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반 선정 앨범 : 봄여름가을겨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봄여름가을겨울 - 수학적 논리로 펼쳐놓은 따뜻한 연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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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재즈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은 꽤 유명한 기타리스트였다.(물론 지금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드 기타리스트 출신이라는 점만 봐도 이 정의는 설득적이다. 국내 펑크(Funk) 기타계의 1인자로 평가받는 한상원은 미국 버클리 유학을 떠날 때, 고 김현식에게 그를 적극 추천했다. 그의 연주 능력을 인정했다는 반증이다. 출중한 기타 연주에 비해 비교적 약점으로 부각되는 보컬은 이제 '봄여름가을겨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마스코트다. 서먹하게 들리는 음색이 안정된 연주력에 얹혀 뻗는 모습은 묘하지만 인상적이다. 김종진은 "데뷔 앨범을 낸 지 올해로 20년을 맞았는데, 이제서야 노래가 좀 되려고 한다"며 웃었다.
1988년 첫 앨범으로 데뷔한 김종진(보컬, 기타), 전태관(드럼)의 '봄여름가을겨울'은 그해 한 라디오 방송 라이브 무대에서 진가를 확인시켜줬다. 당시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진행자 이문세는 이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여러분들, 깜짝 놀라실 겁니다. 진짜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데뷔앨범의 첫 곡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이 연주됐는데, 스튜디오 앨범과의 차이를 못 느낄 만큼 정확하고 웅장하고 세련되게 울려 퍼졌다. 연주하면 록이 전부인 줄 알았던 우리 대중음악계에 퓨전 재즈라는 낯선 장르를, 하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은 음악으로 듣는 이와 연주하는 이의 성장판에 호르몬을 주입시킨 '봄여름가을겨울'. 이제 '관록'이란 단어가 어울릴 것 같은 두 사람을 최근 서울 홍대앞 와인바에서 만났다.
노래 | 아티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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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이의 꿈 | 봄여름가을겨울 | ||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 봄여름가을겨울 | ||
열일곱 그리고 스물넷 | 봄여름가을겨울 | ||
"연주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김고금평 : 데뷔 앨범이 100대 명반에 들었다. 소감은?
김종진 : 우리가 선정된 것은 엄청난 뮤지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음악 활동 중에서 미국에서 최초로 만든 음반이나 라이브 음반, 컴백의 도화선을 지핀 영향력 있는 음반들이 기록에 안 올라간 것은 아쉽다. 농담이다. 하하.
전태관 : 우리가 볼 때, 1집에 대한 가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낮다. 실제 연주라든지, 사운드 부분이라든지 그땐 굉장히 미숙했다고 생각한다. 1집은 사실 우리가 만족을 못하는 앨범이다. 그 이후에 낸 앨범들이 더 마음에 든다. 1집의 신선함과 풋풋함에 많은 점수를 준 것 같다.
김고금평 : 어떤 이유로든 앨범이 주는 신선함은 나름대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을 듯하다.
김종진 : 그땐 상업적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시절이었다. 음악으로 돈을 번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선함이 가득 배어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전태관 : 우린 연주자니까, 당시 상황과 다른 색깔의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누가 연예인이라고 말하면 어색하다. 특히 외국에 여행갔다올 때, 직업란에 연예인이라고 쓰기 어렵다. 연주자란 표현이 맞는 듯하다.
김고금평 : 1집에서 연주곡을, 그것도 3곡씩이나 담는 시도는 충격에 가까웠다. 어떤 배경이 있었나?
김종진 : 당시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틀어 사람들 마음속에 있던 '왜 한국에는 연주자들이 없을까'에 대한 의문들을 우리가 그냥 먼저 푼 것이 아닐까. 음악하는 사람들은 보통 실험적이고 누군가에게 뭘 제공하는 서비스 정신이 강하지 않나.
전태관 : 우리가 제작자였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앨범을 낼 때 여러 음반사에 컨택을 했는데 동아기획만 빼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최소한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동아기획만 그 조건을 들어줬다.
김종진 : 옛날에도 '자뻑'이 강했다. 한번은 모 음반사 부장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 "제작비 다 내 주시고, 우리 음악 죽이니까 계약금 1000만원을 달라"고. 1988년에 1000만원이면 지금의 1억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정말 가관이었다.
전태관 : 2집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을 내고 어느 시상식에서 다시 그 부장을 만났다. 그 분이 "허허" 웃으시면서 "그때 1000만원 줄걸 그랬네" 하시더라.
1집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대개 이렇다. '20년 세월이 지나도 버릴 곡이 하나도 없는 앨범' '봄여름가을겨울 중 최고의 앨범' '절대 감동을 주는 음반' 이 같은 평가의 배경에는 첫째 연주와 노래를 적절하게 섞는 실험적인 방식을 대중음악사에 최초로 도입했다는 점이고, 둘째 자칫 난해해질 수 있는 연주의 구성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쉽게 풀어썼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성으로 이끄는 노래들의 대중적 소구력이 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봄여름가을겨울이 지금까지 펼쳐 낸 연주곡들을 쭉 살펴보면 리프(riff-반복선율)감이 귀에 쏙 달라붙을 정도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 '페르시아 왕자' '못 다한 내 마음을...' 등의 연주곡들에서 각 곡의 차이를 확실히 느끼며 선율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쉬운 리프를 다양하고 색깔 있는 방식의 사운드로 주조했기 때문이다. 노래들은 연주곡과 달리, 더 단순하고 감각적이다. 연주 부문에선 뮤지션의 본분을, 노래 부문에선 가수의 본분을 철저히 지키는 양날의 균형 감각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최대 미학인 셈이다.
"이론과 경험 쌓을대로 쌓는 게 중요"
김고금평 : 데뷔 앨범은 구성이나 사운드 면에서 획기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김종진 : 사실 제작비가 제일 안 들어간 앨범이었다. 녹음부터 더빙, 보컬, 믹스 다운까지 해서 모두 21프로를 사용했다.(참고로 1프로는 3시간 30분을 의미, 1프로당 가격은 20∼40만원 정도) 그러니까 재즈 음반 한 장 만드는 1000만원 정도의 가격이 든 셈이다.
전태관 : 참고로 3집과 4집은 100프로를 썼다.
김종진 : 80년대 초중반엔 모두 그렇게 녹음했다.
김고금평 : 그래도 그런 시도가 색다른 건 분명해 보인다. 어떤 경험들을 토대로 그런 앨범을 창조했다고 보는가?
김종진 : 구체적으로 데뷔 앨범을 내기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나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로 잠깐 활동하면서 앨범 녹음 때 녹음기법이나 스튜디오 비지니스 룰 같은 것들을 많이 배웠다. 그 전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3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음반 활동하면서 프로활동을 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수철과 작은거인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 김광민, 한상원, 정원영, 한충완 등과 함께 밴드 '수퍼세션'을 결성해 실험적인 음악도 했었다. 전태관도 한국 세션의 정상들과 함께 활동을 해왔다.
전태관 : 이론적으로는 이판근 선생한테 사사하기도 했다.
김고금평 : 이판근 선생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전태관 : 1984년과 1985년 2년간 배웠다. 음악이론에 지식이 없었던 때, 완전 기초부터 마무리까지 배웠던 기억이 난다.
김종진 : 한국의 재즈 이론은 이판근 선생밖에 없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서점에서 책을 사서 화성학이나 대위법을 혼자서 공부하려고 했다. 일본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재즈 이론의 대가였는데, 그때 번역서가 없어서 악보를 일본어로 이해하려니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견디지 못해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다. 궁금했던 건 재즈 연주자가 솔로를 하는데, 왜 저렇게 하는지, 스케일은 또 어떻게 구사하는지를 너무 알고 싶었다.
전태관 : 난 타악기니까 일반 음악에 대한 이론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다고 북만 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배웠는데, 화성 숙제를 가져가면 이 선생님은 반대편에서 악보를 보고도 단 20초만에 볼펜으로 찍찍 그으면서 틀렸다고 짚었다. 배우면서 신기했던 게 숙제를 해 가지고 가면 내가 악보에 그려도 그게 어떤 소리가 나는지 몰랐다. 그래서 '빛과 소금'의 키보디스트 박성식에게 코치를 받기로 하고, 내가 그린 악보를 연주해달라고 했다. 연주를 가만 듣고 있으니까, 내가 그렇게 위대한 소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 음악에 대해 큰 자신감을 얻었다.
김고금평 : 원래 멤버는 4명이었는데 2명으로 줄었고, 그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김종진 : 맞다. 원래 장기호, 유재하를 포함해 4명으로 시작했다. 나중에 유재하가 탈퇴하고 박성식이 들어왔다. 최태완(키보드)은 환절기 역할로 들어왔다. 현식이 형이 3집 내놓고 1987년부터 거의 활동이 없었다. 그 해 장기 공연을 끝으로 현식이 형은 잠적했다. 그리고 나서 한달쯤 지났는데, 마약으로 구속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다른 멤버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업적인 게 뭔지 모를 정도로 어리바리한 사람들이어서 현식이형이 교도소에서 나오길 기다렸는데, 그 와중에 나는 잠깐 '위대한 탄생'에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12월 현식이형이 출감해서 컴백무대를 가졌다. 전태관은 그때도 계속 같이 활동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적 특징은 수학적인 논리의 틀에서 찾을 수 있다. 도입과 본론, 결론의 모양새가 수학 공식처럼 체계적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기본적으로는 감성의 결과물이지만, 이들은 감성에다 이론의 틀을 갖춰 음악의 표현력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론이 풍부하다는 건 후속 작업이 전작의 진부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많음을 역설하는 증거다. 지금까지 낸 7장의 정규 앨범들이 비슷한 장르의 색깔을 띠면서도 다른 깊이의 맛이 느껴지는 것도 모두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음악에는 감성이외에 논리적인 틀도 필요"
김고금평 : 특히 연주곡에서 수학적으로 풀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김종진 : 우리는 처음부터 계산된 음악을 구사했던 팀이다. 그러니까 정말 수학적인 거 맞다. 그렇게 된 것도 사실 1988년에는 컴퓨터 시퀀서가 없으니까 우리가 직접 연주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시퀀서로 돌리고 루프를 이용해 계산된 음악을 하지만... 가령 A→B→C로 계산해서 안 풀리면 다른 방식으로 푸는 식이다. 하지만 계산 보다 더 중요한 건 멜로디가 가슴 속에서 나오는 걸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론을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틀에 박힌 일상적인 음악밖에 안나온다.
김고금평 : 매 앨범에서 연주곡을 넣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1집에선 연주곡을 3개나, 그것도 머릿곡으로 연주곡을 올렸다.(일반 대중들은 연주곡에 관심이 없지 않은가)
김종진 :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수많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듣다보니, 연주자에 대한 감성과 욕구가 쌓여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선 사람들이 "대중음악에 연주곡을 넣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선 전부 연주곡을 내야할 뮤지션이 그런 노선을 걸었다는 것은 연주자로서 패배자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김고금평 : 하드록 그룹 '키스'의 광팬이라고 들었다.
김종진 : 굉장히 좋아하는 밴드다. 키스의 기타리스트 에이스 프렐리는 수학적으로 기타를 치는데, 솔로 플레이가 미리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그것도 아주 듣기 좋게 만들어져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었다. 내 창법도 키스의 보컬리스트 폴 스탠리에서 영향 받은 것이다.
김고금평 : 퓨전재즈를 도입했다는 신선한 평가와 함께, 일본 제이(J) 퓨전(특히 '카시오페아')과 비슷하다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종진 : 내 생각엔 음악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리 릿나워와 비슷하다. 굳이 우리 연주를 다른 연주자에 빗대자면 '거리의 악사'는 리 릿나워, '못 다한 내 마음을...'은 산타나와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데뷔 앨범을 낸 지 20주년을 맞는 봄여름가을겨울. 그간 그들은 많은 변화를 통해 성장통을 겪었다고 한다. 연주를 주력으로 하는 팀이다 보니, 이들은 주로 TV 보다 공연장에서 대중과 소통해왔다. 서울의 큰 공연장은 물론, 전국의 소극장까지 죄다 훑은 적도 있다.
"성장통으로 보낸 20년... 후기에 명반 나오는 그룹으로 기억됐으면"
김고금평 : 20주년을 맞는 소감이 어떤가?
김종진 : 20년이 되니까 이제 노래가 좀 되려고 한다.(웃음) 생각해 보니, 20살이면 성인식을 치르는데, 우리가 음악적으로 성인이 됐다는 느낌이 든다. 그 전엔 우왕좌왕하는 시기도 있었고, 뭐하는지도 잘 모르는 때도 있었는데, 이젠 깊이가 생기는 것 같다. 명연주자들의 수작들이 후기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오래 남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그런 팀이 됐으면 좋겠다.
김고금평 : 20년 소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김종진 : 매 순간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왔던 것 같다. 전국 소극장 투어 돌 때는 별로 호응이 없어 낭패감을 맛보기도 했다.
전태관 : 5집 [미스터리] 발매 투어로 1995년 만우절 때 부산공연한 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기획자가 공연에서 손을 놓고 빠지는 바람에 일이 엉망이 됐다. 그때 처음으로 공연에서 쓴 맛을 봤다. 아직도 그 때 일은 음반 제목처럼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김고금평 : 네이버 팬들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김종진 : 국내 최고의 포털에서 인터뷰를 하게 돼 영광이다. 나 분당산다.(웃음) 여러분이 언제 들어도 자존심을 느낄 수 있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1집 이외에 다른 앨범의 곡들도 많이 들어봐 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전태관 : 난 그 옆에 수지산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음악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현실이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김종진 : 그 진실에 믿음을 버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음악하는 사람은 오늘도 자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장소 : 홍대 롤링홀 옆 와인바
진행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www.gaseum.co.kr)
출처 : NAVER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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