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2)
양산 홍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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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사찰 방문을 했습니다. 경남 양산에 있는 천성산 홍룡사라는 사찰입니다. 본디 이곳에 필(Feel)이 꽂힌 것은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법당으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 입니다. 폭포이름이 홍룡폭포인데 양산8경 중의 하나 입니다.

양산8경양산8경

홍룡사와 홍룡폭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아래 네이버 백과사전 내용을 인용합니다.

재단법인 선학원(禪學院)에 속하는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661∼681)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원효가 당나라의 승려 1천 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낙수사(落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당시 승려들이 이 절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들었다 하여 이름을 낙수사라고 하였다. 또 산 이름은 본래 원적산이었으나 1천 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원효는 산내에 89암자를 지어 1천 명의 대중을 가르쳤으며, 당시 각 암자에 흩어져 있는 대중을 모으기 위해 큰 북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북을 매달아 두었던 집북재와 《화엄경》을 설법하던 화엄벌 등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수백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 승려 법화(法華)가 중창하였다. 절 이름 홍룡(虹龍)은 폭포 이름에서 유래한다. 홍룡폭포는 제1폭포와 제2폭포가 있는데, 옛날에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1970년대 말 우광(愚光)이 주지로 부임한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종각·선방·요사채 등이 있고, 폭포 옆에 옥당(玉堂)이 있다.

100년 만에 찾아온 대가뭄으로 폭포물이 말라 아름다운 비경을 못 볼까 내심 걱정했는데, 웅장하진 않으나 색다른 경치를 누리는 호사를 즐기고 왔습니다.

홍룡폭포 홍룡사 관음전홍룡폭포 바로 아래에 위치한 홍룡사 관음전

대웅전대웅전

홍룡사 무설전무설전

홍룡사 무설전 천수천안관세음보살무설전 내에 모셔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




홍룡사에서 발견한 소소한 것들......

불두화불두화

통도사 서운암에서 처음 알게된 불두화를 여기서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끼가 껴 묵은 맛이 나며, 졸졸 흐르는 물이 어찌나 맑은지......



어디에 두든 어울리는 님들....



이 물건의 주인은 해탈하신걸까요....모든 걸 내려놓은 님이 한 없이 부렵습니다.

관련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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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9 - 통도사 서운암에서 봄을 만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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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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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表忠寺)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四溟) 대사(大師)의 충훈(忠勳)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祠堂)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원효대사가 창건했던 죽림사(竹林寺)였다고 한다.
829년인 신라 흥덕왕 4년에 중창하면서 영정사(靈井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1839년에 밀양군 무안면에 있었던 사명 대사를 모시는 사당인 표충 사당을 이 곳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을 표충사로 바꾸었다. 현재 경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인 대광전(大光殿)과 제52호인 표충 서원(書院) 등의 건물이 있다. 또한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과 보물 제467호인 3층 석탑이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29호인 사명 대사의 금란(錦란) 가사(袈裟)와 장삼(長衫) 등 유품 약 200여 점이 유물 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다.

표충사 전경표충사 전경


표충사표충사 배치도


표충사 홈페이지 보기
문화재정보센터에서 표충사 동영상 보기


청동함은향완

향완이란 절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준다는 향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도구로서 향로라고도 부른다.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에 있는 청동 향완은 높이 27.5㎝, 아가리 지름 26.1㎝의 크기이다. 향완에 무늬를 새기고 그 틈에 은실을 박아서 장식한 은입사(銀入絲) 기술이 매우 세련된 작품이다.

향완의 형태는 주둥이 부분에 넓은 전이 달린 몸체와 나팔모양의 받침을 갖춘 모양으로,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전과 몸체가 닿는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고 받침 둘레의 가장자리에 얕은 턱을 만들어 안정감을 주었다. 높이나 너비의 비율도 거의 1:1을 이룸으로써 균형잡힌 비례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넓은 전 윗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6개의 원 안에 ‘범(梵)’자를 은입사하였으며, 그 사이사이에 구름무늬를 장식하였다. 몸체에도 역시 굵고 가는 여러 선으로 원 안에 굵게 은입사한 ‘범(梵)’자가 4곳에 배치되어 있다. 받침에는 구름과 용무늬를 장식하였는데, 굵고 가는 선을 이용하여 능숙하게 표현된 용의 모습에서 고려시대 뛰어난 은입사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넓은 전의 안쪽 면에는 57자의 은입사로 된 글자가 있는데 내용으로 미루어 명종 7년(1177)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국내에 남아있는 향완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자료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받침 안쪽에 새겨진 글을 보면 원래 이 향완이 있었던 곳이 현재의 표충사가 아닌 창녕 용흥사였음을 알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 표충사에 전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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