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 (2)
난세에 빛나는 고전 인간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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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신호웅.김승일 출판사 : 책보세

저자 : 신호웅, 김승일 출판사 : 책보세

먼저 이 책의 머리말을 읽은 후, 기대만땅[각주:1]이었습니다.

첫째, 첫 문장부터 마음에 들었기 때문 입니다.
'역사는 결코 관념만으로 변하지 않는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온 몸을 던져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서 굴러 간다.'라는 문장이 독자를 맞이했는데, 이 문장에서 저자의 세계관이 짐작이 되었습니다.
시답지 않은 문장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역사의 수레바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으로 책을 펴 낸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둘째, 그리고 고전의 각 고사와 연결하여 기업경영, 인간경영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들어 고전의 깊이를 통한 감흥과 교휸을 주겠다고 저자는 호언장담 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대만땅이 기대쫄땅임을 알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언급한 고사들은 대부분은 이미 우리가 읽히 알고 있던 것들 입니다. 솔직히 독자로서 전혀 접하지 못한 새로운 고사를 기대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익히 알고 있는 고사 일지라도 색다른 해석을 기대한 것 입니다. 십번 양보해서, 색다른 해석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기존의 해석보다 충실했어야 합니다. 즉 빈약한 해석의 극치 입니다.

고전의 백미 고사의 전후 배경을 충분히 독자에게 알려줘야만 그 깊은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중간중간에 전후 배경 이야기는 삭뚝 생략한 채 일부분만 인용한 고사도 있는데, 이로 인해 저자가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르때도 있습니다. 자연히  고전에서 펄펄 풍겨져야 할 스토리의 긴장감은 온데 간데 없이 짜증만 불러 옵니다.

또한 잘 나가다가 삼천포 입니다.
고전의 고사와 연결되어 기업경영, 인간경영에 대한 사례로 고전의 가르침을 현대 생활에도 적용할려고 했던 저자의 목표를 가장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사례'선정에 있는 것 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한 사례는 고전의 교훈을 극대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기껏해야 적절한 사례라는 동의만 하게 될 뿐, 진한 맛이 없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고전의 이야기와 별 상관없는 '사례'를 들먹임으로서 오히려 저자의 정성을 의심하게 될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죽기로 각오한 마음에 사는 길이 있다'라는 부분에서는, 한신이 1만여 병졸로 20만 조나라 대군을 이긴 사례를 통해서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때 한신이 이용했던 전법은 바로 '배수진'입니다. 전투의 상황을 고려하여 전략을 펼치되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 한다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이 고전의 교훈이요 가르침일 것 입니다. 

지은이는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탄금대를 등뒤로하여(배수진) 왜군과의 전투를 펼쳤으나 패배한 역사이야기도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하지만 신립 장군의 패배 원인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저자는 신립 장군의 패배 원인을, 신립 장군이 과거에 한 여인의 목숨을 구하지 않은 이야기로 엮어 갑니다.  한을 품은 그 여자가 어느 날 꿈에 나타나 신립 장군에게 '탄금대에서 싸워라'라고 간청하여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게 된 것이라는 일화를 들려 줍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신립 장군 이야기의 교훈은 '여자에게 한을 품게하지 말라'것 정도 인가 봅니다.

제가 기대했던 저자의 의견은, 
첫째, 신립 장군의 패배는 충분한 상황 분석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뤄진 전략 전술의 실패라는 것 입니다. 상대의 전력이 아군보다 월등하고, 아군의 사기가 저하되었다면 내일을 기약하고 후퇴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일 수 있다는 논리 입니다.

둘째, 어떤 경우에는 배수진이 최선의 선택안이 될 수 있으나, 어떤 경우에는 최악의 선택안이 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최선과 최악의 구분선은 바로 상황 분석에 달려 있다는 것 입니다. 정도(正道)개념이 먼저 입니다.(정도=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접근법이 다르다.... 
부산에서 서울을 갈려면 북쪽으로 가야하고, 평양에서 서울로 갈려면 남쪽을 가야한다......)

등등 입니다. 오뉴월 여자의 한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제목을 이루는 단어, '난세'라는 용어는 아마도 현 시대의 아픔과 고난을 교묘히 이용하는 상업적 접근법에 기초를 두지 않았나하는 쫀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내용의 깊이가 부족합니다.
일전에 탐독했던 김영수 저 '난세에 답하다'의 아류로 치부할 정도 입니다.
저자가 장당한 '대학교재로도 손색없다'라는 말이 어쩌면 심각한 자만심으로 보여집니다.

총합적으로 평을 하자면,
1. 저자의 정성이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논리가 없습니다.
출판 목적으로 급조된 기미가 내용의 전개에서 충분히 보입니다.


2. 목표 독자층이 누구로 설정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사견으로서 이 책은 대학교재로도 불충분하며, 
저자가 이해하는 난세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난세에도 빛이 나지 않을 도서 입니다.


쫀쫀한 지적들
우리는 평소 읽고 사용하는 단어가 실제 대화내용이나 글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고전을 공부한 학자로서 저자의 이력을 살펴 보면, 저자의 잘못된 단어 선택을 눈 감고 봐줘도 됩니다. 그러나 상업성을 목적으로 출간이 된다고 하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어느 이야기에서 '양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P106
G대학교 B교수는 젊은 시절 은행에 다녔는데, 과장으로 있던 어느 땐가 은행의 점포 '양식'에 관해 의견을 피력했다.~~~~

여기서의 '양식'은 바로 '인테리어' 인 것 입니다. 적절한 단어 선택이 아쉬운 부분 입니다. 

P161
통도사 사하촌에는 2대에 걸쳐 목공예를 하는 장인이 있다. 고희를 바라보는 이 명장은 향리의 농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향리'라는 단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대감각이 떨어진 부분 입니다.
저자가 고전의 가르침을 현대의 기업경영과 인간경영에 응용하겠다는 그의 전략에 부응하지 못한 부분이라 생각 됩니다.

고전에 관심이 많다면 권하고 싶은 책
  1. 만땅 滿←일본어tan ‘가득’, ‘가득 채움’, ‘가득 참’으로 순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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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하게 변명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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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지 마라!

내가 수십년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마저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서야 문왕 서백을 만나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나는 숱한 세월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포기않았고

그 인내의 결실이었던 단 한번의 기회로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주나라 태공망 강태공(姜太公)-







용모가 볼품없어서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지 말라!


나는 어렸을 때 보잘 것 없는 외모때문에
불량배의 가랑지사이를 기어건너는 치욕을 당했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나의 볼품없는 용모를 업신여겨
법증의 천거를 번번히 거부하며 십년간이나 말단벼슬아치 집극랑자리를 맴돌게 했다.

항우에게 실망하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으나
연전연승하며 "해하"에서 항우를 완전히 섬멸하고 천하를 유방에게 안겨줄때까지 갖은 수모를 건뎌내야했다.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몰골뒤로 천하웅비의 뜻을 감추고 뭇사람들의 갖은 야유와 모욕을 참아내며 기어코 전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다.

- 한나라 회음후 한신(韓信)-





한때 자존심과 명예를 짓밟힌 치욕을 당했다고 생(生)을 포기하지 말라!


나는 벗 이름장군을 변호하다 무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가 짤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하였다.

당시 궁형의 수치를 못참고 자살하는 者가 많았으나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못다 이룬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세된 남자가 모진 생명을 질기게 끌고간다는 온갖 조롱을 참아내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마침내 <사기>를 완성한 불세출의 역사가가 되었다.

- 사기의 작가 사마천(司馬遷)-







여자로 태어나서 하고픈 일을 못한다고 울고만 있지 말라!


나는 아버지 무사확의 후처소생 둘째딸로 태어나
갓 14살때 최말단 후궁 재인이 되어
당태종 이세민을 가무로써 섬겼다.

황궁생활 초기 나의 경쟁자는 여자였으나
비구니로 물러 앉았다가 태종의 아들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황궁을 돌아와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생산하며
황후가 된 후부터
나는 남자들과 힘겨운 전쟁을 시작했다.

장손 무기를 내쳤고 상관
의를 처형하였으며
심지어 나의 4명의 아들마저 차례로 버렸다.

내 나이 67살..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철옹성을
만들고 나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 성신황제가 되어
15년간 천하를 다스렷다.

- 중국 유일 여황제 측천무후(측天武后)-





집안배경이 나빠서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고 변명하지 말라!


나는 오랑캐의 나라 원대말기 안휘성의 빈농 한족집안에서
탱어나 17살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으로서 가뭄과 기근에 찌든
험악한 세상과 맞서야 했고 전란통에 비적 무리의
일개 졸개가 되었을 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후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공으로 반란군의 2인가가 되어
원나라 몽골군을 중원에서 몰아낸 후에도
양반사대부 집안의 멸시와 견제속에서 시달려야 했다.

나는 송곳하나 꼿을 땅이 없었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었을 때 조차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결국 몽골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漢族)천하를 회복한
명나라의 초대창업황제가 되었다.

-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朱元장)-





나이가 어리다고 어미의 치마폭 뒤에 숨어 칭얼거리지 말라!


나는 8살때 황제가 되었고 13살 때 
결혼을 했으며
14살때부터 스스로 친정(親政)을 시작했다.

응석을 부릴 겨를도 없이
오삼계, 상가희. 경계무의 삼번난을 제압하고
몽고를 평정했으며 티베트까지 원정했다.


나는 어린 나이의 어리광도 모른채 군주가 되어
61년간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다.


-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돈이 없어서 재기할 수 없다고 낙담하지 말라!


나는 미천한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학업도 못마치고
전장(錢庄)에 들어가 똥오줌을 치우고 마루를 닦으며
잔심부름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다시 빈털터리가 되는 과정을 겪고 또 겪었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아무리 빈손이라도
언제든지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한 푼도 가진게 없는 가운데도 스스로의 재기를 믿었고
내게 없는 것을 메꾸어 주는 인재를 대함에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큰 상인이 되는데 돈 보다는 사람이 더욱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던 나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장사의 신
"상성(商聖)이 되었다.

- 청대 말 거상 호설암(胡雪巖) -




만년 2인자라고 보스자리에 대한 욕심을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지 말라!


나는 1935년 준의회에서 모택동을 모시고
만리장정을 따라나선 때부터 죽는 그날까지 41년동안2인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공산당 초기의 탑리더의 코스를 밟던 내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모택통을 중국혁명의 지도자로추천하고 스스로를 낮췄던 것은 인민의 마음을 움직인호소력이 그에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총리시절 행정보고를 함에 모주석의 침상옆에
꿇어 앉아야 했고 방광암수술을 받고 싶어도 毛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수술을 2년간이나 미루어야 했다.

방광암으로 죽어가는 초읽기의 시간속에서도
미일과의 수교, 문화대혁명의 폐허 속에 놓인 국각경제재견,
등소평을 재신임하는 권력의 재편성을 위해 촌음을 다투었다.
나는 사망하는 순간에도
"다 죽어가는 나따위는 돌보지 말고 다른 아픈 동지들을 돌보시오"
라는 유언을 남기며 인민의 마음 속에서 영원한 1인자, 인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났다.

- 중화인민공화국 총리 주은래(周恩來) -





잘 나가다 넘어지고 재기했다 다시 쓰러진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나는 문화대혁명 때 반모주자파로 몰려 홍위병으로부터 공개비판을 당했고, 잠시 일어났지만 하방당하여 강서성의 한 공장에서 4년간 육체 노동자로서 버텨야 했다.

주은래 총리의 도움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재기했다가4인방의 농간에 또 다시 실각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해야 했지만 모택동 사후 정국 수습용으로 재기용된 후 화국봉과의 5년 권력 투쟁끝에 최고 실권을 장악했다.

나는 3번 쓰리지고 4번 일어난 역전의 용사로서
마지막 정치적 위기였던 천안문사태의 시련을 견뎌내고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부도웅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되었다.

-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등소평(鄧小平) -

[ 출처 ] 여백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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