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점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시인은 밥벌이만 하지 않는다. 시인도 밥을 먹는다. 한데 밥 먹다가 벌어지는 이 시인의 느닷없는 각성과 감정의 급변, 그리고 터지는 눈물이라니!
해서 이 시를 읽을 때면 늘 영화 [우아한 세계]의 마지막 장면, 강인구(송강호 분)가 이른바 혼밥을 하는 장면이 겹친다.
가족을 모두 캐나다로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 강인구, 조폭 악당의 삶을 살면서도 가족을 위해 온갖 험한 일과 모욕을 견디며 충실히 밥벌이를 한다.
텅 빈 집에서 홀로 라면을 끓여 먹는데 아들이 보낸 소포가 온다.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인구는 라면 냄비를 든 채로 비디오를 켜고, 행복하게 지내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혹은 허탄하게 웃는다.
그러다 서서히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복받치는 서러움과 혼자 밥 먹는 서러움이 이토록 절절히 한 방에 터진 사례를 일찍이 본 적이 없는데, 진짜 압권을 그 다음이다.
성질을 부려 봤지만 달라진 건 없다. 수습도 자신의 몫인 것. 그는 러닝셔츠와 팬츠 차림으로 거실 바닥에 흩어질 라면발을 조용히 열심히 치우기 시작한다. 쓰레기봉투까지 가져오면서,
자신만 빠진 채 행복한 표정의 가족들은 비디오 속에서 계속 흘러 나오고.
달리 괜히 食口(식구)인가. 같이 밥을 먹어야 식구이고, 그러려고 밥벌이해 오는 게 가장의 몫이 아니던가.
식구가 아니어도 좋다. “진지 드셨어요?”가 인사인 나라. “밥 한번 먹자”라든가 “밥 한번 살게”가 든든하고 따스한 약속이 되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혼자 밥벌이하고 혼자 밥 먹는 게 오죽이나 서러웠을까.
하지만 혼밥을 성찰을 가져다주나 보다. 영화 속 강인구는 혼밥을 하며 자신을 새삼 되돌아보고, 시인 황지우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이웃을 돌아보며 새삼 밥 먹는 일의 거룩함에 대해 깨닫고 눈물겨워 한다.
시인은 밥벌이를 해도 시를 쓰고, 어떨 때는 밥을 먹는 와중에도 쓰나 보다.
[정재찬, 그대를 듣는다, 204~207]
'책으로 배워가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5년 Best maxim (0) | 2025.12.26 |
|---|---|
| 너,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마라 (0) | 2023.08.21 |
| 미국과 유럽의 복지제도 수준 차이의 근본원인 (0) | 2022.12.24 |
|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나의 자세 (0) | 2022.02.15 |
| 2019년 내가 읽은 책 (1) | 2020.01.20 |
| 내 가게로 퇴근합니다 (0) | 2019.12.23 |
| 사피엔스 (0) | 2019.03.25 |
| 갈매기의 꿈 (0) | 2019.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