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5)
봄여름가을겨울 - 페르시아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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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연주곡 '페르시아 왕자'에 대한 좋은 소개를 발견하여 옮겨본다. '페르시아 왕자'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앨범에 대한 내용을 같이 다룬 글이다.

 


봄여름가을겨울 - 페르시아 왕자

다들 잘 아시는 한국 퓨전재즈 1세대라 평가받는 춘하추동 입니다. 

음악적 시기는 3집부터 노선을 바꿨는데, 1.2집이 퓨전재즈 3집부터 락재즈 성향을 보이다가 5집부터는 락밴드라고 바꿔불러도 될만한 사운드를 보여줍니다. 6집의 처절한 실패후 브라보 마이라이프 란 노래가 2000년 초반의 가장 큰 히트곡이고 이후론 매년 와인콘서트 라는 형식으로 라이브 앨범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젠 전성기가 끝났다고 봅니다만 가왕 조용필님 처럼 고목이 꽃이 다시 필런지는 두고 보면 알것 같습니다.

음악사적 특징이라면 한국 최초의 시디와 데이터가 겹쳐진 시디발매  / 한국 최초로 3집부터는 해외 녹음실에서 전곡 녹음 으로 레코딩 사운드 발전을 이루어 내며 이후 많은 아티스트들이 해외에서 녹음하며 가요음반의 질이 높아졌습니다. / 라이브 앨범 히트로 가수마다 라이브 앨범 발매 열풍 주도. 춘하추동의 2집 발표후 발매했던 라이브 앨범 믹싱은 일본에서 했습니다. 그 당시 엘피가 주가 되던 시대에 엘피에서 시디같은 저음의 배음을 너무 인위적으로 믹싱해서 당시엔 좋다였지만 지금 들으면 저음이 너무 과했구나란 생각을 합니다.  / 시디 패키지의 다양화 6집엔 알루미늄 케이스를 발매 했습니다.  /  적극적인 피씨통신 팬들과 미팅.  나우누리에 생긴 팬클럽에 자주 방문해서 앨범이야기 소식 전해주고 앨범 부클렛에 나우누리 팬클럽에 고맙다라고 표기까기 해줬습니다.  / 시디롬이라는게 나왔을때 국내 최초로 게임과 음악이 합쳐진 추리게임 시디를 발매 했습니다.   /  최근엔 Dolby ATMOS 사운드로 녹음한 블루레이 음반 발매 했습니다.  

최신의 기술 도입을 적극적으로 유입하면서 음악적 특징보다는 기술적인면에서 돋보이는 것 처럼 이야기 했지만 대중에게 인정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평론가들이 찬사를 해도 음반이 히트해야 먹고살고 그 다음 음반 제작이 가능 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수 있는 춘하추동은 행복한 음악가입니다.

춘하추동 전성기는 123 집 특히 3집 이 너무 큰 정점을 찍어서 이후론 하락세 였습니다.
소개하는 4집은 3집때 보다 더 좋은 사운드를 들고 왔는데 문제는 앨범이 전체적으론 들을만한 히트곡이라고 내밀만한 요소는 부족했습니다.

 앨범을 인쇄할때 별정칼라라 해서 금색은색을 쓰면 인쇄비가 마구 올라갑니다. 금색으로 도배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앨범입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표식도 영문 ssaw 으로 표기하며 알아보기 힘들게 했습니다.

시디 수록곡과 엘피수록곡이 차이가 있어서 팬들에게 원망을 들은 앨범이기도 합니다.

패르시아 왕자 도입부는 중동지역 민속음악 같은 음계를 기타로 시작합니다만 반전은 중동왕자가 캘리포니아 라틴클럽에 간것 같은 브라스와 라틴리듬의 도입입니다. 거기에 김종진씨가 연주하는 기타솔로는 블루스에 기반한 연주를 보여줍니다.

 춘하추동의 좋은곡인데 숨겨진 연주곡들이 많이 있습니다.
4집부터 기타사운드가 확 바뀌는데 녹음하러 간 뉴욕에서 중고로 사온 기타리스트 하이럼 불럭의 62년산 오리지날 펜더기타로 춘하추동이 녹음을 해서 입니다.
당시에 600만원에 샀다고 하는데 지금은 5000만원 한다고 합니다.

하이럼이 마약값 할라고 판 기타인데 이분이 내한했을때 기타의 양아버지와 친아버지 이런식 대담이 성사되고 칼럼도 나왔습니다.

관심있으시면 김종진 팬더 기타로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직막으로 리마스터와 베스트앨범 내면서 19장의 앨범을 제작비 아래로 3만 5천원에 배포하신 통큰분들 이십니다.

[출처] 봄여름가을겨울 - 페르시아 왕자 |작성자 Music is My Life
https://blog.naver.com/music_sommelier/220652679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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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 이 노래 이 명반]'봄여름가을겨울' 1집과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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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지 좋아했던 뮤지션, '좋아하는'이 아니라 '좋아했던'!, 봄여름가을겨울.

예전에 한창 좋아할 때는 이들의 연주곡에 매료되어 듣고 또 듣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에는 내 취향이 변한 건지 이들이 예전만 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들에 대한 나의 관심이 식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간혹 뮤지션 봄여름가을겨울의 연주곡(특히 '못다한 내 마음을',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페르시아의 왕자' 위주로)을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우리나라 대중가수가 이런 아름다운 연주곡을 만들었지'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한다.


우연히 발견한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에 대한, 특히 나의 10대 후반부터 20대 시기에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이야기가 나온 신문기사 있어 옮겨본다.

그리고 신문기사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채,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각주'기능을 이용하여 적어본다.



[8090 이 노래 이 명반] 10. '봄여름가을겨울' 1집과 2집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의 감동 준 K-퓨전 '신호탄'


입력 : 2015-09-02 [19:03:14]

수정 : 2015-09-03 [10:41:11]

게재 : 2015-09-03 (33면)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일구어낸 1980년대 가요는 우리 가요의 동력이자, 큰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1988년, 온 나라가 온통 올림픽 개최에 대한 기대감으로 흥분해 있던 그 해 초 여름 봄여름가을겨울이 출현했다. 이들은 조용필이, 들국화가 그랬던 것처럼 충격과 감동을 선사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1980년대를 상징하는 음악적 아이콘이자 오피니언 리더의 한 축이었다.

 


■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의 감동 1집 

봄여름가을겨울의 두 남자, 김종진과 전태관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정원영의 지인들이 방배동의 한 주점에서 가진 1982년 송별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교류를 이어나가던 두 사람은 1985년 김현식의 백밴드로 결성된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가 된다. 이 팀에는 두 사람과 절친한 친구가 되는 유재하와 '빛과 소금'의 멤버인 장기호와 박성식이 몸담기도 했다.



김현식의 백밴드로 만난 김종진·전태관  

퓨전 재즈 시대 연 1집 서서히 주목 받아  

연주 지망생들에게 롤모델이자 교과서  

김종진의 탁월한 송라이팅 능력 돋보여 


그저 무대에 선다는 흥분으로,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김현식을 보필했던 이들은 1987년 10월 김현식이 '들국화'의 전인권 허성욱, '부활'의 김태원, 이승철 등과 함께 대마초 흡연 혐의로 전격 구속되자 위기를 맞는다. 팀이 공중분해되다시피 한 것이다. 이때 김종진은 베이시스트 송홍섭의 소개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멤버가 된다.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어했던 그는 결국 마음이 통했던 친구 전태관과 함께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을 물려받아 팀을 꾸려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누구도 두 사람의 행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럴수록 이들은 연습에 매달렸고, 불꽃 같은 열정으로 음반 작업에 착수했다.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 김종진에게 영감을 준 것은 김현식이었다. 훗날 언론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그는 김현식에게서 그냥 솔직하게 노래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전문적으로 노랫말을 쓴 적도 없었고, 쓰게 될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노래처럼 솔직하게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랫말로 녹여내게 된다.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발상이었지만 김종진, 그 자신도 몰랐던 그의 천재성은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다. 이윽고 1988년 6월 15일 역사적인 첫 번째 정규 음반이 발매되었다.


음악으로 사계절을 그려낸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은 이들의 야심작이었다. 퓨전 재즈라는 장르가 낯설게만 느껴졌던 우리 가요계에 퓨전 재즈 시대를 열어보인 것이다. 서서히 이들의 음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더불어 소위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의 주목도 끌게 되었다[각주:1].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의 감동을 주었던 1집은 기존의 가요 어법을 무시하는 듯 보컬곡이 아닌 연주곡으로 포문을 연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해방감을 선사하는 풍부한 사운드, 탄탄한 연주가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화끈하고 다이나믹한 오프닝 곡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이 곡은 이 음반에 담긴 또 하나의 연주곡 '거리의 악사'와 함께 한국 가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각주:2]. 이 곡들은 K-퓨전의 신호탄이다. K-퓨전의 역사는 이곡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헤어지긴 정말로 싫어', '내가 걷는 길', '방황',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각주:3]' 같은 곡은 채워지지 않는 청춘의 허전함을 대변하는 곡들로 고뇌하고 아파하는 청춘 김종진과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김종진의 탁월한 송 라이팅 능력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는 갓 데뷔한 그룹의 노래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원숙한 내공이 느껴지는 명곡이다. 음반에 수록된 10곡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은 CD로 발매되면서 보너스로 추가된 곡. 신촌블루스 2집 음반에 담겼던 곡이다) 모두는 명연으로 수많은 연주 지망생들에게 롤모델이 되었고, 교과서가 되었다. 특히, 두 사람의 친한 친구였던 고(故) 유재하에게 바친 곡 '보고 싶은 친구'는 김종진이 '눈물로 만들고, 가슴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 창조적인 음악의 진화, 새로운 비상 2집 

봄여름가을겨울은 1집으로 가요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지만 그들이 체감할 정도의 피드백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때 이들은 가수 한영애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이 공연에서 의욕을 찾고 자신감을 회복한다.


다음은 전태관의 회상.

"밥벌이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무대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맛보고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모티브를 찾았다. 그 순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다."


그 후 발매한, 1989년 10월 5일 내놓은 2집은 1집의 연장선상인 동시에 새로운 비상을 시도한 역작이다. 내실을 다지면서도 자기들만의 보다 독창적인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2집 역시 10곡을 담고 있고, 1집과 마찬가지로 3곡의 연주곡을 담고 있으며, 첫 번째 트랙도 연주곡이다. 연주진은 기타에 김종진, 드럼에 전태관, 베이스에 송홍섭을 기본 축으로 하여 키보디스트 김효국, 피아니스트 최태완, 색소포니스트 정원용이 가세해 사운드의 질감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봄여름가을겨울 1집.봄여름가을겨울 1집.


음악이 사람의 마음마저 정화시켜야 한다는 음악지상주의를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노래로 그것을 실현해보이겠다는 청사진을 펼쳐 보여주고 있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소박하지만 거창한 바람을 담은 곡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각주:4]'. 한국형 하이브리드 음악의 효시격인 곡 '어떤 이의 꿈[각주:5]'은 봄여름가을겨울을 인기 그룹의 반열에 올려놓은 히트곡.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에 흥겨운 펑키 리듬, 록과 재즈가 범벅된 사운드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한국 펑키 록의 클래식 넘버, 김현식이 불렀던 곡을 보다 리드미컬한 사운드로 새롭게 편곡해 노래하고 연주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비롯해 '쓸쓸한 오후', '내 품에 안기어',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각주:6]',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면', '열일곱 그리고 스물넷', '사랑해', '못다한 내 마음을[각주:7]' 등 다시 한번 김종진의 탁월한 송 라이팅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봄여름가을겨울2집 앨범 표지.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과 2집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걸작들이었다. 이 땅에 K-퓨전의 새 역사를 열어보였던 봄여름가을겨울은 10년에 걸쳐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단 두 장의 음반에서 다 보여주고 말았다. 그만큼 이 두 장의 음반에는 그들만의 농축된 음악성이 100% 발현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의 음악이 긴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동시대 젊음의 숨결을 진정성있게 담아냈기 때문이리라. 최성철·페이퍼레코드 대표

기사 출처 : 부산일보



참고로 위 기사가 실린 부산일보에서는 [8090 이 노래 이 명반]기획물이 연재되고 있다.

부산일보 웹사이트에서 검색어 '8090 이 노래 이 명반'으로 검색하면 금일 현재 총24건의 기사물이 실려있다.

이 기획물에는 봄여름가을겨울 뿐만 아니라 푸른하늘, 들국화, 공일오비, 무한궤도, 이문세 등 8~90년대를 풍미했던 음악을 다루고 있다.

종편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 때문에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그 당시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은 위 기획물을 한번 읽어 보고 선곡해보길 바란다.


이전 관련글 보기  

 - 진솔함이 빚은 아름다운 노래 '봄여름가을겨울'


 - 봄여름가을겨울 - 못다한내마음을


 - 봄여름가을겨울 -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 봄여름가을겨울 - 거리의 악사


 - 봄여름가을겨울 -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 봄여름가을겨울 - 페르시아 왕자


 - 봄여름가을겨울 -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1. **** 그럼 나도 '소위 음악 좀 듣는 사람'축에 속했던 걸까...? [본문으로]
  2. ***** 지금도 연주곡 '항상 기뻐하는~~'과 '거리의 악사'의 리듬이 헷갈린다. [본문으로]
  3. **** 내가 봄여름가을겨울 노래들 중 맨 처음으로 좋아했던 노래다. [본문으로]
  4. **** 노래 제목처럼 이 연주곡은 정말 아름답다. 근데 아무리 들어도 그 리듬이 머리속에 기억되지 않더라...아직도 리듬을 기억할 수 없다. 들을 때는 리듬에 흠뻑 젖은체로 듣다가 곡 끝나면 리듬에 대한 기억이 없다. 마치 머리가 포맷된 것 처럼 말이다. [본문으로]
  5. ****** 당시 나의 친구들은 그룹'봄여름가을겨울'을 잘 몰랐다. 다만 '어떤이의 꿈'이라는 노래는 알고 있었다. [본문으로]
  6. ***** 이 연주곡은 초여름 혹은 초가을 밤에 들으면 제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왜 초여름이나 가을이냐구... 창문을 활짝 열어 제끼고 들어야 하는데, 추우면 음악이고 뭐고 없다. 그냥 창문 닫게 되니 말이다. [본문으로]
  7. **** 봄여름가을겨울의 연주곡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곡이라 생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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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 봄여름가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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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노래를 듣고 응얼거리는 정도다. 흔한 기타도 한번 켜 본 적 없다. 어쩌면 익숙하기 때문인지, 나에게 친숙한 연주곡이 몇 몇 있다. 대부분은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연주곡들이다. '어떤이의 꿈', '아웃사이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을 부른 가수가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들의 연주곡에 대해서 잘 모른다. 연주곡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중가수들중 앨범 속에 연주곡을 수록하여 발매한 가수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범위내에서 한 두손가락에 꼽히는 존재가 바로 '봄여름가을겨울'이다.


너무 자주 들어서 좋아졌는지, 아니면 원래 좋은 곡들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맘 때가 되면 생각나는 연주곡이 있으니 바로 '봄여름가을겨울'의 연주곡,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라는 곡이다.

몹시 춥지도, 덥지 않은 초가을 밤에 이 곡을 한번 들어보시라......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자연과 일치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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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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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의 "어떤이의 꿈" Funk버젼 일렉기타연주!



진주 "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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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함이 빚은 아름다운 노래 '봄여름가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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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00대 명반 선정 앨범 : 봄여름가을겨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대담 :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 전태관) VS 김고금평
      글 : 김고금평(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 사진 : smooth

제목봄여름가을겨울 - 수학적 논리로 펼쳐놓은 따뜻한 연주의 미학

퓨전재즈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은 꽤 유명한 기타리스트였다.(물론 지금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드 기타리스트 출신이라는 점만 봐도 이 정의는 설득적이다. 국내 펑크(Funk) 기타계의 1인자로 평가받는 한상원은 미국 버클리 유학을 떠날 때, 고 김현식에게 그를 적극 추천했다. 그의 연주 능력을 인정했다는 반증이다. 출중한 기타 연주에 비해 비교적 약점으로 부각되는 보컬은 이제 '봄여름가을겨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마스코트다. 서먹하게 들리는 음색이 안정된 연주력에 얹혀 뻗는 모습은 묘하지만 인상적이다. 김종진은 "데뷔 앨범을 낸 지 올해로 20년을 맞았는데, 이제서야 노래가 좀 되려고 한다"며 웃었다.

1988년 첫 앨범으로 데뷔한 김종진(보컬, 기타), 전태관(드럼)의 '봄여름가을겨울'은 그해 한 라디오 방송 라이브 무대에서 진가를 확인시켜줬다. 당시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진행자 이문세는 이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여러분들, 깜짝 놀라실 겁니다. 진짜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데뷔앨범의 첫 곡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이 연주됐는데, 스튜디오 앨범과의 차이를 못 느낄 만큼 정확하고 웅장하고 세련되게 울려 퍼졌다. 연주하면 록이 전부인 줄 알았던 우리 대중음악계에 퓨전 재즈라는 낯선 장르를, 하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은 음악으로 듣는 이와 연주하는 이의 성장판에 호르몬을 주입시킨 '봄여름가을겨울'. 이제 '관록'이란 단어가 어울릴 것 같은 두 사람을 최근 서울 홍대앞 와인바에서 만났다.

'어떤이의 꿈',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 '열일곱 그리고 스물넷'은 2008년 8월 4일 24:00까지 무료듣기로 제공됩니다.

제목"연주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김고금평 : 데뷔 앨범이 100대 명반에 들었다. 소감은?

김종진 : 우리가 선정된 것은 엄청난 뮤지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음악 활동 중에서 미국에서 최초로 만든 음반이나 라이브 음반, 컴백의 도화선을 지핀 영향력 있는 음반들이 기록에 안 올라간 것은 아쉽다. 농담이다. 하하.

전태관 : 우리가 볼 때, 1집에 대한 가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낮다. 실제 연주라든지, 사운드 부분이라든지 그땐 굉장히 미숙했다고 생각한다. 1집은 사실 우리가 만족을 못하는 앨범이다. 그 이후에 낸 앨범들이 더 마음에 든다. 1집의 신선함과 풋풋함에 많은 점수를 준 것 같다.


김고금평 : 어떤 이유로든 앨범이 주는 신선함은 나름대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을 듯하다.

김종진 : 그땐 상업적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시절이었다. 음악으로 돈을 번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선함이 가득 배어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전태관 : 우린 연주자니까, 당시 상황과 다른 색깔의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누가 연예인이라고 말하면 어색하다. 특히 외국에 여행갔다올 때, 직업란에 연예인이라고 쓰기 어렵다. 연주자란 표현이 맞는 듯하다.

김고금평 : 1집에서 연주곡을, 그것도 3곡씩이나 담는 시도는 충격에 가까웠다. 어떤 배경이 있었나?

김종진 : 당시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틀어 사람들 마음속에 있던 '왜 한국에는 연주자들이 없을까'에 대한 의문들을 우리가 그냥 먼저 푼 것이 아닐까. 음악하는 사람들은 보통 실험적이고 누군가에게 뭘 제공하는 서비스 정신이 강하지 않나.

전태관 : 우리가 제작자였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앨범을 낼 때 여러 음반사에 컨택을 했는데 동아기획만 빼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최소한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동아기획만 그 조건을 들어줬다.

김종진 : 옛날에도 '자뻑'이 강했다. 한번은 모 음반사 부장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 "제작비 다 내 주시고, 우리 음악 죽이니까 계약금 1000만원을 달라"고. 1988년에 1000만원이면 지금의 1억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정말 가관이었다.

전태관 : 2집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을 내고 어느 시상식에서 다시 그 부장을 만났다. 그 분이 "허허" 웃으시면서 "그때 1000만원 줄걸 그랬네" 하시더라.

1집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대개 이렇다. '20년 세월이 지나도 버릴 곡이 하나도 없는 앨범' '봄여름가을겨울 중 최고의 앨범' '절대 감동을 주는 음반' 이 같은 평가의 배경에는 첫째 연주와 노래를 적절하게 섞는 실험적인 방식을 대중음악사에 최초로 도입했다는 점이고, 둘째 자칫 난해해질 수 있는 연주의 구성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쉽게 풀어썼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성으로 이끄는 노래들의 대중적 소구력이 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봄여름가을겨울이 지금까지 펼쳐 낸 연주곡들을 쭉 살펴보면 리프(riff-반복선율)감이 귀에 쏙 달라붙을 정도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거리의 악사' '페르시아 왕자' '못 다한 내 마음을...' 등의 연주곡들에서 각 곡의 차이를 확실히 느끼며 선율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쉬운 리프를 다양하고 색깔 있는 방식의 사운드로 주조했기 때문이다. 노래들은 연주곡과 달리, 더 단순하고 감각적이다. 연주 부문에선 뮤지션의 본분을, 노래 부문에선 가수의 본분을 철저히 지키는 양날의 균형 감각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최대 미학인 셈이다.

"이론과 경험 쌓을대로 쌓는 게 중요"

김고금평 : 데뷔 앨범은 구성이나 사운드 면에서 획기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김종진 : 사실 제작비가 제일 안 들어간 앨범이었다. 녹음부터 더빙, 보컬, 믹스 다운까지 해서 모두 21프로를 사용했다.(참고로 1프로는 3시간 30분을 의미, 1프로당 가격은 20∼40만원 정도) 그러니까 재즈 음반 한 장 만드는 1000만원 정도의 가격이 든 셈이다.

전태관 : 참고로 3집과 4집은 100프로를 썼다.

김종진 : 80년대 초중반엔 모두 그렇게 녹음했다.

김고금평 : 그래도 그런 시도가 색다른 건 분명해 보인다. 어떤 경험들을 토대로 그런 앨범을 창조했다고 보는가?

김종진 : 구체적으로 데뷔 앨범을 내기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나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로 잠깐 활동하면서 앨범 녹음 때 녹음기법이나 스튜디오 비지니스 룰 같은 것들을 많이 배웠다. 그 전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3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음반 활동하면서 프로활동을 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수철과 작은거인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 김광민, 한상원, 정원영, 한충완 등과 함께 밴드 '수퍼세션'을 결성해 실험적인 음악도 했었다. 전태관도 한국 세션의 정상들과 함께 활동을 해왔다.

전태관 : 이론적으로는 이판근 선생한테 사사하기도 했다.

김고금평 : 이판근 선생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전태관 : 1984년과 1985년 2년간 배웠다. 음악이론에 지식이 없었던 때, 완전 기초부터 마무리까지 배웠던 기억이 난다.

김종진 : 한국의 재즈 이론은 이판근 선생밖에 없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서점에서 책을 사서 화성학이나 대위법을 혼자서 공부하려고 했다. 일본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재즈 이론의 대가였는데, 그때 번역서가 없어서 악보를 일본어로 이해하려니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견디지 못해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다. 궁금했던 건 재즈 연주자가 솔로를 하는데, 왜 저렇게 하는지, 스케일은 또 어떻게 구사하는지를 너무 알고 싶었다.

전태관 : 난 타악기니까 일반 음악에 대한 이론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다고 북만 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배웠는데, 화성 숙제를 가져가면 이 선생님은 반대편에서 악보를 보고도 단 20초만에 볼펜으로 찍찍 그으면서 틀렸다고 짚었다. 배우면서 신기했던 게 숙제를 해 가지고 가면 내가 악보에 그려도 그게 어떤 소리가 나는지 몰랐다. 그래서 '빛과 소금'의 키보디스트 박성식에게 코치를 받기로 하고, 내가 그린 악보를 연주해달라고 했다. 연주를 가만 듣고 있으니까, 내가 그렇게 위대한 소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 음악에 대해 큰 자신감을 얻었다.

김고금평 : 원래 멤버는 4명이었는데 2명으로 줄었고, 그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김종진 : 맞다. 원래 장기호, 유재하를 포함해 4명으로 시작했다. 나중에 유재하가 탈퇴하고 박성식이 들어왔다. 최태완(키보드)은 환절기 역할로 들어왔다. 현식이 형이 3집 내놓고 1987년부터 거의 활동이 없었다. 그 해 장기 공연을 끝으로 현식이 형은 잠적했다. 그리고 나서 한달쯤 지났는데, 마약으로 구속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다른 멤버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업적인 게 뭔지 모를 정도로 어리바리한 사람들이어서 현식이형이 교도소에서 나오길 기다렸는데, 그 와중에 나는 잠깐 '위대한 탄생'에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12월 현식이형이 출감해서 컴백무대를 가졌다. 전태관은 그때도 계속 같이 활동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적 특징은 수학적인 논리의 틀에서 찾을 수 있다. 도입과 본론, 결론의 모양새가 수학 공식처럼 체계적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기본적으로는 감성의 결과물이지만, 이들은 감성에다 이론의 틀을 갖춰 음악의 표현력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론이 풍부하다는 건 후속 작업이 전작의 진부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많음을 역설하는 증거다. 지금까지 낸 7장의 정규 앨범들이 비슷한 장르의 색깔을 띠면서도 다른 깊이의 맛이 느껴지는 것도 모두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음악에는 감성이외에 논리적인 틀도 필요"

김고금평 : 특히 연주곡에서 수학적으로 풀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김종진 : 우리는 처음부터 계산된 음악을 구사했던 팀이다. 그러니까 정말 수학적인 거 맞다. 그렇게 된 것도 사실 1988년에는 컴퓨터 시퀀서가 없으니까 우리가 직접 연주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시퀀서로 돌리고 루프를 이용해 계산된 음악을 하지만... 가령 A→B→C로 계산해서 안 풀리면 다른 방식으로 푸는 식이다. 하지만 계산 보다 더 중요한 건 멜로디가 가슴 속에서 나오는 걸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론을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틀에 박힌 일상적인 음악밖에 안나온다.

김고금평 : 매 앨범에서 연주곡을 넣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1집에선 연주곡을 3개나, 그것도 머릿곡으로 연주곡을 올렸다.(일반 대중들은 연주곡에 관심이 없지 않은가)

김종진 :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수많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듣다보니, 연주자에 대한 감성과 욕구가 쌓여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선 사람들이 "대중음악에 연주곡을 넣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선 전부 연주곡을 내야할 뮤지션이 그런 노선을 걸었다는 것은 연주자로서 패배자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김고금평 : 하드록 그룹 '키스'의 광팬이라고 들었다.

김종진 : 굉장히 좋아하는 밴드다. 키스의 기타리스트 에이스 프렐리는 수학적으로 기타를 치는데, 솔로 플레이가 미리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그것도 아주 듣기 좋게 만들어져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었다. 내 창법도 키스의 보컬리스트 폴 스탠리에서 영향 받은 것이다.



김고금평 : 퓨전재즈를 도입했다는 신선한 평가와 함께, 일본 제이(J) 퓨전(특히 '카시오페아')과 비슷하다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종진 : 내 생각엔 음악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리 릿나워와 비슷하다. 굳이 우리 연주를 다른 연주자에 빗대자면 '거리의 악사'는 리 릿나워, '못 다한 내 마음을...'은 산타나와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데뷔 앨범을 낸 지 20주년을 맞는 봄여름가을겨울. 그간 그들은 많은 변화를 통해 성장통을 겪었다고 한다. 연주를 주력으로 하는 팀이다 보니, 이들은 주로 TV 보다 공연장에서 대중과 소통해왔다. 서울의 큰 공연장은 물론, 전국의 소극장까지 죄다 훑은 적도 있다.

"성장통으로 보낸 20년... 후기에 명반 나오는 그룹으로 기억됐으면"

김고금평 : 20주년을 맞는 소감이 어떤가?

김종진 : 20년이 되니까 이제 노래가 좀 되려고 한다.(웃음) 생각해 보니, 20살이면 성인식을 치르는데, 우리가 음악적으로 성인이 됐다는 느낌이 든다. 그 전엔 우왕좌왕하는 시기도 있었고, 뭐하는지도 잘 모르는 때도 있었는데, 이젠 깊이가 생기는 것 같다. 명연주자들의 수작들이 후기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오래 남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그런 팀이 됐으면 좋겠다.

김고금평 : 20년 소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김종진 : 매 순간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왔던 것 같다. 전국 소극장 투어 돌 때는 별로 호응이 없어 낭패감을 맛보기도 했다.

전태관 : 5집 [미스터리] 발매 투어로 1995년 만우절 때 부산공연한 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기획자가 공연에서 손을 놓고 빠지는 바람에 일이 엉망이 됐다. 그때 처음으로 공연에서 쓴 맛을 봤다. 아직도 그 때 일은 음반 제목처럼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김고금평 : 네이버 팬들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김종진 : 국내 최고의 포털에서 인터뷰를 하게 돼 영광이다. 나 분당산다.(웃음) 여러분이 언제 들어도 자존심을 느낄 수 있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1집 이외에 다른 앨범의 곡들도 많이 들어봐 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전태관 : 난 그 옆에 수지산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음악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현실이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김종진 : 그 진실에 믿음을 버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음악하는 사람은 오늘도 자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장소 : 홍대 롤링홀 옆 와인바
진행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www.gaseum.co.kr)

출처 : NAVER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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