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3)
의령 볼거리 - 일붕사(세계 최대 동굴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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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의령인 어느 중소기업 사장님 적극 추천해 주셨던 '일붕사'를 다녀왔다.

나는 어떤 사찰에 처음 갈 때는 종파가 무엇인지를 관심가지고 본다. 내가 아는 '조계종', '천태종', '화엄종' 소속의 사찰이라면 우선 안심한다. 이외 종파 소속이라면 일단 시커먼 안경을 끼고 사찰에 들어간다.


이 점에서 본다면 의령에 있는 일붕사는 한 수 접힐 수 밖에 없다. 일붕선교종이라는 처음 들어본 종단이기 때문이였다.

일붕사 주차장 절벽일붕사 주차장 절벽


일붕사는 말 그대로 바위구덩이 속에 세워진 사찰이다. 위 사진속 자동차와 절벽의 비율을 보면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일주문으로 올라가는 길은 늦 여름의 더위를 식혀줄 만큼 넉넉한 그늘과 나무에서 내뿜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위 문구는 일붕사 웹사이트에 올려진 소개문구다.

일붕사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바로 동굴법당이다.

이 동굴법당이 없다면 일붕사라는 브랜드(?)도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규모도 세계 최대라고 하니말이다.


세계 최대 동굴법당. 의령 일붕사세계 최대 동굴법당. 의령 일붕사


불교'만'자가 세겨진 전각이 대웅전, 그 좌측이 무량수전




그런데........ 말이다......

세계 최대치고는 조금 야박하다.


나는 상상해 봤다.

일붕사의 동굴법당에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몰려들었다면,

중국은 이 규모보다 몇 배 더 큰 동굴법당을 만들거다라는 상상을 말이다.


要는 그리 크지도 않은 규모로 세계 최대라고 선전하지 말고 부처의 가피를 널리 전파할 뭔가를 찾아보길 바란다.

법당 앞 시멘트 마당!!!!!! 돋보인다.



또 그런데......말이다.....

일붕스님의 이력이 대단하시다.

대학교 교수로 일하시고 조계종에서도 중임을 맡으시기도 하셨다.

불국사 주지까지 역임하셨네.

또한 해외 포교활동에도 많은 활약을 하셨다. (이상 일붕사 웹사이트에서)


또또 그런데......말이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제4공화국의 통일주체국민회의[각주:1] 대의원, 제5공화국의 국가보위입법회의[각주:2] 입법의원으로 참가하여 두 정권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일붕사를 다녀온 후 이것 저것 고려해 본 후....

제 점수는요.......65점!!!!!!!!!


다만 불심 가득한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이 분들은 일붕사에 대한 점수를 후하게 매길 것 같다.

실제로 이곳 법당을 처음 방문하시는 노보살님들께서는 감탄사만 남발하시더라!


이후 연관글 보기  

 - 양산 볼거리 - 내원사



  1. ########## 통일주체국민회의(統一主體國民會議)는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으로 제4공화국이 출범하면서 헌법에 따라 구성된 간접민주주의 기관이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유신헌법의 핵심인 대통령의 간접 선거 기능을 담당한 것이다. 유신헌법 제3장에 의하면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가의 정상기관(頂上機關)이자 주권적 수임 기관으로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국민의 총의가 모인 곳이다. 따라서 6년의 임기를 가진 이 기관의 대의원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며, 대통령을 선출하고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유신정우회)을 선출하며, 국회의 헌법 개정안을 최종 의결하고 통일 정책을 심의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이자 대통령인 박정희의 거수기 노릇을 하였던 이 기관은 1979년 10월 26일 그가 암살되자 다음 대통령인 최규하와 전두환을 형식적으로 선출해주는 역할을 맡은 뒤, 이듬해 제5공화국 헌법 발효와 함께 해체되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본문으로]
  2. #########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의 법적 근거인 국가보위입법회의법은 1980년 10월 27일 남덕우 당시 국무총리가 대통령 전두환을 대리하여 주재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입법권이 없던 국보위에서 의결된 이 법안은 무효라는 주장[1] 도 있다. 법안 통과 이튿날인 10월 28일부터 이듬해 대한민국 제11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날인 1981년 4월 10일까지 존속하면서 제5공화국 수립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사실상 신군부의 어용 기관이었던 국가보위입법회의는 156일의 활동 기간 동안 215건의 안건을 접수하여 모두 가결하였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정치 활동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정치활동규제법을 비롯하여 언론기본법, 국가보안법 개정안, 노동법 개정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새 헌법에서 규정된 대통령 간선제를 위한 선거법안 등,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시킨 법안들은 악법 시비나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기관에는 대통령이 임명한 공무원, 종교계, 학계, 군부 인사, 전몰군경 유가족 등 각계의 인물 81명이 참여했고, 의장은 변호사 이호가 맡았다. 제5공화국 헌법 부칙 제6조 제3항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제정한 법률과 이에 따라 행하여진 재판 및 예산 기타 처분 등은 그 효력을 지속하며, 이 헌법 기타의 이유로 제소하거나 이의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1989년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구 헌법의 기본권보장 규정과도 모순, 충돌되는 것이었던 만큼 현행 헌법에서는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여 반성적 견지에서 제소금지 조항을 승계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고, 따라서 모든 국민은 아무런 제약이 따르지 않는 기본권에 의하여 언제 어떤 절차로 만들어졌느냐에 관계 없이 모든 법률에 대하여 법정절차에 의해서 그 위헌성 유무를 따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 해당 조항의 효력을 부정하였다.[2] 1980년 11월 12일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정치인 835명을 정치규제 대상자로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 569명이 재심을 청구했고 그 가운데 268명이 구제됐다. 정치인들이 재심을 청구해 규제대상에서 풀린다는 건 5공에 대한 협조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군부의 이런 조치는 관제야당 창당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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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그건 당신 사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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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어색한 첫 만남에서 쉽게 터 놓고 대화할 분위기를 만드는게 아주 중요하다.

이런 분위기 조장(?)에 감초같은 멘트가 있으니 바로

 

'고향이 어디냐'

'어느 학교 나왔느냐'

'본관이 어디냐,...'

등등이다.

소위 미끼를 던지는 거다.

상대방이 미끼들 중에서 하나라도 덥석 물게 되면 그 다음 대화는 약간 순조롭게 이어지게 마련이다.

 

 

"가족여행?.....그건 당신 사정이고!"

예전 회사다닐 때 금요일 오전까지 급하게 어떤 제품(A제품)을 생산해야 할 상황이 생겼는데(목요일 오후 현재),

부품 하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차질이 발생된 적이 있었다.

사장님의 특급 지시를 받고 내가 친히(?) 나서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에 찾아 갔다.

그 회사 사장님께서는 워낙 베짱이 좋으신 분이시라 부품 재고도 없고 생산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일언지하에 나의 요청을 거절하고는 퇴근 준비를 하였다. 나는 일단 회사에 보고를 해야 하니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씀 드린 후 자리를 비웠다.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면서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해 봤다. 일단 사장님과 대화의 물꼬를 터는게 우선이라는 판단을 했다. 근처에 그 회사 직원분이 계시길래 사장님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경남 의령이 고향이란다........이 말을 듣고 다시 사장님을 만나러 갔다.

 

"사장님! 내일까지 고객사에 A제품을 납품하지 못하면,

저는 가족여행을 못가게 됩니다. 부탁 드릴께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여행?.....그건 당신 사정이고!"

..........

"근데 어디로 여행 가는데요?"라고 되물으신다.

 

"아...예. 경남 의령에요"라고 난 대답했다.

 

"예~? 의령요?!"라며 사장님이 재차 확인했다.

 

결국 이 회사는 그날 밤 긴급으로 부품을 생산하여 우리 회사에 납품하게 되었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가족여행 계획 같은 것은 애시당초 없었다.

 

이 회사의 사장님께서는 그날 저녁에 자신의 사무실에 나를 앉혀 놓구서는 의령에 가면 어딜가서 무얼 먹고, 뭘 봐야하는지를 흥분하시며 설명하셨다. 그곳이 바로 의령 메밀소바로 원조 식당인 '다시식당'이라는 곳이다.

 

3~4년년이 흘러 이제서야 그 사장님께 거짓말 했던 의령으로의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의령장터 바로 옆에 위치한 '다시식당'!

'다시'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지만 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다시물'의 그 '다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ex, 멸치 다싯물, 멸치 다신물). 사전을 찾아보니 '다시'는 일본말이라고 나온다. 그 뜻은 '가쓰오부시·다시마·멸치 등을 끓여서 우려낸 국물'로서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맛국물'이라 할 수 있다.

이곳 '다시식당'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식당이다.

1945년 첫 영업을 한 이래 70여년 동안 오직 메밀소바만을 취급하는 음식점이자,

돈이 된다 싶으면 이내 체인점을 모집하여 본연의 맛을 지키는 것보다는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속성에 물들지 않은 그런 식당이다.

 

 

의령장터 옆에 위치한 허름한 '다시식당'
의령장터 옆에 위치한 허름한 '다시식당'

 

 

식당 문을 여는 순간 구수한 육수 냄새가 진동했다.

첫 느낌이 너무 좋았다. 메밀소바(메밀국수)의 맛을 잔뜩 기대하게 만들었다.

구수한 육수 냄새가 코를 자극한 '다시식당'
구수한 육수 냄새가 코를 자극한 '다시식당'

 

 

유명 맛집에서 무덤덤하게 먹는다는 것은.....

워낙 의령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라 자리가 없을까 염려했는데 의외로 자리가 많았다.

시끄럽지도 않게 손님들이 무덤덤히 메밀소바를 먹고 있었다.

굉장히 무덤덤하게 말이다.

 

 

 

메뉴는 굉장히 단촐하다. 단촐하다는 말 보다는 집중적이다라는 말이 옳다.

오직 메밀을 재료로 한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후에 알게 된 점이지만 의령장터 내에 위치한 의령소바 프렌차이즈점에는 돈까스도 메뉴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어린애들과 함께온 가족을 위한 배려(?)차원이란다. 그곳은 대기번호표를 받고 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손님들이 많더라!!!

직접 먹어 보지 않았기에 그 프렌차이즈점과 이 곳 '다시식당' 중 어느 곳이 맛있는지는 판가름할 수 없으니 왜 손님이 많은지 적은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역시나 메밀과 나는 맞지 않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 뿐이다.

 

메밀에 집중한 차림표
메밀에 집중한 차림표

 

 

구수한 육수 냄새는 도대체 어디로 간거야.....

비빔소바, 냉소바, 메밀만두를 시켜 먹었다.

식당 전체를 진동하던 그 육수의 냄새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맛이 너무 밋밋했다. 뭐라 특정짓기에는 모든 게 부족한 맛이였다.

아내와 나의 공통된 평가는 차라리 창녕 대중분식당의 메밀이 더 좋다!.

다만 한번의 경험으로 의령 메밀소바 맛집으로 유명한 '다시식당'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이 이치에 벗어난다는 것을 인정한다.

 

서둘러 메밀소바를 챙겨 먹고서는 의령장내에 있는 망개떡 판매점에서 조그마한 한 상자를 샀다.

가격이 저렴하여 부담없이 먹었다.

 

 

 

 

주  소 : 경남 의령군 의령읍 서동리 492-4 

연락처 : 055 - 573 - 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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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볼거리 - 충익사, 의병박물관,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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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바람쇠러 아내 아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0823).

장소는 경남 의령 일대였다. 의령은 수년전에 한번 들린 곳인데 당시 임펙트가 없는 밋밋한 느낌이였다.

딱히 갈만 한 곳이 없는지라.....그냥 가보자는 기분으로 핸들을 잡았다.


나의 경우 적어도 대략적인 동선이라도 구상하고 떠나는 스타일이기에 일단 의령시내에서 동선코스를 아래와 같이 잡았다.

아래 사진상에 나오는 '의령교육지원청'은 여행코스가 아니라, 주차장소이다.

의령의 대표음식인 '의령소바'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다시식당'이 의령장 바로 옆에 있기에 주차공간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사전에 주차장소까지 대충 잡은 것이다.




일단 의령 시내 충익사를 도착지로 정하고 근처에 있는 의병박물관, 구름다리를 구경하였다. 이 구간에서는 물론 당연히 걸으면서 역사적 교훈과 주변 공간의 경치를 살펴보면 좋은 장소이다.



이전 관련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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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충익사



충익사충익사


충익사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 곽재우와 휘하 장병수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



충익사 안에 있는 충의각충익사 안에 위치한 충의각



역사의 교훈을 발견한다는 취지를 벗어나 바라볼 때, 충익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충의각'이 였다.

그 생김새가 굉장히 특이하고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생긴 모양이 상여와 흡사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알고보니 실재로 상여모양을 본떠 만든 건물이라고 한다. 

아래는 충의각 안내판에 세겨진 내용이다.

충의각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수 등 18장령들의 이름과 본과, 호, 중직을 기록한 명파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다.

1910년도에 지어진 목조건물로 의장적, 기술적 보존가치가 높아 2010년 12월 9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522호로 지정 받았다.

원래 의령읍 중동리 1046-9번지에 있던 관찰사를 지낸 합천이씨 이중하의 불망비각이었으나 1972년 10월 9일 재부산향우회에서 매입, 충익사 화장실 뒤편으로 옮겨 유지해 오다 1978년 충익사 정화사업과 함께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B. 의병박물관


의병박물관의병박물관


콘텐츠가 예상한 것처럼 빈약하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박물관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것저것 오랜된 것들의 취합해서 진열한 것만 같아 아쉽다. 그래도 의병박물관은 '의병'이라는 스토리라도 있기에 차별화는 가능한 부분이 있긴 하다.




C. 구름다리

구름다리구름다리


솔직히 일반 여행객이라면 이 구간의 하일라이트는 구름다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옆에 충익사와 의병박물관 같은 볼거리 있고, 메밀소바와 방개떡라는 특산물이 있기에 구름다리가 명물로서 유지될 수 있는 이유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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