 뒤에 감쳐진 규모가 큰 돈일거야?
2가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찾았다.
1. 방 빼!
'이장과 통장'이 거짓 확인서를 발행한 이유는? 이장과 통장에게는 같은 동네에 사는 소작농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땅 주인이 소작농에게 '거짓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시킨다는 것이다. 만일 소작농이 '거짓 확인서'를 받아오지 못하면 전세집 주인이 하듯이 '방 빼!'라고 협박을 지른다는 것이다. 일부 이장과 통장들도 소작농 신분인 경우도 있다하니 거짓 확인서를 발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2. 깃털은 가라 날개를 찾아라!
쌀 직불금은 깃털이며, 실제 날개는 양도소득세였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 및 소득세법'에 따르면 자경 농지를 팔 경우 9~36%의 세율이 적용된다. 8년 이상 농지를 직접 경작하면서 현지나 인접 지역에 거주하면 1억원까지 양도세를 깎아주기 때문이다.
반면 부재지주들의 농지, 다시 말해 비사업용 농지는 60%의 높은 양도소득세율이 적용된다. 여기에 주민세(양도세의 10%)까지 더해져 총 66%의 세율이 적용된다. 양도차익의 3분의 2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셈이다. 가령 1억원에 산 논이 10억원으로 오른 후 팔았을 경우, 부재지주들은 양도차익 9억원의 66%에 해당하는 5억94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하지만 예외 규정이 있다. 양도일 직전 5년 중 3년 또는 3년 중 2년 이상을 직접 농사를 지은 경우,보유기간 중 80% 이상을 직접 농사를 지은 경우는 ‘사업용’으로 인정해준다. 쉽게 말해 마을 이장이 농사를 짓고 있다는 ‘자경 확인서’만 떼어주면 양도세가 확 줄어드는 것이다. 가령 부재지주들이 ‘자경 확인서’를 받은 후 10억원으로 오른 땅을 팔면, 양도세는 최대 3억2400만원밖에 안 된다. ‘자경 확인서’ 한 장으로 2억7000만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부재지주들이 자경 확인서에 집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연히 영어공부법에 대해서 검색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어 공부법이 나와서 스크랩해 왔다.
나는 마흔 여덟살 때부터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1972년 유신이 선포되기까지 10년 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는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외국의 공관 사람들이나 외신 기자들을 만나는 일이 참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영어를 배워야하겠다고 다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또 실천에 옮겨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의지는 있었는데, 끈기 있는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1972년까지 그런 꼴이었습니다.
76년과 80년에, 두번에 걸쳐서 있었던 5년 간의 옥중 생활은 영어 실력을 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옥중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또 본격적인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영어책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영문법 책을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그 결과 상당한 문법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흑자들은 문법을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합니다. 물론 회화를 못 하는 문법이라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회화를 유창하게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문법에 맞는 영어를 구사한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나의 경우 회화는 그렇게 유창하지 못 하지만, 문법 공부를 제대로 한 결과 외국인들도 나의 영어를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문법에 약합니다. 뒤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들 앞에서 문법에 맞는 영어를 구사하면 그 사람의 `품위'까지 올라간다는 겁니다. 나는 우리 나라의 역대 정권으로부터 죽을 위협을 당하는 등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신세도 많이 졌습니다. 나를 두번이나 감옥에 가두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도 못 했을 것이고, 영어 공부도 잘 하지 못했 것입니다. 밖에 있었다면 너무 바빠서 학문이나 영어 공부를 제대로 못 했을 텐데, 그들이 나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할 때, 사람에게는 모두가 나쁜 일도 없고, 좋은 일도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절실해집니다.
1982년 12월부터 85년 2월까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미국의 ABC, NBC, 퍼블릭 라디오를 위시한 각 지방의 TV와 라디오에 자주 출연하였습니다. 그때는 어느 정도 영어로 말하고 듣는 일이 가능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방송에서 직접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방송 출연과 관련하여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1983년 10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은 인권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방한할 수 있느냐는 비판 여론이 상당히 고조되어 있었고, 상당수의 의원들도 레이건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반대하는 서명을 하여 이를 백악관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에게 레이건의 방한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ABC Nightline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교섭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매우 주저하였습니다. 나이트라인은 관심사가 방영될 경우, 수천만명의 미국인이 시청한다는 프로그램이었고, 그 프로의 진행자인 테드 카플은 미국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미국과 전 세계의 지도자들을 이 프로그램에 등장시켜 놓고 종횡무진으로 질문을 퍼붓고 허점을 찌르고 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든 이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면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 영어가 짧은 나로서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강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 민주화를 위해서 미국의 여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내 특유의 위기 관리 능력을 믿고 한번 모험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참 용감하게도 출연을 수락했습니다.
나는 그 순간 같은 방송에서 얼마 전에 필리핀의 마르코스가 행했던 장면을 떠 올렸습니다. 마르코스는 그해 여름 아키노 상원의원이 필리핀 공항에서 살해당한 일과 관련해 나이트라인에 불려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태도가 얼마나 당당하고 조리정연했던지 독재자라고 미워하던 사람들까지도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매우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화 도중 테드 카플이 그의 말을 중단시키려고 할 때 그가 취한 태도였습니다. 그는 단호한 태도로 "Wait ! Wait!" 하면서 자기 할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를 미워했지만, 역시 `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기회가 있으면 저렇게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손을 내밀며 "미스터 카플, Wait! Wait!"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카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은 시종 내게 유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토론이 종료되어 갈 무렵에 이르자 여당(민정당)대표가 거짓말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말을 던졌습니다. "지금까지 김대중 씨가 말한 인권 유린은 박정희 때의 일이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전두환 정권은 모든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인권 유린도 없다."
나는 그의 말을 반박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진행자인 테드 카플이 거기서 토론을 끝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시청자들은 그 여당 간부가 한 말만 믿고 텔레비전 앞을 떠날 것이고, 결국 이제까지 내가 해온 말들은 허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미스터 카플!"을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에 쫓기는 듯 나의 요청을 듣지 않고 프로를 마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미스터 카플!"
그러자 그는 간단히 하라고 주문하며 기회를 주었습니다. 물론 길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아주 간단히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인권 유린에 관해 내가 한 말들은 나의 개인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국제사면위의 82년도 보고서에 있는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정부의 미국 국무성 82년도 인권 보고서에도 그대로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당신네 정부가 보증합니다."
집에 돌아오자 미국 전역에서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모두들 축하를 하며, 영어로 하는 나의 토론 능력에 놀랐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습니다. 사실은 그날 밤에 미국 내에 있는 한국의 각 공관에서 교민들에게 나이트라인을 꼭 보라고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어도 잘 하지 못 하는 내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는 두 사람에게 묵사발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Wait! Wait!"하는 장면이 좋았다고 하면서 테드 카플을 그렇게 눌러 버리다니 놀랍다,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실을 말하면서 마르코스에게서 배웠다고 하자 그들은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나와 가장 절친했던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을 살해한 독재자에게 배웠다니 웃음을 터뜨릴 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그렇게 영어로 말을 잘 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는 영어를 잘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잘 한 것은 상대방이었습니다. 나의 발언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그것은 내가 영어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잘 한 상대방이었습니다. 나의 발언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그것은 내가 영어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진실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최고의 웅변입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한 가지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ABC 나이트라인 프로그램을 방영해 온 한국의 AFKN이 그날 프로그램만 방영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미 국방부의 성명이 "우방국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은 방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실패했다면 그 프로그램은 그대로 방영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 미국 하원의원들이 이에 항의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런 식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영어를 익혀 왔습니다. 나는 미국에 있는 2년여 동안 약 100회 정도의 강연을 미국 사람들 앞에서 했습니다. 영어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친근해졌습니다. 나의 인생이 그러한 것처럼 나의 영어도 이렇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의 영어는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80년대에 미국에 있을 때는 미리 작성한 연설문을 낭독하고, 답변은 통역과 내가 번갈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는 카터 대통령, 키신저 씨 등 많은 지도자들을 만났고, 미국인들 앞에서 연설을 약 10여 차례 했는데, 이제는 연설문을 낭독하는 대신 연설문의 요지를 영문으로 만들어서 배부해 준 뒤, 내가 직접 말하고 또 질문에 답변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어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특히 듣기에 약합니다. 나는 이것을 극복하려고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봄, 영국에 있을 때도 양복 윗주머니에 항상 얇은 라디오를 꽂아 두 고 틈나는 대로 들었습니다. TV도 매일 2시간씩 시청을 했습니다. 듣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노력을 계속하면 듣기의 문제도 극복할 날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영어공부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체계적으로 배우고,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만이 영어, 특히 회화를 극복하는 길입니다. 영어는 한국말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영어가 세계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 나가려면 모두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반드시 이 일을 해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많은 불편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크게 후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대학 공부도 못 했고, 또 50살이 다 되도록 전혀 영어를 할 줄 모르던 사람도 열심히 노력했더니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을 내자면, 일어, 중국어, 독어, 불어 등 제 2외국어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는 가장 큰 재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