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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고(故) 최진실씨의 동생 최진영(39)씨 자살....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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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최진실씨가 떠난 치 언제인데.....그리고 누나를 이어 자살이라니....
(일단 자살로 추정한다고 경찰에서는 밝히고 있음)

일전에 TV에서 어떤 다큐를 봤습니다.
'자살이 남겨진 가족들에게 남긴 영향'이라는 주제의 다큐 였습니다.
그 다큐에서 어느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가정에서 자살이라는 것은, 남겨진 가족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
만약 아버지가 자살했다면, 그 자식이 자살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왔을 때, 앞서 간 아버지처럼 자살이라는 행위를 도피의 수단으로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살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즉 가까운 친인척의 자살을 경험한 집안에서는 연속적인 자살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자살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정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와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정말 자살만은 아니기길 바랍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탤런트 고(故) 최진실씨의 동생 진영(39)씨가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다락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가족에 발견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목을 매 숨져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119에 신고가 들어와 출동한 시각이 오후 2시14분이라고 하니 그전에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인의 시신은 오후 2시46분께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도착했으며 현재 이 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경찰은 자택 현장에서 유서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현재 현장 감식을 벌이는 등 자세한 사망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오늘 오후 늦게 현장조사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 현장 조사가 끝나면 기자 브리핑을 하겠다"고 말했다.

1993년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고인은 이후 가수, 영화배우, 탤런트 등으로 활동해왔으나 2008년 누나 최진실씨의 자살 이후 외부활동을 자제하면서 조카들을 보살펴온 것으로 알려졌다.

누나 최씨도 2008년 10월2일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kind3@yna.co.kr

http://media.daum.net/entertain/cluster_list.html?clusterid=149355&clusternewsid=20100329154306201&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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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입적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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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저를 출가의 마음을 불러 일으켰던 법정 스님께서 입적 하셨습니다.

일반인에게 불교 이미지를 친근하게 변화시켰고 무소유의 길을 알려 주신 분입니다.

어차피 서울에 출장 와 있으니 시간이 날때 길상사에 다녀와야 겠습니다.

'버리고 또 버렸던' 법정스님의 생애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11일 입적한 법정(法頂)스님은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산문집을 통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스님이다. 불자나 스님들 사이에서도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에 이어 인지도가 높은 스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산문집의 제목처럼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끊임없이 보여줬다.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았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법정스님은 1990년대 초반 "나는 아마 전생에도 출가수행자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직관적인 인식만이 아니라 금생에 내가 익히면서 받아들이는 일들로 미루어 능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법정 스님은 한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한다. 그는 대학 재학중이던 1955년 마침내 입산 출가를 결심하고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날 집을 나선다.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대산으로 가기 위해 밤차로 서울에 내린 스님은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스님(1888-1966,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후 초대 종정)을 만나 대화한 후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는다.

"삭발하고 먹물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그길로 밖에 나가 종로통을 한바퀴 돌았었다"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부목(負木.땔감을 담당하는 나무꾼)부터 시작해 행자 생활을 했다. 당시 환속하기 전의 고은 시인, 박완일 법사(전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등이 함께 공부했다.

법정스님은 이듬해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28세 되던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사전' 편찬에 참여하다 4.19와 5.16을 겪은 스님은 1960년대 말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운허 스님 등과 함께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절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했던 법정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후 반체제운동의 의미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고민하다 다시 걸망을 짊어진다.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낸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스님은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난해 겨울은 제주도에서 보냈다가 건강상태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지만, 의식을 또렷하게 유지하면서 "강원도 오두막에 가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법정스님은 평소에는 강원도 산골에서 지냈지만 대중과의 소통도 계속했다. 특히 1996년 고급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김영한 할머니(1999년 별세)로부터 아무 조건없이 기부받아 이듬해 12월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창건한 후 회주로 주석하면서 1년에 여러차례 정기 법문을 들려줬다.

법정스님은 2003년 12월에는 길상사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하지만 정기법문은 계속하면서 시대의 잘못은 날카롭게 꾸짖고, 세상살이의 번뇌를 호소하는 대중들을 위로했다.

산문인으로서 법정스님은 뛰어난 필력을 바탕으로 우리 출판계 역사에도 기록될 베스트셀러를 숱하게 남겼다.

스님은 해인사에 살 당시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가리켜 "빨래판같이 생긴 것이요?"라고 묻던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라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남아있는 한 한낱 빨래판에 지나지 않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말과 글로 옮겨 전할 방법을 고민했다.

또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전통과 타성에 젖어 지극히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맹목적인 수도생활에 선뜻 용해되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스님의 이런 원력은 스님의 이름과 동의어처럼 불리는 산문집 '무소유'의 모습으로 꽃을 피운다. '무소유'는 1976년 4월 출간된 후 지금까지 34년간 약 180쇄를 찍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법정스님은 다른 종교와도 벽을 허물었던 것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법정스님은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을 독실한 천주교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교수에게 맡겨 화제를 모았고,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방문했다. 법정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 했다.

법정스님은 이밖에 조계종단과 사회를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법정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고 1994년부터는 환경보호와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시민운동단체인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어왔다.

출처 : 연합뉴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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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지진 발생 - 연 이은 지진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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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전에 아이티 지진 발생 이후에 칠레에도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회사에서 저녁식사 후 휴식시간을 이용해 인터넷 뉴스를 보다보니, 필리핀에 6.1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영화 2012 한장면

영화 2012의 한 장면



아직까지 필리핀 지진에 대한 인명피해가 확인도지 않았는데, 짧은 시간에 너무 빈번하게 지진이 발생되는 군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네이버 블로그

3월1일에 출근해서 회사 상사와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진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상사 역시 지진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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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저주 때문에 아사다 마오가 금메달을 놓쳤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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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연의 일치 입니다.
오늘 오전에 '명성황후의 저주 때문에 아사다 마오가 금메달을 놓쳤다' 라는 올린 글이 있습니다.
일요일 이지만 출장지에서 당직근무를 하면서 틈틈히 인터넷을 하다가 저의 블로그의 유입경로를 살피던 중 '명성황후마오'라는 검색어가 있어 알아보니

이미 '아사다 마오가 이미연을 닮았다'라는 이야기가 며칠 전부터 아래와 같이 신문에서 언급된 모양입니다. 역시 사람들이 보는 눈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찬찬히 신문을 읽던 중, 언제 우리나라에 피겨스케이팅이 첫 선을 보였는가에 대한 기사를 읽던 중 깜짝 놀랐답니다.
언제 일까요????
바로 고종황제 때라고 합니다. 그것도 명성황후 생존 때라고 하네요.

한국 피겨가 첫 선을 보인 건 1894년 경복궁 향원정에서다. 당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 주재 외국인들이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얼음 위를 나는 기술’을 선보였다. 황후는 남녀가 사당패처럼 발재주를 부리며 손까지 잡았다 놓았다 하는 모양을 보며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한국땅에 씨를 뿌린 피겨스케이팅은 116년 만인 이날 김연아의 손에 의해 활짝 피어난 셈이다.
원문 출처 : 서울신문 원문보기

아사다 마오와 이미연이 약간 닮았다는 이유로 요렇게 궁상맞은 포스트를 계속 올리는 걸 보니......
저도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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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저주' 때문에 '아사다 마오'는 금메달을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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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 "아사다 마오'는 조선의 국모였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허황된 주장(?)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참고로 이 내용은 어제 밤  출장온 방에서 홀로 생각 해 본 생각입니다.

아사다 마오는 조선의 국모였다.

 

우연히도 김연아와 연관된 글을 자주 올립니다.

2010년 벤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획득이야기를 하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김연아와 동갑내기인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입니다.

 

 

아사다 마오 = 명성황후

 

아래는 저의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생각입니다.

아사다 마오의 얼굴을 보면 아사다 마오는 아마도 전생에 왕족이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왕족이었다면,,,,,일본의 왕족이 아니라 바로 조선의 왕족이라는 것 입니다.

조선왕족 중에서도 바로 명성황후였다는 것 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아사다 마오의 생김새 때문 입니다.

몇 년전에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명성황후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본 프로그램에서 초기에는 명성황후로 분한 사람이 이미연이었습니다.

그러다 프로그램 방영 중간에 이미연에서 최명길로 역할이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아사다 마오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미연가 닮았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아사다 마오를 보고 있으면 명성황후가 생각이 나더군요.

 

…절대로 피겨에서는 아사다 마오의 육신이 김연아를 이기지 못하도록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아직까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일본인들이 아사다 마오에게 기대했던 마지막 희망을 뺐음으로서 허탈감과 패배감 주고자 한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지금까지 잠깐 머리를 스친 잡생각을 주절 거렸습니다.
암튼 승리한 김연아선수에게 축하를, 금메달을 놓친 아사다 마오선수에게는 격려를 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피겨스케이팅이 언제 들어왔을까요?
그리고 피겨스케이팅하는 모습을 가장 처음 보았던 사람은 누굴일까요?

바로 명성황후와 고종황제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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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유연근무제' - 절대 반대. 우리나라는 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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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기분 잡치는 뉴스를 읽었습니다.
공무원 유연근무제를 시행한다는 뉴스 입니다. 우선 저는 이것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공무원들이 업무시간에 탱자탱자 놀고 있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왔습니다.
실제로 공무원 신분인 지인들을 통해서 그들의 만행?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PC방에서 공무원과 같은 '군무원'의 행각을 알고 있습니다.

유연근무제가 시행된다면 유연근무제에 참여하는 공무원이 진짜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기능이 없습니다. 감시기능이 있다하더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서로 눈 감아주고 말 것 입니다.

미국이나 영국같은 선진국의 유연근무제가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가 선진국 인지 궁금합니다. 무역거래량 등 경제지수로만 판단한다면 선진국이라 인정할 수  있지만, 사회적 도덕성과 공직사회의 부정비리 등을 생각하면 아직은 후진국입니다. 
선진국이 하니깐 우리도 한다는 방식은 절대 안됩니다. 
시행 조건이 선행적으로 해결된 후에야만 가능합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도덕성이 제자리를 잡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견제감시기능이 없이는 절대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출퇴근·교통혼잡비용' 절감하겠다는데 얼마나 많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하는지 궁금하다. 얼마나 절감할 수 있을까.....

혹시 재택근무하면서 발생된 비용(전력비, 인터넷 사용료, 전화통화료 등)을 지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이 들기전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볼까......

공무원 유연근무제

공무원 유연근무제



올 하반기부터 공무원들은 재택근무와 함께 주 3∼4일 근무가 가능해지고, 출근 시간도 오전 7시부터 오전 10시 사이에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행정안전부는 15일 정부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무원의 근무형태를 개인별·업무별·기관별 특성에 따라 다양화하는 이 같은 내용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재택근무제가 시행된다.

재택근무제 대상자는 소청심사나 징계 안건 검토, 전산 프로그램 개발 등 개별적·독자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한 공무원과 장애우, 육아부담이 있는 여성공무원, 원거리 출퇴근자 등이다. 


하루 8시간으로 정해진 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주 40시간의 범위에서 1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선택적 근무시간제도 도입된다. 또 주 40시간을 채우되, 주 5일 이하로 근무하는 집약근무제도 하루 10시간 근무 4일 출근 또는 하루 12시간 근무 3.5일 출근 형태로 시행된다. 

육아부담이 있는 공무원과 자기계발이나 가사노동이 필요한 공무원을 위해서는 하루 8시간(주 40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하면서 출근시간을 오전 7시부터 10시 사이에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시차 출퇴근제도 도입된다.

아예 주 40시간 근무제를 적용하지 않고, 업무수행 방법과 업무 시간에 재량을 부여하는 재량근무제도 시행된다. 

행안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유연근무제가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다”며 “유연근무제가 본격화하면 정부조직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출퇴근·교통혼잡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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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사과'로도 분이 삭이지 않는다. 정초부터 재수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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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동안 벤쿠버동계올림픽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간간히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한 채널의 시간을 놓치면 다른 채널을 돌려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2010 벤쿠버동계올림픽에는 그럴 수가 없더군요.

뉴스시간에 SBS는 동영상이 나오는데, KBS와 MBC는 컷 사진으로 보여주더군요.
이게 말로만 듣던 SBS가 2010 벤쿠버동계올림픽 독점중계의 결과더군요.

요런 싸가지!!!!!!



결국 위대한 SBS가 사고를 쳤습니다. 과유불급!!!!!!!
스포츠 중계부문에서 이번이 SBS의 첫 번째 사고가 아니였군요.




SBS가 2010 벤쿠버동계올림픽 중계 도중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에게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표시하는 방송사고를 내 국민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15일 오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3000m 결선 경기를 중계한 SBS는 결선1조 경기에 나선 박도영이 출발선에 서 있는 화면에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넣는 실수를 범했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SBS는 방송사 게시판에 “CG처리 실수로 잠시 태극기 대신 일장기로 선수 소개가 있었으나 곧바로 조처한바 있다”고 밝혔다. 

SBS측은 이어 “우발적인 CG 자막실수였다”면서 “시청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사과에도 국민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메인 뉴스인 ‘8뉴스’를 통해서도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날 ‘8뉴스’에서 김소원 앵커는 올림픽 중계방송 중 국기 오류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사과드리며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사측의 잇단 사과에도 시청자들은 “잠깐이라고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 “국제적 망신” “다른 것도 아니고 국가대표에게 일장기를 표시하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다” 등 반발이 거세다. 
기사 및 사진 출처 : 아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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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지진 발생 - 섬 부근 해역에서 규모 6.6의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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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에 대한 공포가 가득 합니다.
아이티 지진 후, 지진에 대한 관심이 가득한 가운데 9일에 경기도 시흥에서 진도 3.0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거의 해를 그러지 않고 큰 지진이 발생하는 듯 합니다.
2008년 중국 스촨성 지진, 2009년 인도 수마트라 지진, 2010년 아이티 지진이 그러 합니다.
그리고 2004년 24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남아 쓰나미도 잊을 수 없는 대재앙입니다.

오늘도 지진 뉴스가 나왔습니다.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발리' 입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섬 부근 해역에서 규모 6.6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현지 기상청이 밝혔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오늘 오전 2시43분, 우리 시각 오늘 오전 3시43분 자바섬의 젬베르 남쪽 17km, 깊이 53km 지점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전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대륙판들이 만나 화산과 지진 활동이 왕성한 태평양의 '불의 고리' 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수마트라섬에 규모 7.6 강진이 발생해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마트라섬 파당서 최소 75명 사망, 희생자 더 늘듯… 교민피해 확인 안돼
사모아서도 쓰나미… 한국인 2명 사망 1명 실종

30일 오후 5시경(현지 시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주도인 파당 시(인구 90만 명) 인근에서 일어난 리히터 규모 7.6의 강진으로 오후 8시(현지 시간)까지 최소 75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매몰됐다고 유수프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이 밝혔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매몰된 사람이 많아 사상자는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는 이날 한국인 피해자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파당 시의 한국인 유학생 3∼5명과 아직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지진은 파당 시에서 서북쪽으로 53km 떨어진 해저 87km 지점에서 일어났다. 일본 지질조사국은 이 지진으로 인도양을 접한 국가들에 1∼3시간 뒤 파괴적 지진해일(쓰나미)이 일어날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앞서 남태평양 중부 사모아 제도 주변 해역에서 지난달 29일 강력한 지진에 이은 지진해일로 113명 이상이 숨졌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날 지진해일로 한국인 2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USGS는 이날 오전 6시 48분 아메리칸사모아 서남쪽 190km 지점 수심 3500m의 해저에서 규모 8.0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진 발생 20분 뒤 거대한 지진해일이 사모아 제도에 들이닥쳤다.

이날 지진해일로 아메리칸사모아에서 22명, 사모아에서 84명, 통가에서 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태평양 지진해일경보센터는 아메리칸사모아에 높이 1.5m의 지진해일이 들이닥쳤다고 밝혔지만 목격자들은 높이 최대 4m의 지진해일이 해안에서 내륙으로 1.6km 지점까지 밀려왔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인도네시아 발리에 지진 30명 사상
기사입력 2004-01-05 02:22 | 최종수정 2004-01-05 02:22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에서 오늘 새벽 리히터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해 노인 1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쳤습니다.

인도네시아 기상청은 이번 지진이 현지 시각 새벽 4시 59분쯤 발리에서 동쪽으로 3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지 경찰은 롬복 섬의 주도인 마타람시에서 와병중인 한 노인이 지진에 놀라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밝혔습니다.

또 가옥이 붕괴되면서 12살 짜리 소년이 다리가 부러진 것을 비롯해 최소한 22명이 다치고 건물 약 12채가 파손됐다고 병원 관계자와 관리들이 전했습니다.

강성웅 [swkang@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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