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인문학


생각하는 인문학 / 이지성 지음생각하는 인문학 / 이지성 지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흥분과 설레임을 잊을 수 없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필(Feel)이 와닿는 부분을 펼쳐 한자한자 읽어 내려갔다. 

아마도 그 첫부분은 '격물치지'에 대한 이야기였을 거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내용이 너무 좋았다.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완전한 앎에 이르다'는 의미인 '격물치지'!!!!

격물치지의 자세로 인문학을 배운다면 분명 나에게도 혜안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심으로 읽었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나의 뇌에서 파열음이 흘러 나왔다.

뭔지 모르겠지만....... 

책쓴이가 '끼워맞추기'를 하고 있다는 의문에서 비롯된 의문 음(音)이 자꾸 일어났다. 

읽을수록 그 음의 발생주기는 짧아졌다.


동서양의 천재 혹은 성공한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인문학'에 심취했었다면서 인문학을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에만 치중한 내용이였다.


설령 실제로 '동서양 천재들이 인문학을 배웠다'하더라도 그들의 천재성이 오로지 인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할만한 근거가 부족하고 억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패한 자들은 인문학을 제대로 접하지 않았기에 실패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저자의 논리도 영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천재성 내지 성공에 있어서 인문학적 지식은 충분조건도 필수조건도 아닌 것 같다.

인문학이 성공의 충분요건도 아니며 필수조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공은 여러 학문, 자질, 능력, 테크닉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 흐름에 부합할 때 준비된 자에게 다가오는 것이므로 딱 잘라서 인문학 때문에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만사 급변하는 요즘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급류에 떠내려가는(그저 떠밀려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지울 수 없다.

남들은 떠밀려 살아갈 때 나는 스피디한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으며 살아가고 싶다.

중심잡기에 가장 도움이 되는 학문이 인문학일거라는 생각에 근래 인문학관련(종교서적 포함) 서적을 읽고 있다. 중심잡기를 통해서 '참다운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인문학이 다시 집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망구 내 생각이자 추측이다. 어쩌면 저자의 주장이 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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