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맞수
코오롱 이웅렬 회장 VS 효성 조석래 회장
-- Who's Who? --------------------------------------- 코오롱과 효성은 지난 50년간 경쟁을 해온 국내의 가장 대표적인 라이벌 기업이다. 각각 54년과 57년에 창업된 이 두 회사는 섬유, 화학, 무역 등 전체 사업군의 80%가 겹치고 있다. 당연히 치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법정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자존심 대결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고 외국 시장에서도 격돌하고 있으니 ‘영원한 맞수’라는 표현이 제대로 들어맞는다. 코오롱은 그간의 ‘섬유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글로벌 종합 화학·소재기업으로 발돋움을 꾀하고 있다. 효성은 중공업, 타이어코드, 스판덱스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
이웅렬 회장_ 격렬한 인파이터가 제시하는 비전의 힘
이웅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격렬한 인파이팅’을 닮아 있다. 순식간에 상대편의 팔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 격렬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꽤 공격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의 활달하고, 때로는 거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당당한 자신감과 자연스럽게 매치되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룹 내에서는 할아버지인 이만원 창업주를 빼다 박았다는 평이 많다. 호방하고 사교적이고 스케일이 크다는 이야기다. 미국 유학시절에는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머감각을 활용해, 댄 퀘일 전부통령, 샘넌 상원의원, 랄프 하딩 상원의원,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정계와 연예계의 상류층 사람들과 교제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스타일은 조용하고 부침 없던 코오롱 그룹의 문화를 완전히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코오롱 그룹을 장악했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1996년, 그가 그룹회장에 취임했을 때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가격 변동이 거의 없는 실을 만드는 데 주력해서인지 적극적 사고나 주인의식이 부족했다. 이를 진취적이고 창의적으로 바꾸는 데 노력하겠다. 선대 회장 시절의 장점이 지금은 단점이 될 수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선대 회장의 공적을 부정하는 위험한 발언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의욕적으로 그룹 개혁에 착수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스타일을 ‘인파이팅’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보여주는 직원들과의 밀착과 고객들에게 먼저 다가서려는 적극적인 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이 회장은 자신의 고객 회사인 팬택 계열의 사업장을 방문했다. 그는 한 연구원에게 ‘우리가 납품하는 전자 재료 품질이 어떤 수준인지 솔직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말했다. 그룹 회장이 하기에는 민망한 질문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내 행사에 참여해 직원들과 함께 줄넘기나 윗몸 일으키기를 하면서 어울리기도 하고 매수 수요일에는 직원들과 함께 등산을 하면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룹 회장이 된 뒤에는 김천, 구미, 대구 등의 지방 사업장으로 내려가 10일 동안 현지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하면서 현장 경영을 펼치기도 했다. 대그룹 회장이 자신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는 모습을 본 직원들은 그의 진솔한 인간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원들과 밀착을 할 때에는 감성으로 다가가지만 때로는 사정없이 몰아붙이기도 한다. 코오롱 건설의 매출이 매우 지지부진할 때였다. ‘코오롱 건설의 경쟁 우위전략’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할 때 그는 임원들에게 돌발적인 명령을 했다. 회의 도중에 갑자기 ‘지금부터 노트북을 덥고 머릿속에 암기한 내용을 토대로 보고를 하라’고 했던 것. 임원들이 얼마나 현장의 상황과 현황을 잘 알고 있는지를 테스트해 보려는 즉석 제안이었다. 일부 임원은 술술 풀어나갔지만 또 다른 일부 임원들은 ‘버벅’댈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끊임없이 임직원 문제를 지적해 왔다. ‘임직원들이 적극적인 사고와 주인의식이 부족하고 기본적으로 이러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질책해 왔기 때문이다.
이 호방하고 돌발적인 인파이터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그는 ‘인정과 의리’라는 기존의 조직문화를 ‘비전과 팀워크’로 대체해 나가면서 인수합병을 통한 적극적인 성장을 꾀하고 있다.
외연의 확장이 결국에는 내부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전에 대한 그의 선호도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다. 자신을 ‘CVC(Chief Visionary Creator, 최고 비전 경영자)’로 부르기도 한다. 지난 4월 코오롱그룹의 창립 50주념 기념행사에서 이 회장은 ‘한국의 듀폰’을 명확한 미래상으로 제시했다.
“섬유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첨단소재·환경·바이오 등 신사업으로 승부하겠다.” “화학과 환경·생명공학 등 각 분야에서 40여 회사들을 인수합병(M&A)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리더의 비전이 명확하면 명확할수록 직원들의 충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디를 향해 매진해야 할지 분명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방황도 없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신이 직접 직원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한다. 임원들에게 IT 사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가지라’며 역동적인 연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강권하는 경영인’은 아니다. 불필요한 격식을 줄이는 유연성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온종일 결재만 하다가 하루가 끝난다’며 간부들에게 전화보고를 권하기도 했고 ‘넥타이를 매면 산소흡입량이 7% 감소하고, 업무능률이 15%까지 떨어진다’며 완전 자율복장 근무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 Character & Style Summary ]
→ 고객, 직원과 철저하게 밀착되면서 그들을 배려하면서 동시에 밀어붙이는 공격적인 스타일 → 구체적이고 명확한 비전제시를 통해 직원들 스스로 충성도를 높일 수 있게 유도 |
조석래 회장_ 학구적 스타일이 발휘하는 정공법의 힘
조석래 회장의 스타일을 해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효성의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의 경영 방식을 살피는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 철저하게 숫자로 나타내고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했다. 이른바 ‘성냥개비 계산법’은 그 숫자화의 정점에 서 있는 상징이다. 부하 직원들에게서 무언가 보고를 받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옆에 있던 성냥개비를 이용해 직접 눈앞에서 계산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조 회장이 성냥통을 들기 시작하면 실무진들은 자신의 계산이 혹시라도 틀린 것은 아닌가 하며 무척 긴장을 했다고 한다. 효성의 주력 사업으로 나일론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공학도와 경제학도 엘리트로 구성된 특별 팀을 만들어 무려 2년 동안 20여 가지의 유망 업종을 검토하게 했던 것이다. 신규 사업을 시작할 때는 변수마저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계획을 짤 정도였다. 그래서 조석래 회장이 이어받은 효성의 기업 문화는 바로 실속을 우선시하고 심사숙고를 하며 철저한 계산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지금도 효성 그룹의 입사 면접 질문은 깐깐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대한민국에 있는 바퀴벌레는 총 몇 마리인가? 한강 물의 무게는 어느 정도인가?” 황당하지만 정확한 수치를 제시해야 하는 질문은 효성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석래 회장 역시 그 무언가를 대충 대충해 나가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 한다. ‘적당히’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조석래 회장의 별명에서도 드러난다.
워낙 깐깐하고 꼼꼼하게 일을 챙겨 일명 ‘조대리’라는 별명이 붙은 것. 계산이 정확해서 임원들마저 애를 먹을 때가 많다고 한다.
조석래 회장의 이러한 스타일은 그의 학자적 풍모에서도 상당수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경영보다는 대학교수가 되려고 했던 그였기 때문에 학구적이고 논리적이며 원칙과 윤리를 무척이나 강조하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과 때론 편법을 동원하기도 해야 하는 비즈니스 정글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가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주도면밀한 연구와 광범위한 정보 수집에 익숙한 ‘학자풍’의 경영은 또 다른 메리트를 주기도 한다.
1974년 초반, 당시 오일쇼크의 여파가 한국을 강타하고 있을 때 효성은 나일론의 원자재인 ‘카프로락탐’ 구입난에 처하게 됐다. 원자재난에 빠진 효성은 경영에 적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조 회장은 카프로락탐보다 훨씬 구입이 쉬운 카프로락탐의 기초 원자재를 구입해 제조해 냄으로써 경영난을 타개한 적이 있었다.
직원들과 관계 설정에서도 학자적인 풍토가 남아 있다. ‘스킨십 경영’이나 ‘감성 경영’과 같은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기보다는 인재 양성에 대규모로 투자고 실력을 키우게 하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1999년 외국의 유명 컨설팅 회사로부터 인사 교육 분야의 컨설팅을 받은 이후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인제 육성에 대한 기본 체계를 구축했다. 효성그룹의 전문직무교육제도인 '패스(PASS)'가 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해서였다. 만약 교육 과정 중에 점수가 미달될 경우라면 다음 해에 재수강을 해야 하며 교육 과정을 이수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보직 임명에 제한을 받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다는 이야기다. 효성 본사 건물의 불이 늘 꺼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조석래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격이 없는 젊은 그룹 회장이나 열정적으로 직원들을 선도하는 CEO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가 책상 앞에 앉아서 경전이나 외우는 백면서생의 스타일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우선 조 회장은 효성물산의 관리부장으로 입사한 뒤 동양나일론의 울산 공장 건설을 진두지휘하고 과감성을 발휘하기도 했고 효성의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해 효성을 한 단계 높은 차원의 회사로 발돋움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효율과 실리를 중요하기도 하다.
가장 단적인 것은 그의 출장 스타일이다. 다른 총수들과는 다르게 전문적인 수행비서나 비서실장이 없다.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실무자와 출장길에 오르곤 한다. 일부 재계 인사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중량감이나 후덕함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탈권위 시대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딱딱한 해석임아 틀림없을 것이다. 사장단들과의 격의 없는 마라톤 회의를 하기고 하고 각종 국제 행사에 참가해 참석자들과 자주 논쟁을 벌이기도 하다. 원칙과 정도를 지키지만 또한 때로는 강인한 열정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가 끊임없이 ‘프로정신’을 강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정신’은 그의 중요한 경영 철학 중의 하나이다.
[ Character & Style Summary ]
→ 수치화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꼼꼼한 스타일 → 주도면밀한 연구와 광범위한 정보 수집을 통한 정공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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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이웅렬's style |
효성 조석래's style |
학력 |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조지워싱턴대학교 대학원 석사 고려대학교 언론 대학원 |
일본 와세다대 응용화학과 일리노이 공대 화공학 석사 |
경영철학, 혹은 좌우명 |
으뜸 경영, only & one |
프로정신을 바탕으로 성과의 극대화 |
승진 드라이빙 코스 |
1985년 코오롱 뉴욕지사 이사 |
1952년 효성물산 관리부장 |
성격 |
호방, 활달, 자신감 |
깐깐함, 꼼꼼, 신중 |
주변에서 평가하는 장점 |
공격적인 경영방식, 직원들과 함께하는 스킨십 경영 |
학구적이며 논리적, 윤리적이고 원칙적인 경영 중시 |
운동(취미) |
만능 스포츠맨, 골프는 싱글 |
독서, 클래식 감상, 골프(8~90타대) |
외국어 실력 |
영어와 일어 |
영어와 일어(특히 일어는 국어처럼 구사하는 수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