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족과 함께하는 외출이외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홀로 서울 출장 중인 근래에도 숙소와 회사근무지 외에는 달리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미처 봄 옷을 가져오지 못해서 부득불 아울렛에 가서 옷 몇 가지 산 것을 제외하고는 쉬는 날이나 밤에는 숙소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삼각산 길상사
그러나 지난 일요일에는 혼자서 큰 발걸음을 했습니다. 며칠 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께서 회주로 계셨던 길상사에 다녀왔습니다.일요일에만 즐길 수 있는 달콤한 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평소처럼 일어나서, 샤워한 후 지하철을 이용해서 한성대입구까지 갔습니다.
마침 길상사가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어 올라 탔습니다. 길상사 초입에는 어리 어리한 부를 자랑하는 대궐같은 집들이 즐비 했습니다. 무소유 vs 극한소유의 각이 공존하는 장소였습니다. 셔틀버스를 탄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길상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가 쓰여진 걸개그림이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 입적 직후라서 그런지 길상사 전반을 휘둘러싼 분위기는 '침묵'이었습니다.
곳곳에 묵언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였습니다.
지금 이 시점 길상사가 원하는 것은, 아니 입적하신 법정스님께서 사부대중에게 던진 말씀이 바로
나 자신에게 귀기울여라 인가 봅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것 입니다.
스님의 입적에 슬프하지 마라. 대신 자신의 깊은 소리에 귀 기울여라 인 것 입니다.
절 안은 생각보다 혼잡하지 않았습니다. 분향객들로 많이 붐빌 줄 알았는데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좋았습니다. 먼저 분향실에 들러 삼배를 마치고 길상사 이곳 저곳을 둘러 봤습니다.
길상사의 유래!!
익히 많이 알고 있는 것 처럼 '길상사'는 어느 보살님께서 땅을 보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길상사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원래는 고급요정 '대원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곳입니다.
'대원각'은 삼청각과 청운각과 함께 세 손가락에 꼽히는 고급요정 이었습니다. 당시 막강 실세를 행사하는 거물급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고 합니다.
이런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 길상화)보살이 법정스님께 시주했다는 것 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느 사찰과는 다른 건축물이 보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길상사 극락전 입니다.
확실히 일반 사찰과는 다른 특이한 건축양식인데, 이는 대원각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2년전에 다녀온 어느 사찰도 양식이 좀 특이했는데 말입니다.
극락전
땅을 기부한 사람은 누구?
일본 유학파이자 문학여성이었던 그녀가 왜 기생의 길로....
그렇다면, 어마한 땅값을 자랑하는 이 땅을 보시한 사람은 어떤 분일까요?
김영한은 기생이였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유학한 그녀가 기생의 길로 들어 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영한의 일본 유학에 도움을 준 해관 신윤국(조선어학회 회원)라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유학 중이던 김영한이 스승 신윤국이 일제에 의해 함흥에 투옥되었다눈 사실을 알고 귀국하게 되었으나 스승의 면회가 되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김영한
법조계 유력인사를 알게 되면 스승과의 면회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당시에 거물급을 만날 수 있는 직업.....바로 기생의 길에 접어 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러브스토리....
청산학원 3학년 시절의 백석
결국 스승을 만나지 못한 김영한은 시인 백석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이해가 힘든 동거까지 했다고 합니다. 길상화 공덕비
시인 백석의 집안에서 보면 아들이 기생과 교제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일인 것 입니다. 백석 부모는 이에 아들을 강제로 결혼을 올리게 했으나, 백석은 다시 김영한의 품으로 오게 됩니다.
이 즈음에 백석은 김영한에게 만주로 도피하자고 했으나, 김영한은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앞 날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백석은 홀로 만주로 떠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들의 마지막 이별이었습니다.
백석문학상의 백석 그 분!
한국 전쟁 발발 후 백석은 북한에서 교수로, 김영한은 서울 성북동에서 '대원각'을 운영하면서 많은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시가 천억 원이 넘는 재산을 선뜻 보시한 김영한 보살에게 어느 기자가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에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혹시 길상사에 들리실 계획 있으신 분은 이런 내용을 알고 가시면 보고 느끼고 하는 감정이 더 깊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길상사를 통해서 법정 스님보다는 길상화 보살에 대해 많이 생각 해 보았습니다.
김영한 & 백석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planetlover/13007393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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