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2)
경남 통영 유람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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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휴가 여행 후 간만에 가지는 가족나들이 코스로 통영에 다녀 왔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통영을 택한 게 아니라, 아는 지인의 회사 보유 팬션 예약이 통영 밖에 되지 않아 그리된 것 입니다. 해서 통영이라는 지역에 대한 여행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떠났습니다.
동행한 지인 가족과 같이 오붓하고 조용히 쉬다 오자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여행지, 통영에 대한 촌평은 기대 대비 대만족이었습니다.

통영시내 자체가 관광코스 입니다. 통영 시내 외곽이 뿐만 아니라 시내 한 가운데 여러 둘러볼 수 있는 기념 공간이 많았기 때문 입니다.

우선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곳은 남망산 조각공원 입니다. 
그러나 이 곳의 압권'조각' 전시물이 아니라 바로 통영 앞바다 입니다. 

남망산 조각공원조각공원에서 내려다 본 통영 앞바다

부산에 살아 본 사람으로 부산 앞 바다와 비교해 볼때, 통영 앞 바다가 못할 게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산 앞 바다는 고층빌딩 때문에 사람냄새가 별로 인 반면에 이곳 통영은 억세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과 아련한 지난 시절의 장면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청마문학관 입니다.
'청마'가 누구일까요...
지난 1942년 만선일보에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기획연재에서 유치환이 일제를 옹호하는 친일 산문을 써 친일행적 논란이 일으킨 '유치환'선생입니다.

문학관 위쪽에는 생가가 있습니다. 시각적으로는 별로 볼게 없지만, 옛 사람의 향기를 맡기에는 좋았습니다. 특히 여러 문학가와 주고 받은 몇 통의 편지들이 눈길을 잡았습니다.


세번째로 들린 곳은 바로 동피랑 마을 입니다. 알고보니 동피랑 마을은 몽마르뜨와 같은 분위기라고 한다네요. 동피랑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듣는이로 하여금 친숙함을 불러오게 합니다.
이곳은 비탈진 곳에 허물어져 가는 주택단지 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유명하게 된 것은, 골목골목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워졌기 때문 입니다. 부수고 새로 짓는 삽질형 개발논리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간단한 아이디어 접목 하나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곳 입니다. 
다만 집들이 워낙에 촘촘하게 들어앉아 있고 도로가 좁다보니 관광객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주민에게 소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말이 나오지 않도록 입단속을 해야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런 곳에 어떻게 살아....", "정말 낡아 빠졌다."등의 헛소리가 무심결에 나올 수 있으니 말 입니다. 이런 말들이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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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통영에도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좋은 풍경을 손쉽게?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 동피랑 마을 꼭대기에서 충분히 통영 앞 바다와 시내의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만일 한려해상수도의 멋진 경치를 편하게 감상할 분은 '케이블카'가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다음 코스로 찾아 간 곳은 바로 충렬사 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 입니다. 네비게이션이 위치를 잘못 안내해 준 덕분에 웃지 못할 상황도 잠깐 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유물 전시관을 먼저 보았는데, 정말 초라했습니다. 안내판을 보지 못했다면 화장실인 줄 알았습니다. 오래 전에 만들었는지 건물디자인이 역사명승지에 옆에 있는 화장실과 흡사했습니다.
그러나 실망을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사당쪽을 다가 갈 수록 오랜 역사의 향기가 전해 졌습니다. 그리고 아름더리 은행나무의 노랑잎이 늦가을 햇살을 받아서 선명한 느낌을 전해 주었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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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의 마지막 코스는 해저터널 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 진 것이라 합니다. 당시의 토목기술이 발달되지 않은 점을 생각해 볼 때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의외로 단순한 방법으로 접근했더군요. 바로 바닷물을 막아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통영 '해저터널'의 색다른 점은 바로 생활 속에 묻어 존재한다는 것 입니다. 일반적인 관광지는 현지인의 발걸음보다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많은 곳 입니다. '해저터널'은 바로 바다 건너 저편 마을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지름길 역할을 하는 하나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교복차림의 학생들, 운동복차림의 아주머니들을 쉽게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관광객들은 허전한 맛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어린이들은 상상을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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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양 출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보면서 설명해 주면 쉽게 이해를 하였습니다.

해저터널해저터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




통영 여행이 주는 또 다른 묘미는 '일본풍'을 조금 느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아래 사진은 해저터널 출발 포인트 앞에 있는 어느 주택 입니다. 대충 보아도 우리나라의 가옥구조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일본식으로 지은 주택 입니다.

해저터널 일본식 주택해저터널 입구에서 찾은 일본풍 주택



중앙젤 !
'디젤'이 아니라 '듸젤' 입니다. 마치 70~80년대 사용했던 표기법 입니다.
바로 통영에서는 느낄 수 있는 맛은 과거 기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청마문학관 주차장에서 찾은 '중앙듸젤'간판



이렇게 첫 째날 코스를 마치고 숙소로 예약해 놓은 팬션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다른 손님들은 없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팬션위치는 통영과 거제도 다리가 있는 곳으로 건너편 거제도의 야경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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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션 여행의 백미는 데크에서 구워 먹는 바베큐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여행에 준비한 고기는 목살과 삼겹살이었습니다. 장모님께서 하시는 고기집 '불타는 껍데기'에서님들에게 제공하는 고기 그대로를 가져왔습니다.
팬션 여주인이 바베큐를 맛있게 굽는 방법을 설명하시면서
"정말 좋은 고기를 가지고 오셨네요. 이렇게 두꺼워야 맛있게 구워 집니다"라며 시범으로 구워 주셨습니다.  고기 살점 하나를 입안에 넣으니 육즙이 입안에 가득 펴지면서 부드럽고 맛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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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뛰어난 생존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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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에 한국인의 선택은 항일독립운동하여 죽거나 감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순응하여 살면서 실력을 길러 독립준비를 할 것인가 의 양자택일이었다.

적극적으로 일제의 앞잡이가 된 한국인들이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박정희, 신현확같은 분들이 일제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실력을 길러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이다.
친북좌익들은 이런 사람들까지 친일파로 몬다.

국가가 없었을 때의 친일은 기본적으로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친북파는 어떤 이들인가? 
                                                           
                                                                      출처 : 조갑제닷컴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8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조갑제씨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먼저 '순응하여 살면서 실력을 길러 독립준비를 하다.' 대목을 읽고 있자니 정말 얼굴 화악 달아오릅니다. 물론 요렇게 하신 분들도 있습니다(학병으로 강제징집 당한 이후 탈출해 광복군을 찾아간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같은 이들) . 그러나 박정희의 순응의 역사는 좋은 본보기가 아닌 듯 합니다.

박정희, 신현확씨의 친일파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걸핏하면 언급하는 '친북좌익'이라는 단어가 못마땅합니다. 마치 '민족문제연구소'가 친북좌파들의 모임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의 근현대 민족문제, 특히 친일문제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소.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족특별위원회의 정신과, 평생을 친일문제 연구에 바친 사학자 임종국(林鍾國)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해명하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통해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설립되었다.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재정은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 등으로 충당 한다.

주요 활동으로는 박정희기념관 건립 저지, 친일파 기념사업 저지, 조선일보 반대운동, 일제하 강제동원 진상규명, 한일협정 개정, 한일 교과서 바로잡기 등을 해오고 있다.

말 그대로 연구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입니다. 학문적 연구를 위한 모임인 것 입니다.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올려진 사람들은 연구소이 세운 학문적 기준에 따라 결정된 것 입니다. 이런 결과물을 발표했다고 해서, 이들을 마치 '친북좌익'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억지일 뿐 입니다.
더욱이 오늘 법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한 가처분 소송이 기각이 되었습니다.  법원의 기각 사유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학문적 취지를 잘 알려줍니다.

박정희에 관한 법원의 기각이유 입니다.

"박정희에 관한 부분은 출생부터 사망까지 구체적 사실로 개념 지을 수 있는 주요 경력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참고문헌을 자세히 명시해 진위는 본안 소송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할 것"


"친일인명사전의 수록은 학문적 의견 개진 또는 표명에 가까운 것으로, 이런 견해가 학문적 의견을 표명할 자유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

서울북부지법 민사13부(서창원 부장판사)


장지연에 관한 법원의 기각이유 입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장지연의 행적을 싣는 게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 장지연과 유족 등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에 부족하다"

"경남일보 주필 역임, 매일신보에 게재한 다수의 글 발표 등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연구소가 내부 기준에 따라 수록한 것은 일정한 의견을 밝히거나 가치 판단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사14부(배준현 부장판사)


조갑제닷컴에 올려진 내용 중에 아래의 빨간 글자가 유독 눈길을 모웁니다.
해석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조국에 충성을 바쳤다?! 혹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충성과 다른 개념을 가진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친일파 인사들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는 거의 모두가 조국에 충성을 바쳤다.

극소수의 친일파들만 김일성 편으로 들어가서 국가반역을 계속했다. 친북파들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즉 조국이 있음에도 민족반역자, 학살자 편을 든다. 반성한 친일파와 반성하지 않은 친북반역자, 누가 더 나쁜가?
출처 : 조갑제닷컴


저는 이렇게 수정합니다.
친일파 인사들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는 극소수만이 조국에 충성을 바쳤을 것이다. 나머지는 예전처럼 사리사욕을 위해 보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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