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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전해 준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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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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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준비기간동안 크고 작은 문제 때문에 올림픽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해 보았다. 쓰촨성 지진, 티벳 독립, 개막식 직전 테러 발생,.......

좋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액땜 했다' 라고 한다. 내가 중국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인류 평화의 대전이라고 하는 '올림픽'기간 동안 무사히 무탈하게 마무리 되길 희망한다.



어제 밤에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TV를 통해서 잠깐 보았다. 짧은 시간 동안에 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단어가 딱 2개 였다. "디지털", "조직화된 멀티플레이어"


"디지털"


올림픽 개막 카운트다운을 할 때, 아날로그 시계가 아니라 전자 시계의 숫자판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보면서 "디지털" 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이미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되었지만, 회사 업무를 하다보면 구체적이고 수치화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이번 달에는 생산량이 저조합니다' & '원자재 가격이 엄청 올랐다'라는 등의 서술적인 표현 방법, 서류 작업 결과가 아직도 아날로그를 탈피하지 못하였음을 이번 개막식을 통해서 각성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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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화된 멀티플레이어"

2008명의 중국인이 참여하여 연출된 그들의 퍼포먼스를 통해서 2008명이 각자의 해야할 일이 충실히 수행할 때 창조되는 놀라운 결과를 간접 체험했다. 2008명의 중국 공연자 그들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어느 타이밍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훈련을 통해서 습득하고 그대로 표현한 것 뿐이다. 이들(종업원)의 행동(업무)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종업원의 행동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만들어 줄때 종업원의 일할 맛이 나고, 일할 맛이 난 종업원은 다양한 업무를 소화해 낼 수 있으며,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이러한 종업원을 양성하는 것은 조직의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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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의 힘과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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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전략실행의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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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Booz & Company의 컨설턴트인 Gary L. Neilson, Karla L. Martin, Elizabeth Powers 등이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08)에 발표한 '
The Secrets to Successful Strategy Execution'에서 기업들이 전략실행에 실패한 이유 및 성공을 위한 일종의 비법을 제시한 내용을 요약정리해 봅니다.

전략실행을 올바르게 하여 전략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얻는 기회가 되시길 기대합니다.

○ 기업들이 전략 실행에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구조적인 조직 재구축으로 직행하고 가장 강력한 효과가 있는 동인들인 의사결정 권한정보의 흐름을 무시하기 때문임.

  - go straight to structural reorganization

  - neglect the most powerful drivers of effectivenessdecision rights & information flow


○ 연구조사대상 : 50여개국 1천여개 이상의 일반기업 및 공기관을 대상으로 함. 온라인으로 수천명이 참여하였고, 그들 중 약20%는 경영진이었음.


5개 회사 가운데 3개 회사의 직원들은 자신들의 조직이 execution에 약하다고 답함 ; 중요한 전략적 그리고 경영관리상의 의사결정이 행동(action)으로 신속하게 전환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


Execution은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information과 그들 자신의 self-interest에 따라 행동하는 직원들에 의해 매일 이뤄지고 있는 수 많은 의사결정의 결과임


○ Stratery Execution에서 가장 중요한 것 4가지: 상대적 중요도(%)

    - Clarifying Decision Rights : 54%
    - Designing Information Flows : 50%
    - Aligning Motivators : 26%
    - Making Changes to Structure : 25%

 
회사가 전략 실행에 실패할 경우, 매니저들이 흔히 생각하는 첫 번째 일은 Restructure.  그러나 연구결과에 의하면, 훌륭한 실행의 근본은 의사결정 권한을 명확히 하고 정보가 마땅히 가야 할 방향으로 정보가 흐르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됨을 보여줌.  만일, 이러한 것들이 올바로 진행되면, Correct Structure와 Motivators는 종종 명확하게 됨


○ 즉, Structural Change는 개선된 실행/실천에 이르는 길(path)의 한 부분임. 대부분의 회사들처럼, 성과 제고를 위하여 Structural Measures로 곧바로 가는 것은 근본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인 얼마간의 효율을 가져올 뿐, 역기능의 증상(the symptoms of dysfunction)을 초래함이 일반적임


회사 성과가 실망적일 경우, 단기적 코스트 감축을 위한 조직개편(관리층의 제거, 관리범위의 확대 등) 보다는, 전략실행 개선에 집중하고, 그 과정에서 성과의 하락의 참된 원인을 발견하여야 함 ; 매니저들로 하여금 개인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하고, 이사결정이 자신들의 것임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성과와 보상 연계를 강화하여야 함


[Keywords]
☞Strategy, Strategy Execution

★자세한 내용은 경영실무리뷰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세요...

경영실무리뷰(www.mb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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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의 VBA 정복기3 - 프로시저의 종류(Sub, Function, Property)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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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시저는 실행하는 성격에 따라 Sub, Function, Property로 나눌 수 있다.

프로시저에는
매크로를 작성할 때 많이 보았던 Sub 프로시저와
사용자 정의 함수를 만들 때 사용하는 Function 프로시저가 있다.
그리고 개체의 속성을 정의할 수 있는 Property도 있다.





Sub 프로시저 : 특정한 동작을 실행한다.

VBA로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매크로를 작성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시저 형태이다. 다음과 같이 Sub로 시작하여 End Sub로 끝나는데, 프로시저를 이용하여 작업할 내용은 Sub와 End Sub사이에 명령문으로 표현한다.

<형식>
Sub 프로시저 이름()
       명령문
       명령문
End Sub





Function 프로시저 : 특정한 계산을 수행하고 그 결과값을 돌려준다.

프로시저 안에 작성된 명령문을 실행하고, 실행한 결과 값을 반환할 수 있는 프로시저이다. 기존 엑셀함수에는 없는 새로운 사용자 정의 함수를 만들 때도 Function 함수를 사용한다.
다음과 같이 Function으로 시작하여 End Function으로 끝나는데, 프로시저를 이용하여 작업할 내용은 Function과 End Function 사이에 명령문으로 표현한다. 이때 결과 값은 프로시저 이름을 이용하여 반환한다.

<형식>
Function 프로시저 이름()
             명령문
             명령문
             프로시저 이름 = 값
End Function







Property 프로시저

개체의 속성에 값을 할당할 때 사용하는 프로시저가 Property이다. 속성 값을 할당할 때는 Property Let()문을 사용하고, 속성 값을 읽어 들일 때는 Property Get()문을 사용한다. 그리고 개체 참조의 값을 반환하기 위해서는 Property Set문을 사용한다.

<형식>
Property Get[Let|Set] 프로시저 이름()
            명령문
            명령문
            [Get인 경우 프로시저 이름 = 값]
End Prope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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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의 VBA 정복기2 - VBA 구성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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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BA 프로그래밍의 구성 요소

■ 코드 : VBA 프로그램의 최소 단위
■ 프로시저 : 코드들의 묶음으로 특정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단위
■ 모듈 : 관련된 작업에 해당하는 여러 프로시저들의 묶음 단위
■ 프로젝트 : 여러 모듈이 저장될 수 있는 하나의 엑셀 통합 문서



코드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가장 최소 단위는 코드이다. 매크로 기록 기능을 이용하여 변환된 프로그램 내용을 확인했을 때, 각 문장을 구성하는 명령어 하나하나가 코드에 해당된다.


프로시저란?

코드들이 모여 한 문장을 완성하게 되고, 이러한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시저가 완성된다. 따라서 프로시저는 특정 작업을 수행하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 단위라 볼 수 있다. 매크로 기록 기능을 이용하여 기록된 매크로도 하나의 프로시저에 해당된다.


모듈이란?

하나의 엑셀 파일에는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프로시저가 존재할 수 있다. 각 작업 용도에 따라 별개의 프로시저를 작성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여러 프로시저가 묶여 하나의 모듈이 된다.


프로젝트란?

여러 개의 모듈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가 된다. VBA에서 하나의 엑셀 파일에 작성되어 저장되는 모든 코드 내용을 묶어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 엑셀 파일이 열려 있는 경우 VBE 창을 열면, 프로젝트 탐색기 창에 열려 있는 파일 하나하나가 프로젝트 단위로 표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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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의 VBA 정복기1 - VBA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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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BA란 무엇인가?

VBA란?

VBA는 Visual Basic Application의 약자로서 비주얼 베이식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하여 직접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하나의 응용 프로그램이다. VBA는 매크로와 마찬가지로 Microsoft Office제품(Word, Excel, PowerPoint, Access)에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다. 따라서 별도의 추가 작업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매크로와 VBA의 차이점

매크로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해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도사용하는 것에 큰 무리가 없다. 매크로 기록기가 자동으로 작업하는 내용을 코드로 변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크로를 이용하여 작업하다 보면, 조금 더 복잡하고 다양한 작업인 경우에 구현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 작업을 직접 코드로 입력하여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데, 이때 VBA를 이용한다. VBA는 매크로보다는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지식이 필요하지만 훨씬 편리할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작업을 처리할 수 있다.


VBE 창이란?

VBA 기능을 이용하여 프로그래밍할 때 사용하는 작업 창을 VBE(Visual Basic Editor)라고 부른다. 실제 Visual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하여 프로그래밍하는 작업 창과 동일한 화면 구성을 가진다. 이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명령도 Visual Basic 명령 구문을 그대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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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 탐색기 창 : 현재 작업할 코드가 저장될 위치가 선택하게 된다.

* 속성 창 : 선택한 개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성격을 정의할 대 사용한다.

* 코드 창 : 새로 작성하거나 이미 작성한 VBA코드 내용이 저장되는 장소이다.











참고서적 : 웃으며 찾는 엑셀매크로 & VBA활용사전 212 / 선양미,웰기획 지음 / 사이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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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BA 정복을 위한 출사표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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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정복하고 싶은 대상이었던 VBA!
그 세월동안 몇 권의 책을 구입하기도 했고, 인터넷 사이트 몇 군데를 왔다 갔다 번두리만 기웃거렸다.

이제서야 VAB에게 정식 도전장을 내밀면서 출사표를 던진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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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함이 빚은 아름다운 노래 '봄여름가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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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00대 명반 선정 앨범 : 봄여름가을겨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대담 :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 전태관) VS 김고금평
      글 : 김고금평(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 사진 : smooth

제목봄여름가을겨울 - 수학적 논리로 펼쳐놓은 따뜻한 연주의 미학

퓨전재즈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은 꽤 유명한 기타리스트였다.(물론 지금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드 기타리스트 출신이라는 점만 봐도 이 정의는 설득적이다. 국내 펑크(Funk) 기타계의 1인자로 평가받는 한상원은 미국 버클리 유학을 떠날 때, 고 김현식에게 그를 적극 추천했다. 그의 연주 능력을 인정했다는 반증이다. 출중한 기타 연주에 비해 비교적 약점으로 부각되는 보컬은 이제 '봄여름가을겨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마스코트다. 서먹하게 들리는 음색이 안정된 연주력에 얹혀 뻗는 모습은 묘하지만 인상적이다. 김종진은 "데뷔 앨범을 낸 지 올해로 20년을 맞았는데, 이제서야 노래가 좀 되려고 한다"며 웃었다.

1988년 첫 앨범으로 데뷔한 김종진(보컬, 기타), 전태관(드럼)의 '봄여름가을겨울'은 그해 한 라디오 방송 라이브 무대에서 진가를 확인시켜줬다. 당시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진행자 이문세는 이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여러분들, 깜짝 놀라실 겁니다. 진짜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데뷔앨범의 첫 곡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이 연주됐는데, 스튜디오 앨범과의 차이를 못 느낄 만큼 정확하고 웅장하고 세련되게 울려 퍼졌다. 연주하면 록이 전부인 줄 알았던 우리 대중음악계에 퓨전 재즈라는 낯선 장르를, 하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은 음악으로 듣는 이와 연주하는 이의 성장판에 호르몬을 주입시킨 '봄여름가을겨울'. 이제 '관록'이란 단어가 어울릴 것 같은 두 사람을 최근 서울 홍대앞 와인바에서 만났다.

'어떤이의 꿈',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열일곱 그리고 스물넷'은 2008년 8월 4일 24:00까지 무료듣기로 제공됩니다.

제목"연주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김고금평 : 데뷔 앨범이 100대 명반에 들었다. 소감은?

김종진 : 우리가 선정된 것은 엄청난 뮤지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음악 활동 중에서 미국에서 최초로 만든 음반이나 라이브 음반, 컴백의 도화선을 지핀 영향력 있는 음반들이 기록에 안 올라간 것은 아쉽다. 농담이다. 하하.

전태관 : 우리가 볼 때, 1집에 대한 가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낮다. 실제 연주라든지, 사운드 부분이라든지 그땐 굉장히 미숙했다고 생각한다. 1집은 사실 우리가 만족을 못하는 앨범이다. 그 이후에 낸 앨범들이 더 마음에 든다. 1집의 신선함과 풋풋함에 많은 점수를 준 것 같다.


김고금평 : 어떤 이유로든 앨범이 주는 신선함은 나름대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을 듯하다.

김종진 : 그땐 상업적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시절이었다. 음악으로 돈을 번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선함이 가득 배어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전태관 : 우린 연주자니까, 당시 상황과 다른 색깔의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누가 연예인이라고 말하면 어색하다. 특히 외국에 여행갔다올 때, 직업란에 연예인이라고 쓰기 어렵다. 연주자란 표현이 맞는 듯하다.

김고금평 : 1집에서 연주곡을, 그것도 3곡씩이나 담는 시도는 충격에 가까웠다. 어떤 배경이 있었나?

김종진 : 당시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틀어 사람들 마음속에 있던 '왜 한국에는 연주자들이 없을까'에 대한 의문들을 우리가 그냥 먼저 푼 것이 아닐까. 음악하는 사람들은 보통 실험적이고 누군가에게 뭘 제공하는 서비스 정신이 강하지 않나.

전태관 : 우리가 제작자였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앨범을 낼 때 여러 음반사에 컨택을 했는데 동아기획만 빼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최소한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동아기획만 그 조건을 들어줬다.

김종진 : 옛날에도 '자뻑'이 강했다. 한번은 모 음반사 부장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 "제작비 다 내 주시고, 우리 음악 죽이니까 계약금 1000만원을 달라"고. 1988년에 1000만원이면 지금의 1억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정말 가관이었다.

전태관 : 2집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을 내고 어느 시상식에서 다시 그 부장을 만났다. 그 분이 "허허" 웃으시면서 "그때 1000만원 줄걸 그랬네" 하시더라.

1집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대개 이렇다. '20년 세월이 지나도 버릴 곡이 하나도 없는 앨범' '봄여름가을겨울 중 최고의 앨범' '절대 감동을 주는 음반' 이 같은 평가의 배경에는 첫째 연주와 노래를 적절하게 섞는 실험적인 방식을 대중음악사에 최초로 도입했다는 점이고, 둘째 자칫 난해해질 수 있는 연주의 구성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쉽게 풀어썼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성으로 이끄는 노래들의 대중적 소구력이 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봄여름가을겨울이 지금까지 펼쳐 낸 연주곡들을 쭉 살펴보면 리프(riff-반복선율)감이 귀에 쏙 달라붙을 정도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 '페르시아 왕자' '못 다한 내 마음을...' 등의 연주곡들에서 각 곡의 차이를 확실히 느끼며 선율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쉬운 리프를 다양하고 색깔 있는 방식의 사운드로 주조했기 때문이다. 노래들은 연주곡과 달리, 더 단순하고 감각적이다. 연주 부문에선 뮤지션의 본분을, 노래 부문에선 가수의 본분을 철저히 지키는 양날의 균형 감각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최대 미학인 셈이다.

"이론과 경험 쌓을대로 쌓는 게 중요"

김고금평 : 데뷔 앨범은 구성이나 사운드 면에서 획기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김종진 : 사실 제작비가 제일 안 들어간 앨범이었다. 녹음부터 더빙, 보컬, 믹스 다운까지 해서 모두 21프로를 사용했다.(참고로 1프로는 3시간 30분을 의미, 1프로당 가격은 20∼40만원 정도) 그러니까 재즈 음반 한 장 만드는 1000만원 정도의 가격이 든 셈이다.

전태관 : 참고로 3집과 4집은 100프로를 썼다.

김종진 : 80년대 초중반엔 모두 그렇게 녹음했다.

김고금평 : 그래도 그런 시도가 색다른 건 분명해 보인다. 어떤 경험들을 토대로 그런 앨범을 창조했다고 보는가?

김종진 : 구체적으로 데뷔 앨범을 내기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나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로 잠깐 활동하면서 앨범 녹음 때 녹음기법이나 스튜디오 비지니스 룰 같은 것들을 많이 배웠다. 그 전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3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음반 활동하면서 프로활동을 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수철과 작은거인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 김광민, 한상원, 정원영, 한충완 등과 함께 밴드 '수퍼세션'을 결성해 실험적인 음악도 했었다. 전태관도 한국 세션의 정상들과 함께 활동을 해왔다.

전태관 : 이론적으로는 이판근 선생한테 사사하기도 했다.

김고금평 : 이판근 선생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전태관 : 1984년과 1985년 2년간 배웠다. 음악이론에 지식이 없었던 때, 완전 기초부터 마무리까지 배웠던 기억이 난다.

김종진 : 한국의 재즈 이론은 이판근 선생밖에 없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서점에서 책을 사서 화성학이나 대위법을 혼자서 공부하려고 했다. 일본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재즈 이론의 대가였는데, 그때 번역서가 없어서 악보를 일본어로 이해하려니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견디지 못해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다. 궁금했던 건 재즈 연주자가 솔로를 하는데, 왜 저렇게 하는지, 스케일은 또 어떻게 구사하는지를 너무 알고 싶었다.

전태관 : 난 타악기니까 일반 음악에 대한 이론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다고 북만 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배웠는데, 화성 숙제를 가져가면 이 선생님은 반대편에서 악보를 보고도 단 20초만에 볼펜으로 찍찍 그으면서 틀렸다고 짚었다. 배우면서 신기했던 게 숙제를 해 가지고 가면 내가 악보에 그려도 그게 어떤 소리가 나는지 몰랐다. 그래서 '빛과 소금'의 키보디스트 박성식에게 코치를 받기로 하고, 내가 그린 악보를 연주해달라고 했다. 연주를 가만 듣고 있으니까, 내가 그렇게 위대한 소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 음악에 대해 큰 자신감을 얻었다.

김고금평 : 원래 멤버는 4명이었는데 2명으로 줄었고, 그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김종진 : 맞다. 원래 장기호, 유재하를 포함해 4명으로 시작했다. 나중에 유재하가 탈퇴하고 박성식이 들어왔다. 최태완(키보드)은 환절기 역할로 들어왔다. 현식이 형이 3집 내놓고 1987년부터 거의 활동이 없었다. 그 해 장기 공연을 끝으로 현식이 형은 잠적했다. 그리고 나서 한달쯤 지났는데, 마약으로 구속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다른 멤버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업적인 게 뭔지 모를 정도로 어리바리한 사람들이어서 현식이형이 교도소에서 나오길 기다렸는데, 그 와중에 나는 잠깐 '위대한 탄생'에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12월 현식이형이 출감해서 컴백무대를 가졌다. 전태관은 그때도 계속 같이 활동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적 특징은 수학적인 논리의 틀에서 찾을 수 있다. 도입과 본론, 결론의 모양새가 수학 공식처럼 체계적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기본적으로는 감성의 결과물이지만, 이들은 감성에다 이론의 틀을 갖춰 음악의 표현력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론이 풍부하다는 건 후속 작업이 전작의 진부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많음을 역설하는 증거다. 지금까지 낸 7장의 정규 앨범들이 비슷한 장르의 색깔을 띠면서도 다른 깊이의 맛이 느껴지는 것도 모두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음악에는 감성이외에 논리적인 틀도 필요"

김고금평 : 특히 연주곡에서 수학적으로 풀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김종진 : 우리는 처음부터 계산된 음악을 구사했던 팀이다. 그러니까 정말 수학적인 거 맞다. 그렇게 된 것도 사실 1988년에는 컴퓨터 시퀀서가 없으니까 우리가 직접 연주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시퀀서로 돌리고 루프를 이용해 계산된 음악을 하지만... 가령 A→B→C로 계산해서 안 풀리면 다른 방식으로 푸는 식이다. 하지만 계산 보다 더 중요한 건 멜로디가 가슴 속에서 나오는 걸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론을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틀에 박힌 일상적인 음악밖에 안나온다.

김고금평 : 매 앨범에서 연주곡을 넣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1집에선 연주곡을 3개나, 그것도 머릿곡으로 연주곡을 올렸다.(일반 대중들은 연주곡에 관심이 없지 않은가)

김종진 :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수많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듣다보니, 연주자에 대한 감성과 욕구가 쌓여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선 사람들이 "대중음악에 연주곡을 넣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선 전부 연주곡을 내야할 뮤지션이 그런 노선을 걸었다는 것은 연주자로서 패배자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김고금평 : 하드록 그룹 '키스'의 광팬이라고 들었다.

김종진 : 굉장히 좋아하는 밴드다. 키스의 기타리스트 에이스 프렐리는 수학적으로 기타를 치는데, 솔로 플레이가 미리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그것도 아주 듣기 좋게 만들어져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었다. 내 창법도 키스의 보컬리스트 폴 스탠리에서 영향 받은 것이다.



김고금평 : 퓨전재즈를 도입했다는 신선한 평가와 함께, 일본 제이(J) 퓨전(특히 '카시오페아')과 비슷하다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종진 : 내 생각엔 음악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리 릿나워와 비슷하다. 굳이 우리 연주를 다른 연주자에 빗대자면 '거리의 악사'는 리 릿나워, '못 다한 내 마음을...'은 산타나와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데뷔 앨범을 낸 지 20주년을 맞는 봄여름가을겨울. 그간 그들은 많은 변화를 통해 성장통을 겪었다고 한다. 연주를 주력으로 하는 팀이다 보니, 이들은 주로 TV 보다 공연장에서 대중과 소통해왔다. 서울의 큰 공연장은 물론, 전국의 소극장까지 죄다 훑은 적도 있다.

"성장통으로 보낸 20년... 후기에 명반 나오는 그룹으로 기억됐으면"

김고금평 : 20주년을 맞는 소감이 어떤가?

김종진 : 20년이 되니까 이제 노래가 좀 되려고 한다.(웃음) 생각해 보니, 20살이면 성인식을 치르는데, 우리가 음악적으로 성인이 됐다는 느낌이 든다. 그 전엔 우왕좌왕하는 시기도 있었고, 뭐하는지도 잘 모르는 때도 있었는데, 이젠 깊이가 생기는 것 같다. 명연주자들의 수작들이 후기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오래 남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그런 팀이 됐으면 좋겠다.

김고금평 : 20년 소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김종진 : 매 순간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왔던 것 같다. 전국 소극장 투어 돌 때는 별로 호응이 없어 낭패감을 맛보기도 했다.

전태관 : 5집 [미스터리] 발매 투어로 1995년 만우절 때 부산공연한 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기획자가 공연에서 손을 놓고 빠지는 바람에 일이 엉망이 됐다. 그때 처음으로 공연에서 쓴 맛을 봤다. 아직도 그 때 일은 음반 제목처럼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김고금평 : 네이버 팬들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김종진 : 국내 최고의 포털에서 인터뷰를 하게 돼 영광이다. 나 분당산다.(웃음) 여러분이 언제 들어도 자존심을 느낄 수 있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1집 이외에 다른 앨범의 곡들도 많이 들어봐 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전태관 : 난 그 옆에 수지산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음악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현실이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김종진 : 그 진실에 믿음을 버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음악하는 사람은 오늘도 자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장소 : 홍대 롤링홀 옆 와인바
진행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www.gaseum.co.kr)

출처 : NAVER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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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석 하늘이 준 나의 선물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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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 더위를 먹었나보다. 지난4~5월 이후에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 오늘 다시 등장하면서...
역시 만만치 않은 뚝심을 보여줬다. 우직한 뚝심이라기에는 뒷의 배후가 있는듯 아주 당돌하고 시건방진 자세였다.

제 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한미 쇠고기 협상이 '미국이 준 선물'이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지껄이겠는가. 광우병 위험요소 가득한 쇠고기를 제 값에 팔아 넘기는 그들을 우리에게 선물 보타리를 내 놓은 은인으로 생각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아직도 대한민국이 40~50년대 인줄로 착각하나보다."

민동석 이 사람은 우리 나라를 먹을 것 없어 굶주린 40~50년대의 대한민국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련지...

만약 그 사람(MDS?)에게 젊은 청소년 아들 한명이 있는데. 이 아들이 입시 지옥을 견디기 어려워 학교 생활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까운 친구가 대마초를 알려 주었다면....

이 대마초를 과연 가까운 친구가 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려나!

[데일리서프 하승주 기자]1일 활동을 시작한 국회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는 광우병 사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한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차관보)의 소신 발언으로 첫날부터 파행을 겪었다.

이날 문제가 된 민동석 정책관의 "쇠고기는 미국이 준 선물"이라는 발언은 야당 의원들의 힐난으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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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4월의 대미 쇠고기 협상 결과를 '캠프데이비드 숙박료' '한국이 미국에 준 선물'이라고 지적하자 민 정책관은 "자꾸 이것을 캠프데이비드 숙박료라고 그러는데 이미 협상 장소가 캠프 데이비드로 결정돼 있는 상황에서 숙박료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협상에)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지원사격에 나선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이 "(협상)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니까 빨리 결론 내려라"는 식의 무슨 지시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뗀 민 정책관은 이어 "선물을 꼭 줬다고 그러면 우리가 미국에게 준 게 아니라 미국이 우리한테 줬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 발언을 들은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야4당의원들은 크게 반발하면서 여야간에 격론이 오고갔다.

이에 김기현 의원은 "내가 질문하고있잖아, 가만 있어"라며 민 정책관에게 계속해서 말하라고 주문했다. 고무된 민 정책관은 "국민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제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드린 것 뿐"이라며 "우리 대통령을 미국이 초청해놓고 협상이 결렬되면 더 마음이 안됐다고 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라 생각한다"고 미국선물론의 근거를 댔다.

그러자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너무나 황당하다"고 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미국이 우리한테 준 선물이라는 답변을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사과받아야 한다 이건 국민을 우롱하는 답변이지"라고 허탈해했다.

민주당 김우남 의원도 "선물을 받아온 사람한테 훈장을 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고통 준다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을 괴롭히는 일이라 이 자리를 뜨겠습니다"라고 비꼰 뒤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결국 이날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는 기관보고도 받지 못하고, 오후 4시 40분경 최병국 위원장(한나라당)의 선언으로 정회되었다.

야당 의원들은 정회 후 기자회견을 갖고 민 정책관의 발언을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치욕적인 망언'으로 규정하면서 "졸속 협상 당사자의 이 같은 망언은 특위 진행 여부를 좌우할 중대한 사태이며, 민 정책관의 발언이 이명박 정부의 입장인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오늘 민주당 변재일 의원의 모 보좌관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게시판 아고라에 글을 올려 "지난 4월 한우사육농가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미국에 헌납한 한미 쇠고기 협상의 실무책임자의 이런 망언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치욕적 망언"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친미사대적인 태도가, 졸속 협상을 만든 것이고, 그 종합판이 최근의 외교적 망신사태"라고 정부와 한나라당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퇴장과 함께 회의가 정회된 이후 복도에서 민동석 정책관이 지나가자, 야당 당원중 한사람이 "당신은 친미매국노"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관보고에서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 밝혀짐으로 인해 불리하다는 판단으로 회의를 거부한 것"이라며 야당의 회의장 복귀를 촉구했다.

민동석 정책관은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에도 "나와 농식품부 가족들은 피를 말리는 협상을 마친 뒤 갑자기 닥쳐온 정치적 광란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었다"며 "근거없는 괴담과 선전, 선동의 거대한 물결을 온 몸으로 거슬러 나갔으나 귀를 막은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며 촛불 민심을 괴담의 산물로 매도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승주 기자

한나라 광우병 공포증, 탤런트 법적 조치 요구로 비화

정운천 "수천명이 날 매국노라고..."

민동석 차관보 사퇴 "괴담, 선전·선동 거슬러 갔으나..."


저와 함께 희망을 향해 함께 달리죠.이걸 꾸~욱 누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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