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레 국밥의 재료, 수구레의 슬픈 과거사



소의 가죽 껍질과 쇠고기 사이의 아교질을 일컫는 수구레는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입니다. 특수부위로 전문점에서만 맛 볼 수 있지만 수구레의 탄력있는 식감은 미식가들을 사로 잡기 충분합니다. 수구레에는 지방이 적고 콜라겐이나 엘라스틴등이 많아 관절기능을 개선시킨다.

자료출처 : 네이버 키친


고단했던 시절, 온갖 것들이 식재료로 사용되었던 그 때.

대한민국만큼 소의 부산물 활용도가 높은 나라가 없을 듯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현상은 우리 민족이 절약정신 높다라기 보다는 먹을 것이 없었던 상황에서 체득한 생계유지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창녕장 '수구레 국밥'의 재료인 '수구레'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던 중 충격적인 보도자료가 있어 공유합니다.









'수구레'란 잡은 소의 가죽 안쪽에 붙은 고기나 아교질을 말한다. 질기지만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제법 괜찮은 부위다. 영양분도 좋아 볶거나 데쳐 술안주로 쓰며 푹 고아 우무처럼 굳혀 족편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지방은 적고 콜라겐 성분이 많아 요즘은 다이어트 음식으로 꽤 인기가 있다.



군화 만들기 위해 수입 허용된 '수구레'


군화 쇠가죽을 식용 시판 1969. 7. 15 [동아일보] 7면

이 수구레는 1966년 5월 정식 수입품목으로 개방됐다. 상공부의 '중장기 무역계획'에 따라 국내에서 군화를 만들어 군에 납품케 하려고 수구레 수입을 허용했다. 그런데 여기서 사단(事端)이 났다. 당시는 모든 물품이 귀한 때라 소를 잡으면 어느 한 부위도 허투루 버릴 데가 없었다. 정식 도축장에서 잡건, 밀도살을 하건, 아니면 마을에서 잔치용으로 잡건 전문 칼잡이들이 소의 여기저기 먹고 쓸데를 샅샅이 도려냈다. 가죽이건 고기건 내장이건 단 한 점도 남길게 없었다. 이런 판에 살점이 붙은 수구레 수입을 허가했으니 그 고기를 둘러싸고 업자들이 침을 흘린 건 당연했다.

 

수입이 허가된 지 꼭 2년째인 68년 6월. 처음에는 시장의 노점상 여인이 수구레 묵을 만들어 팔다 적발됐다. 이 여인은 영등포의 피혁공장에서 버린 가죽조각을 주워와 물에 빨고 며칠씩 불린 다음 거기서 우러나온 액체로 묵을 만들었다. 한 모에 50원씩 받고 막걸리안주로 팔아왔다.

 

가죽에서 우러난 국물이든, 아니면 떼어낸 고기든 돈이 된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영등포나 서울역 동대문시장 등지에서 수구레가 슬슬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묵 외에도 수구레를 이용한 튀김 볶음 족편까지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대개 시장주변 지게꾼이나 노점상, 건달들이 술안주로 사서 먹었다.

 

 

 

서민의 음식 설렁탕, 재료가 군화용 가죽이라니..

 

군화용 가죽의 폐품 쇠고기 식용으로 팔아 1969. 7. 15 [경향신문] 3면

그러고 또 1년이 지난 69년 7월. 서울시 부정식품단속반이 깜짝 놀랄 발표를 했다. "미국과 호주에서 군화제조용으로 수입한 소가죽에 붙은 고기가 시중에 흘러나와 서울역 앞, 동대문시장 등 노점상에서 튀김 볶음 등으로 시판됐다. 그뿐 아니다. 족편 원료나 설렁탕 집 고기로 쓰였다는 정보도 있다."


단속반은 종암동과 양평동의 수구레 처리장을 급습해 군화제조용 가죽에서 뜯어낸 고기 각각 2000kg과 600kg을 압수했다. 또 이들에게 수구레를 대준 영등포 조광피혁 대표까지 포함해 모두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수구레에서 뜯어낸 고기들이 설렁탕집에 팔려갔음도 분명히 적시했다.


이튿날 신문은 난리가 났다. 그럴 것이, 당시 설렁탕이라면 서민이 사먹을 수 있는 최고급 음식이었다. 저녁에야 불고기집이 인기였지만 낮에는 직장인이 가장 애용하는 게 설렁탕집이었다. 신문 만화도 걸핏하면 설렁탕집에서 반주 한잔 걸치고 기분 좋게 이 쑤시고 나오는 서민을 소재로 삼곤 했다.


그런 설렁탕집에서 군화용 가죽을 재료로 썼다? 이건 정말 먹은 걸 다 게워내고 싶을 정도로 구역질이 나는 뉴스였다. 신문사마다 전화가 빗발쳤다. "어떤 설렁탕집이 군화 가죽을 재료로 썼느냐?"부터 "수육이 쫄깃쫄깃 맛있는 집이 있는데 혹시 수구레 불린 것 아니냐?"는 문의까지 다양했다.


한마디로 서울 시내가 온통 수구레 신드롬에 빠져버렸다. 사실 수구레란 단어를 그때 처음으로 접한 사람도 많았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소고기 부위라고 해봤자 등심, 안심 정도나 알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름도 생소한 수구레라니, 군화 밑창 따위나 만드는 바로 그걸로 설렁탕이라니..

 

 

 

'독극물 범벅' 수구레 처리 과정에 '경악'


피혁회사 일제 수사 1969. 7. 15 [경향신문] 3면

그 자체만으로도 경악할 일이었는데 계속 이어져 나온 뉴스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미국과 호주는 소 도살과정이 기계화돼 "고기가 많이 붙은 가죽을 황산유산 등 화학약품으로 말리고 굳혀" 수구레로 수출한다는 것. 때문에 "개도 먹기는커녕 냄새조차 맡지 않을 정도로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이었다.


황산 성분 등이 그대로 인체에 흡수되면 위장 간장 신경계통에 장애를 일으키며 발작 경련 증세를 수반한다는 것이었다. 분노뿐 아니라 공포가 서울을 집어삼켰다. 설렁탕을 즐기던 사람 일부는 겁이나 의사에게 문의하고 검진을 받는 일까지 생겼다. 당연히 설렁탕집엔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이럴 즈음 검찰이 다시 수구레 처리과정을 공개했다. "미국 등 수출국에서만 수구레를 약품 처리하는 게 아니라 국내에서도 고기를 떼어낼 때 유산 등 화공약품을 쓴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미 화공약품화한 수구레에 또 약품을 사용하는 2중 처리를 해 '독극물범벅'으로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국내업자들은 수입원피(原皮)를 물에 불린 뒤 검은색 비계 덩어리 같은 고기를 가죽에서 떼어낼 때 유산을 쓴다는 것이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던 고기는 물에 불게 되면 냄새가 빠지기 시작하며 거기에 유산 처리를 하면 육질이 말랑말랑해져 시중 소고기와 색깔, 경도가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천인공노할 수구레 처리 및 판매 과정

 

화공약품 섞어 수구레 1971. 3. 23 [경향신문] 7면

피혁공장에서는 수구레를 1관 3.75kg당 100원에 넘겼다. 수구레업자들은 그걸 물에 불리고 화공약품 처리를 한 다음 고기는 600g 한 근당 50원에 팔았다. 시장노점상에 주로 팔았지만 설렁탕 곰탕집에도 흘러들어갔다. 처리 후 찌꺼기조차 버릴 게 없어 비누재료로 공장에 팔아넘겼다.


당시에는 중소규모 피혁공장들이 영등포 일대에 밀집해 있었다. 검찰은 말썽 난 조광피혁 외에 대한 고려피혁 등 수구레 수입가공업자들에까지 수사를 확대했다. 그곳들도 실상은 마찬가지였다. 한 업자는 "공장 작업반의 후생복지비로 쓰려고 고기 붙은 원피를 팔아넘겼다"고 진술했다. 69년 그해엔 부정식품 사례가 한 달에 한 건 꼴로 터지곤 했다. 4월에는 공업용 빙초산을 섞은 식초가 나오더니 5월엔 서울시내에서 판매하는 얼음의 90%가 대장균에 오염돼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6월엔 탈지분유에 밀가루를 섞은 가짜 미제 분유제조업자들이 적발됐다.

활개치는 부정식품 1970. 10. 2 [경향신문] 7면

사람들은 개탄했다. "도대체 이 나라에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게 뭐 하나라도 있단 말인가?" 그러나 7월 화공약품 수구레, 군화가죽 설렁탕 사건이 터진 뒤에도 부정식품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8월엔 가짜 토마토케첩이 등장했고 9월 암모니아 식빵, 10월 유해색소 고춧가루가 등장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제발 먹을 것 가지고는 장난치지 말자"는 호소는 업자들에겐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단속반조차 단속한 식품을 폐기 처분하려고 가지고 나가면 혹시 어딘가에 팔아넘길지 모른다고 미행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모든 게 부족했으니 업자들이야 가짜나 불량품이라도 많이 만들어 팔아넘기고 싶은 유혹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라진줄 알았던 수구레, 족편으로 또 유통

 

자, 어쨌든, 69년 수구레파동이 난 이후 그럼 수구레식품은 우리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졌을까. 아니다. 꼭 1년 후인 70년 역시 약품 처리를 해 수구레족편을 만들어온 사람이 보건당국에 적발됐다. 당국은 그의 처리장에서 수구레 1200kg을 압수하면서 "현재 서울시내에는 허가 받은 족편 공장은 한 군데도 없다. 모두 무허가 제품이다."고 밝혔다. 그만큼 수구레로 만든 족편과 튀김 볶음 등이 싸구려 술안주로 시중에 많이 나돈다는 얘기였다.



수구레로 유해족편 1970. 10. 2 [경향신문] 7면

이듬해인 71년에는 더 큰 규모의 수구레족편 제조업자들이 적발됐다. 검찰은 서울근교 인천 안양 덕소 등지에 이름뿐인 아교공장을 차려놓고 실제로는 유해족편을 만들어 서울에 공급한 7명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입건하고 5명을 전국에 수배했다. 또 이들 공장에서 포르마린 15갤런, 과산화수소 15갤런과 생석회 5부대, 수구레 2트럭분을 압수했다. 이들은 소가죽에 염산을 넣어 수구레를 떼어 낸 다음 포르마린과 과산화수소를 넣어 응고시키고 실고추와 파를 넣어 족편을 만들었다. 포르마린은 알기 쉽게 말해 생물표본을 할 때 병에 채우는 방부제다.



이걸 쓰면 가죽에 말라붙은 고기가 잘 불어나 뜯기가 좋고 잘 썩지도 않아 저장 또한 쉽기 때문에 업자들이 사용한 것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그런데 그런 포르마린 과산화수소가 사람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식품학자 유태종 박사는 76년 신문기고문에서 그 무시무시한 병증을 경고했다. "상부기도를 자극해 점막이 으깨지며 화농성염증을 일으켜 피부조직을 파괴한다. 식욕이 감퇴하며 체중이 감소하고 불면증 과민증이 생긴다."


70년대에 이어 80년대에도 유독성 수구레족편 사건이 발생했다. 식육제조 허가를 받은 지방의 족편공장 제품에서 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87년 한해 이들이 전국 식당에 공급한 족편은 무려 3억 원어치나 됐다.

요즘은 유해 수구레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다는 말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고 있다. 군화가죽으로 만든 설렁탕 얘기는 그야말로 40년 전 그 시절의 그 이야기 감으로만 회자될 뿐이다.

 

글 민병욱 /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1976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 사회1부장, 정치부장, 부국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2009년 7월까지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들꽃 길 달빛에 젖어> <민초통신 3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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