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3)
경주 볼거리 - 황룡사
반응형


사실 황룡사의 터는 말 그대로 터 뿐이다. 볼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여행에 필수코스는 아니라도 앞다퉈 탐방을 권하는 이유는 뭘까......



그대 제2의 불국사를 상상하는가?


아마도 황룡사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향후 잠재력이 아닐까 싶다.

상징성은 동양최대 사찰(담장내 동서 방향 288m, 남북 방향 281m로 면적 2만여평)이며, 잠재력은 제2의 불국사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늘날 불국사의 명성은 박정희 정권이 관광자원 개발 차원에서 창조(?)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각주:1]. '황룡사 연구센터'라는 조직을 별도로 만들어 복원에 총력을 투입하는 것이 이와 같은 맥락과 상통할 거라는 추측을 한다.


황룡사 복원도황룡사 복원도

사진 출처 : 경상북도 공식블로그


경주는 더 이상 관광객을 유치할 만한 새로운 볼거리가 없다. 

식상해졌다고 해야 하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새로운 유물이 발굴되지 않는 이상,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는 이벤트가 없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황룡사 복원은 더 이상 새롭게 발굴되지 않은 고도 경주의 한계를 벗어나고픈 발버둥이라 봐야 한다.


암튼 황룡사지(地)는 경주박물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자전거 코스로도 괜찮다. 자전거를 타보면 알겠지만 첨성대나 대릉원, 경주박물관쪽과는 달리 자전거타기가 한결 부담없다. 사람도 별로 없고 거리 신호등도 한 두개 뿐이다. 또한 바로 옆에 분황사가 있으니 괜찮다.


경주박물관에서 만난 황룡사 & 분황사 위치도경주박물관에서 만난 황룡사 & 분황사 위치도




신라 대표 화가 '솔거'


이제서야 알고보니, 내가 초등학교 때 신라시대 대표 화가인 '솔거'가 그린 벽화(소나무 그림이 실제와 너무 닮아서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 부딪쳐 떨어졌다는 그림 '노송도')가 이곳 황룡사에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벽화는 없다. 황룡사는 고려 몽골 침략 때 화재로 전부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6층 아파트 높이와 버금가는 '종'이 있던 황룡사


현존하는 최대 범종이 '성덕대왕신종' 이다. 이보다 4배나 더 큰 범종이 이곳 '황룡사'에 있었다고 전해지도 한다. '성덕대왕신종'의 크기(높이 3.75m, 입지름 2.27m)는 경주국립박물관에 가면 실물이 있으니 확인할 수 있다. 단순 계산해 보면 높이가 15m, 입지름이 9m이다.  높이 15m는 아파트 6층 정도의 높이다(층고 2.5m 기준).




경주타워의 엄마, '황룡사 9층목탑'


위 2개의 사진에서 가장 주목 받는 것이 바로 우뚝 서 있는 '탑'이다. 이름하여 황룡사 9층목탑이다.

이 탑이 9층인 이유는 1층부터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적, 예맥 등 아홉 개의 이웃나라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 지고 있다. 참 특이한 것은 고구려나 백제는 빠져있다는 것이다(한켠에서는 '응유'라는 나라가 '백제'요, '예맥'이 고구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추가 해설은 유홍준 교수의 설명을 읽어봐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경주타워경주타워

사진출처 : NEWSIS



황룡사 9층목탑 원형이 남아 있는 경주 남산


몽골 침입때 소실된 황룡사 9층목탑의 원형은 어떻게 추정한 것일까?

바로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72, 산79.  보물 제201호)에 있는 구층탑 문양에서 추정한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이것이 바로 황룡사 9층목탑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72, 산79.  보물 제201호)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의 좌측 탑모양

사진출처 : 위키백과




애정 vs 애증


황룡사의 실물은 없으나, 관련 지식을 취합해 보니, 황룡사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것 같다. 알수록 애정이 짙어진다. 황룡사처럼  애정이 생기는 것이 있는 반면, 알수록 애증이 되는 것도 있다.








  1. 2015.11.21보완하다. 이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의 옳음을 알게 된 신문기사를 발견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567537.html [본문으로]
반응형
  Comments,     Trackbacks
경주 볼거리 - 불국사를 초라하게 만드는 기림사
반응형


함월산 기림사함월산 기림사


내가 이곳 기림사를 찾은 이유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수련회(1박2일)를 이곳사에서 가졌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다. 혈기왕성한 시절과 걱정없이 노닐 때의 추억이 가끔씩 떠오르면 예전에 가봤던 곳을 다시 찾고픈 그런 이유에서다.



불국사 관광지라면, 기림사 절간이다.

기림사에 가기 전에 불국사에 들려서 와서 그런지 상반된 느낌이 든다.

불국사는 다음날이 부처님 오신 날[각주:1]이라  방문객들이 정말 많았다. 주차장도 만차였고 부적부적거리는게 말 그래로 관광지다.


하지만 기림사는 다르다. 정말 찾아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주차장은 한산하다. 말 그대로 절 같다. 이런 곳을 누구에게 추천해서 같이 갔다면 고개를 들기 민망할지도 모른다. 안목이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며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한때 불국사 & 석굴암 기림사 말사였다.


그러나 내력을 짚어본다면 그 깊이를 알아낼 수 있으니 민망할 것 없다.

일제시대때에는 31본산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석굴암, 불국사, 분황사가 기림사의 말사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예전의 기림사의 세를 가름할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곳 기림사가 전략적 요충지로서 의병과 승병 활동의 중심지였다고 하니 호국성지로서 가르침이 만만치 않다.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위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해 바다와 인접해 있으며 경주시내로 가기까지는 고개를 넘어야 하니 충분히 요충지가 될  만함을 감지할 수 있다.


임난 때 수군(水軍)과 승병(僧兵)활동의 근거지로 추측할 수 있는 '진남루'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경주일대를 관광자원 개발에 역점을 두면서,  불국사는 수학여행 필수 코스는 물론 신혼여행 필수 코스로 발돋움하게 되는데(또 이거 아는가???[각주:2])......

어쩌면 산업자본주의 산물[각주:3]이거라는 생각이 이번 경주여행 내내 맴돌았다.


이번 여행 후, 본 포스트 작성을 위한 자료 검색 중 발견한 신문기사 하나가 있다.

아래의 사진 출처를 클릭하면 나온다.


196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정부가 주도한 경주 불국사 복원 공사 현장.196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정부가 주도한 경주 불국사 복원 공사 현장.

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프로젝트성 관광지가 된 불국사,

나만의 스토리가 있는 골굴사라는 

틈새에 끼여 초라해진 기림사를 생각하고 있자면, 

어쩌면 이런 면이 '기림사'를 앞으로 더욱 더 빛나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불국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을 기림사에서 접할 수 있어 정감이 넘친다.



관련글 보기  

 - 경주 볼거리 - 불국사


 - 경주 볼거리 - 보문호수


 - 아들이 세운 경주 자전거 여행


 - 1박2일 경주여행 - 둘째날3 골굴사



  1. 낮추어 말하자면 '부처님 오신날'이지만 '석가탄신일'이라 할 수 있다. '성탄절'이다. 나의 와이프 생일을 나는 '성탄절'이라 부른다. [본문으로]
  2. 청운교·백운교 앞마당에 있었던 신라의 옛 연못 구품연지가 당시 공사 전 발굴에서 확인됐지만, 수학여행단 등 관객들 동선을 방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묻어버렸다는 관계자들의 회고 또한 그러하다. 출처 : 한겨레신문 [본문으로]
  3. 삼성·현대 등 대기업 사주들을 불러 시주금 형식으로 거액을 강제로 거둔 뒤 공사 비용으로 충당한 것을 보여주는 시주금 목록과 기업 사주 설명회 공문 등에서는 당시 정치권력이 불국사 복원에 끼친 입김 또한 짐작하게 된다. 출처 : 한겨레신문 [본문으로]
반응형
  Comments,     Trackbacks
박정희의 뛰어난 생존수단
반응형
일제 시대에 한국인의 선택은 항일독립운동하여 죽거나 감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순응하여 살면서 실력을 길러 독립준비를 할 것인가 의 양자택일이었다.

적극적으로 일제의 앞잡이가 된 한국인들이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박정희, 신현확같은 분들이 일제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실력을 길러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이다.
친북좌익들은 이런 사람들까지 친일파로 몬다.

국가가 없었을 때의 친일은 기본적으로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친북파는 어떤 이들인가? 
                                                           
                                                                      출처 : 조갑제닷컴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8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조갑제씨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먼저 '순응하여 살면서 실력을 길러 독립준비를 하다.' 대목을 읽고 있자니 정말 얼굴 화악 달아오릅니다. 물론 요렇게 하신 분들도 있습니다(학병으로 강제징집 당한 이후 탈출해 광복군을 찾아간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같은 이들) . 그러나 박정희의 순응의 역사는 좋은 본보기가 아닌 듯 합니다.

박정희, 신현확씨의 친일파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걸핏하면 언급하는 '친북좌익'이라는 단어가 못마땅합니다. 마치 '민족문제연구소'가 친북좌파들의 모임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의 근현대 민족문제, 특히 친일문제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소.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족특별위원회의 정신과, 평생을 친일문제 연구에 바친 사학자 임종국(林鍾國)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해명하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통해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설립되었다.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재정은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 등으로 충당 한다.

주요 활동으로는 박정희기념관 건립 저지, 친일파 기념사업 저지, 조선일보 반대운동, 일제하 강제동원 진상규명, 한일협정 개정, 한일 교과서 바로잡기 등을 해오고 있다.

말 그대로 연구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입니다. 학문적 연구를 위한 모임인 것 입니다.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올려진 사람들은 연구소이 세운 학문적 기준에 따라 결정된 것 입니다. 이런 결과물을 발표했다고 해서, 이들을 마치 '친북좌익'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억지일 뿐 입니다.
더욱이 오늘 법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한 가처분 소송이 기각이 되었습니다.  법원의 기각 사유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학문적 취지를 잘 알려줍니다.

박정희에 관한 법원의 기각이유 입니다.

"박정희에 관한 부분은 출생부터 사망까지 구체적 사실로 개념 지을 수 있는 주요 경력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참고문헌을 자세히 명시해 진위는 본안 소송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할 것"


"친일인명사전의 수록은 학문적 의견 개진 또는 표명에 가까운 것으로, 이런 견해가 학문적 의견을 표명할 자유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

서울북부지법 민사13부(서창원 부장판사)


장지연에 관한 법원의 기각이유 입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장지연의 행적을 싣는 게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 장지연과 유족 등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에 부족하다"

"경남일보 주필 역임, 매일신보에 게재한 다수의 글 발표 등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연구소가 내부 기준에 따라 수록한 것은 일정한 의견을 밝히거나 가치 판단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사14부(배준현 부장판사)


조갑제닷컴에 올려진 내용 중에 아래의 빨간 글자가 유독 눈길을 모웁니다.
해석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조국에 충성을 바쳤다?! 혹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충성과 다른 개념을 가진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친일파 인사들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는 거의 모두가 조국에 충성을 바쳤다.

극소수의 친일파들만 김일성 편으로 들어가서 국가반역을 계속했다. 친북파들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즉 조국이 있음에도 민족반역자, 학살자 편을 든다. 반성한 친일파와 반성하지 않은 친북반역자, 누가 더 나쁜가?
출처 : 조갑제닷컴


저는 이렇게 수정합니다.
친일파 인사들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는 극소수만이 조국에 충성을 바쳤을 것이다. 나머지는 예전처럼 사리사욕을 위해 보신했다.

반응형
  Comments,     Trackbacks
최근 작성 글
최근 작성 댓글
최근 작성 트랙백
프로필
공지사항
글 보관함
캘린더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DAY TO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